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주제를 다룬 책을 읽고 저런 주제에 대한 강연을 듣지만,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은 이런 지식뿐이다. 저런 지식은 가르치는 법이 없다. 아울러 관습이나 선호 혹은 선입견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정작 배워야 할 지식이 무엇인지 합리적으로 따져보는 것의 중요성도 직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저런 순서가 중요하다는 말이 각계층에서 나오고는 있지만, 중요도에 비추어 지식습득에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그럴 정도로 중요한 지식이 있는지 여부는 일단 제기되면,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아쉽지만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러니 지식을 얻는데 투자하는 시간도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수명도 짧은데다 먹고 사는 일도 해야 하는 탓에 무언가를 배우는 시간은 훨씬 더 줄어들게 마련이다. 순서에 따른 지식의 가치를 거론할 때, 사람들은 삶과의 연관성을 역설한다. '당신의 지식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라는 물음에 수학자, 언어학자, 자연주의자 혹은 철학자는 자신의 학문이 행위, 즉 손해보지 않고 이익을 확보하는 것에 이롭게 작용하여 행복의 도화선이 된다고 설명할 것이다. 고전학자는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이 인간복지에 이롭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없다는 점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즉 단도직입적이든 함축적이든 모든 지식의 궁극적인 척도는 인간의 복리福利인 셈이다.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물음은 중대한 물음이다. ‘어떻게 사느냐?’는 물질적인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 의미가 굉장히 넓은 문제다. 보편적으로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단련할지, 업무는 어떻게 관리할지, 가족은 어떻게 부양할지, 어떤 각오로 시민답게 살지, 자연이 준 행복을 어떻게 활용 할지는 인생의 묘안을 묻는 질문이다.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주제는 사람이 마땅히 배워야할 교육의 중심이 되는 주제이다, 완성된 삶을 준비하는 일은 교육이 감당해야 한다. 그렇기에 합리적인 교육과정을 위한 방안은 이같은 기능을 실현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완성된 삶이야말로 우리가 성취해야 할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염두에 두라.
일상생활의 주된 활동 순위는 다음과 같다.
* 자기보존에 직결되는 활동
* 생활수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자기보존에 직결되는 활동
* 자녀훈육에 관한 활동
* 사회, 정치적 인맥을 적절히 관리하는데 주안점을 둔 활동
* 여기에 해당되며 취미와 취향을 만족 시키는 다양한 활동
개인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는 활동이나 예방조치가 우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다른 방면의 지식에 아주 어두운 것보다 이러한 방면에 문외한인 것이 더 위험하므로, 자신의 목숨을 보존 하는데 직결된 지식이 중요하다는 점은 마땅하다. 자기보존 다음은 생활수단을 얻는 간접적인 자기보존 활동이다. 노동자로서의 기능이 부모 역할보다 우위를 차지한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근로가 선행 되어야만, 부모로서의 기능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유추한다. 자기관리가 자녀관리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자기관리에 필요한 지식이 가족의 복리에 필요한 것보다 강력한 권리를 행사한다. 가정이 국가보다 우선하므로 (가정이 있고, 자녀를 길러야 국가가 존재한다.) 시민의 의무보다는 부모의 의무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회의 공익은 시민의 성향에 좌우되고, 시민의 성향은 다른 어떤 변수보다 유아교육에 따라 달라지는 탓에 결국 가정복지가 사회복지 근간을 이룬다고 하겠다. 비교적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업무를 마친뒤 즐기는 다양한 취미활동은 사회안에서 이루어진다. 사회가 여가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주체로서 갖가지 생각과 정서가 담겨있다.
자기보존에 대비하는 교육아래로 간접적인 자기보존과 부모의 역할, 시민다운 품행, 그리고 삶의청량제와 같은 다양한 여가활동에 관한 교육이 하위에 속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각 항목은 나눌 수는 없다. 각자가 서로 얽히고 섥킨 까닭에 전체를 가르치지 않으면 어떤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 올바른 사회적 행동을 둘러싼 정보는 무한하나 문학과 교양이라는 대중문화 지식이 부족하다면, 정보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다른 항목과 적절히 결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교육의 이상이란 각 항목에서의 완벽한 대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떤 항목에서든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손 치더라도 하나에 치우치거나, 둘이나 서너가지 중요한 항목에만 관심을 두기보다는 가치가 가장 큰 것에서 가장 낮은 항목에 이르기까지 모두에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본질적인 가치를 가진 지식이 있는가 하면 본질에 유사한 가치 그리고 보편적인 가치를 내포한 지식도 있다.
과학적인 사실은 수만년에 이르는 먼 미래까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줄 것이다. 한편 라틴어와 그리스어 같은 언어가 본질에서 유사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온 인류에 적용되는 지식은 한정된 기간이나 일부 민족에 국한된 지식보다 훨씬 중요하다. 본질적인 가치가 있는 지식은 같은 조건에서 본질에 유사하거나, 보편적인 가치를 가진 지식보다 우위를 차지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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