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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

꾸준함, 인내

생산적인 일에 대한 덕목은 꾸준함, 인내, 끈기다. 공부하는 삶이 편한 삶일 거라고 상상해서는 안된다. 꾸준함과 고요함만큼 우리 본성에 반하는 것도, 우리에게 혼자 있기를 요구하는 것도 없기 때문 이다. 반면 변화와 외부의 일은 활동에 나서게 하고, 주의를 어지럽혀 우리 자신을 잊게 한다. 우리 목표는 언제나 지성인으로 지내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 사실을 인정받는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온전히 몰두하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우리는 대충해도 되는 일이라거나, 정시에 시작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자주 시간을 낭비한다. 우리는 자투리 시간이야말로 공부를 준비하거나, 정리하고 참고 문헌을 확인하고, 노트를 살펴보고, 문서를 분류하는 등의 일을 하기 위한 시간이다.  자투리 시간은 다른 시간만큼이나 유용한데 이런 부차적인 일들도 공부에 속하고,  또 공부에 반드시 필요다. 힘겨운 시간은 언제나 찾아오기 마련이고, 그 시간동안 유혹의 힘은 아주 강하다.

 

의자에 조용히 앉아있다는 이유로 당신을 밥벌레라고 부르는 노동자가 부러울지도 모른다. 이런 음울한 정신상태에 있을 때 공부를 포기할 위험이 얼마나 큰가!  모든 공부에는 까다로운 전환점들이 있어서 공부하고 저술하면서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을 긴밀히 연결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것은 관념의 연결에 달려있다. 우리는 직선을 따라서 곧장 가다가 꺽이는 각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굽이를 맞닥뜨린다. 우리가 새로운 방향이 어느 쪽인지 몰라 머뭇거리는 사이, 나태라는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관념들은 시간이 지나면 애써 찾지도 않아도 그런 연쇄와 전환점이 보일지 모른다.  잠시 멈추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공부의 다른 면을 보고 거기에 온전히 몰두하라. 너무 지쳤다면 기운을 되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부를 멈추어라. 기진맥진한 상태로는 어디에도 이르지 못한다. 피로에서 회복하는 방법은 무언가를 큰소리로 낭독하기, 맑은 공기속에서 호흡하며 야외나 서재에서 걷는 것이 좋다. 공부하는 이들은 대개 팔다리를 움직임으로써 뇌도 움직인다.  ‘ 나의 발 역시 저자다’라고 니체는 말했다.

 

곤경의 원인이 무엇이든 움츠러 들지말고 극기하면서 겪어내야 한다.  공부는 일정한 수의 장애물이 있는 경주로와 같다. 울타리를 넘고 나면 저 앞에 도랑이 있고, 그 뒤에 비탈이, 다시 뒤에는 다른 장애물이 있다.  수월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고, 말을 타고, 그림 그리는 솜씨를 익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수월하게 사유하는 솜씨를 익힌다. 정신은 자주 행해야 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과학영역에서 비오가 이렇게 말했다. ‘어제 발견한 것만큼 쉬워보이는 것이 없고, 내일 발견할 것만큼 어려워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러나 대중은 그런 수고를 짐작하지 못한다.  당신 홀로 짐을 날라야 하는데 위대한 인물들은 이 사유의 짐이 인간이 나를 수 있는 짐 가운데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경고한다.

 

관념을 정돈하고 새로운 사유를 세심하게 다듬는 데는 평온이 필요하다. 불안한 상태에서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다.  열렬한 흥분이 당신을 사로잡을 때 정신은 노예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되고, 내면의 자유는 사라지고 만다. 견디는 것은 의지로 해내는 것이다. 견디지 않는 사람은 계획만 세울뿐 의지로 성취하지 못한다. 참된 지성인은 견디는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는 과업을 떠맡는다.  해질녘의 붉은 노을은 동틀 무렵의 금빛 햇살 못지 않게 아름답고 장엄하기까지 하다.  오랜 세월 한결같이 공부한 사람은 저무는 해처럼 고요하고, 아름답게 삶을 끝맺을 수 있다. 과업을 결정한 뒤에 슬기롭고 확고부동한 태도로 그것에 전념하는 법을 배워라. 과업에 대한 일체의 불신은 물론이고, 덜 중요한 과업들까지도 차단하라.

 

저술을 시작하기전에는 당연히 숙고해야 한다. 지혜는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 일이 나에게 적합한지 숙고할 때, 그 일을 끝마쳐야 하는 의무를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세상에는 믿을만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일단 약속을 하면 지킨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시작은 바보짓이 아닌 한 하나의 약속이다. 어떤 일들은 약속을 하고, 자신이 신성시 하는 모든 것을 걸고,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까지 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들이 약속을 지키기에 적합하지 않은 기질을 타고났다고 할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의무로 속박할 수도 없고, 그들도 스스로에게 의무를 지울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열등한 부류이다.

 

우리는 갈수록 포기하는 일에 익숙해진다. 체념한 채 무질서와 왜곡된 양심에 굴복하고, 우물쭈물 하는 습관을 들인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존재와 완전함은 하나의 관념으로서 서로 일치하며 하나를 다른 하나로 전환할 수 있다. 스피노자의 말은 티치아노의 작업방식과 관련이 있다. 티치아노는 굵은 선으로 밑 그림을 그리고 나서 어느 정도 작업하고 난 뒤, 그림이 낯선 사람처럼 보일 때까지 벽에 걸어두었다. 그런 다음 적대적 눈으로 그림을 보면서 걸작으로 바꿔놓았다. 당신도 저술계획을 대강 세운뒤에는 티치아노처럼 정한 거리를 두고 그 계획을 보아야 한다. 지적인 소명은 그저 그런 소명이 아니다. 당신은 그 소명에 당신 전부를 바쳐야 한다. 하나의 글은근본적으로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  베토벤은 나중에 덧붙인 악절은 결코 기존 악절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 글을 쓴 순간에 최선을 다해라. 당신은 글을 완성하고 나서 그것을 당신이 먹이고 가르친 자식처럼 다룰테지만, 그 글은 당신에게서 무려받은 근복적인 특성들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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