도구가 아무리 좋아도 장인의 실력이 미흡하면 작품을 망칠테고, 아무리 좋은 교육법이 있어도 교사의 자질이 떨어지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학문의 전영역에 걸쳐 합리적인 강의를 진행하려면 판단력, 창의력, 이해력, 분석력이 필요하다. 지각이 활성화되는 순서와 조합을 분명하게 파악하고나면, 수많은 대안중에서 자연적인 행동방식에 가장 부합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교육을 두고는 단순한 개념에서 복잡한 개념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진리의 행동 준거로 삼아왔지만, 실제로는 공공연히 그런 적도 없고, 일관성이 있었던 적도 없다. 지식 또한 단순한 개념에서 복잡한 개념으로 가르쳐야 한다. 교육은 구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총체를 이루는 내용도 단순한 개념에서 복잡한 개념으로 진화해야 한다. 수업이 구체적인 개념으로 시작해서 추상적 개념으로 마쳐야 한다는 주장은 앞서 밝힌 원리를 반복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이해하는 수많은 사실을 통틀어 비교할 수 있을 때만 개념이 단순해야 한다는 점, 하나씩 습득한 사실은 오히려 복잡하다는 점, 하나의 지식을 여렷 섭렵하면 기억력과 추리력에 보탬이 된다는 점, 그리고 개별적인 사실을 습득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미스터리에 불과하다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예시라는 매개체를 통해 지각에 원리를 도입하고, 각론에서 개론으로, 구체적 개념에서 추상적 개념으로 교육방식을 유도해야 한다. 아동교육은 방식과 순서상,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여 인류의 교육과 일치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개인의 지식창출은 인류의 지식창출과 궤도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적인 형질이 하나의 줄기에서 파생되었으므로, 이들이 뚜렷한 대조를 보이는 원인은 세대를 거듭할때마다 달라지는 환경에서 찾아야 한다.
역사적 순서가 개괄적이자 필연적이라는 점과 이를 좌우하는 원인이 인류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은 입증할 수 있는 명제다. 인류는 끊임없이 비교, 사색, 실험, 그리고 이론으로써 특정한 경로를 통해 각 주제의 지식을 섭렵하게 되었다. 교육의 각 영역이 경험적 개념에서 합리적 개념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과학은 개인이나 전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구체적 수단을 통해 추상적 개념이 이르러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비롯되엇다. 과학은 조직화된 지식이며, 지식이 조직되기전 그중 일부는 머저 머릿속에 들어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연구에 순수한 실험이 도입되고, 충분한 관찰력이 축적되어야 추론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적용한 사례를 들자면 언어를 베우기전이 아니라, 이를 깨우친 후에 배우는 문법이라든가, 회화에서 구도부터 잡는 커리큘럼을 꼽을 수 있다.
계속해도 모자라는 점은 교육에서 자기보존 과정을 최대한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아이들이 스스로 탐구하고, 추리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말은 가급적 줄이고. 탐구는 크게 늘릴 수 있도록 유도하라는 이야기다. 개인이 최선의 성과를 얻으려면 인류와 같은 방식으로 진보해야 한다는 것은 자수성가한 사람의 성공사례에서 끊임없이 입증되고 있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관찰과 탐구와 추리를 보고, 또 신체적 정신적 능력에 대해 예리 하게 통찰하는 것을 보고도 아이의 저력을 깨닫지 못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일러주어야 할 필요는 아이의 무지가 아니라 우리의 무지가 불러온 결과다. 우리는 스스로 흥미를 느끼고, 능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해할 수 없을만큼 복잡한 개념을 강요하여 지식에 대한 싫증을 키우고 있다. 결국에는 가르침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학습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우리만의 요령이 무의지를 조장했음에도, 우리는 무의지를 요령이 필요한 이유로 삼고있다.
학생을 즐겁고 설레게 할 수 있는가? 이론을 감안하여 제시된 교육과정이 언뚯 보기에는 최고인듯 해도 다른 과정에 비해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비교적 흥미가 떨어진다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아동의 지적 본능이 우리의 추론보다 신빙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지적능력에 대해 말하자면 대개 건전한 활동은 즐겁지만 고통이 따르는 활동은 건전하지 못하다는 보편적인 법칙이 적용된다. 펠렌버그에 따르면, 어린이이 게으름은 선천적인 활동성향과는 상극인지라 그것이 잘못된 교육의 결과가 아니라면, 모종의 구조적 결함과 관계가 깊을 것이라고 한다. 아동의 자율적인 활동은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건강하게 발휘할 때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활동을 통한 직접적인 만족감은 정상적인 자극제가 되고, 이를 제대로 관리한다면 더할 나위없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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