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 시간을 채우는 휴식, 기분전환, 오락이 자기보존에 해당된다. 지금까지 자기보존에 걸맞는 교육을 비롯하여 생계를 잇고, 부모의 의무를 다하고, 사회 정치적 행동을 규정하는 데 적합한 교육을 살펴보았다. 만일 복리에 관한 일이 있을 때 여가를 선뜻 미루고, 매사에 여가의 실질적 가치를 가늠해 왔다면 안 해도 그만이다 싶은 여가는 등한시했을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미적문화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는다. 회화, 조소, 음악, 시를 비롯한 아름다움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없다면, 인생의 매력은 절반만 남을 것이다. 여가 시간이 늘어나면, 예술과 자연의 시문학은 인간의 정신공간을 넓게 차지할 것이다.
미적문화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한다는 것과 미적문화가 인간의 행복에 근본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별개 문제다. 심미적 문화는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인생의 의무와 직결된 문화앞에서는 우선권을 양보해야 한다. 문학과 미술은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이 가능해진 덕분에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최종 산물인 꽃이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뿌리와 이파리가 더 중요하다. 화초를 가꾸지도 않으면서 꽃을 얻어보겠다는 심사랄까. 현 교육제도는 자기보존을 위한 지식은 전수하지 않고 생계를 잇는데 필요한 지식은 매우 기본적인 원리만 제공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지식은 스스로 습득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는 준비할 기회를 주는법이 없으며, 시민의 의무를 두고는 현실과 무관한 데다 열쇠(실마리)도 없는 정보를 마냥 전달하고 있다. 독서와 대화와 여행경험은 유익한 소양으로 인정 될지언정 매우 중요한 지식을 포기하면서까지 배울만한 것은 절대 아니다. 고전 교육이 표현의 품격을 높여준다 하더라도 육아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 시문학을 읽으면, 취향의 격조가 높아진다 하더라도 취향이 건강과 가치가 같을 수 없다.
교양, 문화, 미술, 순수문학 등의 문화는 문명의 토대가 되는 지식과 훈육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같은 문화는 인생의 여가공간을 차지하듯 교육의 여가공간을 차지해야 할 것이다. 미학의 진정한 위치를 깨닫고, 그것을 함양하면 교육에 유익하다고 확신해도 미학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과학이 미술의 근간이 된다는 주장은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현상을 작품이 대변한다는 점을비롯하여 이러한 현상이 원리에 부합하는만큼 작품이 참이 될 수 있다는, 그리고 예술가라면 반드시 현상의 원리로부터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자명해진다. 회화가 발전함에 따라 자연에 대한 지식의 폭도 넓어졌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음악에도 과학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놀라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감정이라는 자연언어를 이상화한 것에 불과하므로 자연언어의 법칙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음악의 질이 결정된다.
감정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목소리의 변화는 음악이 발달하게 된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시 운율을 비롯하여 많이 쓰이는 강한 은유 및 과장법, 격렬한 어휘 전환은 감정이 끊어오르는 언어의 특색을 과장한 것이다. 장르를 막론하고 예술가라면 자신이 표현하려는 현상의 원리 정도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작품의 특색으로 대중의 마음을 어떻게 감동시킬지 감을 잡고 있어야 한다. 즉 심리학이 다뤄야 할 문제라는 이야기다. 예술작품의 인상은 이를 수용하는 객체의 정서적 본성에 좌우된다. 그림 한점을 평가하는 것은 관중의 의식과 감정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묻는 것과 같다. 예술가는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선천적인 재능만으로는 부족하니 조직된 지식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직관력이 유익하긴 하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천재성이 과학과 결합할 때만이 최고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테니까.
과학은 걸작을 만들어 낼 때뿐 아니라, 미술을 감상할 때도 필요하다. 작품의 진실을 하나씩 벗겨 낼 때 마다 지각한 사람이라면 희열을 느끼겠지만, 무지한 사람은 이를 긴과하고 말 것이다.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암시하는 것이 늘수록, 작품과 연관된 사상을 내비칠수록 사람들에게 크나큰 만족을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만족을 누리려면 관중이나 청중 혹은 독자는 예술가가 시사 하는 현실을간파해야 한다. 현실을 간파한다는 말은 곧 과학을 꿰뚫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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