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활동 중 준비단계를 거치지 않는 것이 육아이다. 언젠가는 결혼을 해서 가정의 이루어야 하지만 육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지식이 없다. 당신의 생사화복이 자녀교육에 달려 있는데 예비 부모에게 이에 대한 지침이 한 자도 전해지지 않는다면, 정말 놀랍지 않겠는가? 신세대의 운명이 터무니 없는 관습과 충동과 망상에 좌우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으랴? 부모가 육아라는 힘겨운 사역을 개시한다 해서 놀라울 일도 연민을 느낄 일도 없을 것이다. 부모가 생명의 원리를 모른다면, 자녀에게 저주가 될 수 있다. 이를테면 병에 걸린다거나, 성장이 멈춘다거나, 체력이 부족해진다거나, 혹은 발달이 더뎌져 결국에는 성공과 행복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혼란이 만연하다. 그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불행이 찾아온다면, 낙심하거나, 초자연적인 원인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고통, 허약체질, 우울증, 그리고 불행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무관심한 탓에 육아에 대해 전혀 배울 생각이 없고, 아주 단순한 생리법칙도 몰라 매년 자녀의 체질을 저하시키고, 그들뿐 아니라 손주에게도 질병와 돌연사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책임감 있는 엄마의 역할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미흡하고, 몸소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하다. 정신적 현상과 그것의 인과관계를 모른다면 굳이 개입하는 것보다는 아주 방관헤 버리는 편이 나을 수가 있다. 정상적이고도 유익한 행동을 엄마가 번번이 좌절 시키는 것은 자녀의 행복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진배 없으니까, 게다가 자신과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 둘의 관계도 소원해질 것이다. 엄마가 생각하기에 바람직한 처신은 당근과 채찍을 동원하거나, 박수를 받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켜 어떻게 하든 아이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마음에 들면 내적동기는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선의보다는 위선, 두려움, 그리고 이기심을 부추길 것이다. 겉으로는 진실이 당위성을 주장하지만, 시늉뿐인 협박성 벌칙으로써 끊임없이 거짓의 본을 보인다는 것이다. 자제력을 계발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시키지 않은 짓을 했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어린 녀석을 혼내기 일쑤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는 좋든 나쁘든, 자연스러운 결과를 스스로 감당케 하는 것이 바람직한 육아법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육아법은 충동적인 데다 일관성도 없다. 그래서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어떤 법칙이 해당 법칙을 따르듯 아이의 인지도 발달도 그 법칙을 따른다면, 법칙을 알아야 교육이 바로 선다는 것이 당연한 결론이다. 학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교사 또한 심리학을 모른다면 본연의 가르침과 이상적인 가르침의 격차가 얼마나 벌어지겠는가? 책으로 습득하는 지식이 교육이라는 짧은 생각을 가진 부모는 일찌감치 어린자녀의 손에 입문서를 쥐어주어 크나큰 피해를 초래해 왔다. 책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수단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들은 몸소 체득한 사실 대신 간접적으로 습득한 사실을 전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책은 스스로 볼 수 없는 지식을 타인의 눈을 통해 들여다 보는 수단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방관이나 감시가 아니라 아이가 쉴새 없이 돌아다니고 관찰하며 얻는 호기심을 꾸준히 유도하고, 가급적이면 관찰의 정확도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러고는 선뜻 이해할 수 없고, 유쾌하지도 없은 지식을 아이의 눈과 생각에 주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식의 상징이나 지식 자체를 숭배하는 미신에 빠져, 가구, 도로, 토지가 돌아가는 현황을 훤히 꿰고 있을 때 비로소 책이 제공하는 새로운 정보를 도입해야 한다는 점을 모르고 있다. 몸소 체득한 지식이 간접적으로 얻은 것보다 훨씬 가치있을뿐 아니라 경험이 있어야 책에 담긴 어구를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지적발달 과정은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문법과 같이 나중에 배워야할 추상적인 과목이 너무 이른 시기에 도입되고 말았다. 정의, 원칙, 원리가 밝혀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교육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고 나니 주입식 학습이라는 폐단이 전국에 확산 되었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책은 딴데로 치워둔다. 그간 습득해온 지식은 대부분 정리되지 않아 조만간 기억에서 사라지고, 나머지는 대개 비활성 상태로 남을 것이다. 관찰력이나 독자적인 사고력도 거의 사라졌다. 머릿속의 지식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고, 중대한 정보는 대거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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