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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

어떻게 노트할 것인가?

내가 읽기, 기억하기, 노트하기를 되풀이해서 말하는 이유는 이 세 과제가 어떤 의미에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때가 되면 성과를 내놓기 위해 우리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알게된 것을 모두 온전히 간직하거나 사용하기 위해 기억에 의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끔찍한 재앙일 것이다. 기억은 대상을 잃어버리고 감출뿐더러 부름에 응답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쓸모없는 관념을 풍족하게 갖는 것보다 정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선호한다. 우리는 정신을 형성하고 정신에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읽거나 숙고하며,  그 과정에서 기억해둘 만한 생각을 떠올린다. 또 나중에 유용할지 모르는 사실과 다양한 단초에 접하게 되고, 그것들을 적어둔다. 우리는 특정한 주제를 공부하거나 글을 쓸 때, 구할 수 있는 모든 정보원에 의존하고 스스로 숙고 한다. 범주에 속하는 노트의 특징은 얼마간 닥치는 대로 적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공부하는 전공의 개요에 의지해 읽기를 현명하게 규제해야 한다.  삶이 언제나 복잡한 것처럼, 정신이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순식간에 옮겨가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 다양한 관심사를 옹호해 온 것 처럼, 이런 종류의 노트에는 아주 큰 가능성이 열려있다. 반면 무언가를 산출하기 위한 관점에서 적어둘 때는 당신이 계획하는 공부의 성격이 명확하고 그에 따른 노트도 명확히 한정되기 때문에, 당신이 당면한 주제와 노트는 긴밀히 연관되며, 어느 정도 유기적인 전체를 형성한다. 절제하는 자세로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에 노트하라. 처음 보았을 때 놀라움 화려한 문장 때문에 생기는 열광을 피하기위해 구절을 곧바로 옮겨적지 말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뒤에 적어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참착하게 수확물의 가치를 판단한 다음, 질 좋은 곡물만을 헛간에 저장하라.

 

우리 목표는 스스로를 완성하는 것, 스스로 정신을 채우는 것, 앞으로 싸울 전투의 조건과 각자의 신체에 맞는 갑옷을 자급자족 하는 것이다. 당신은 멋진 코트가 아니라 당신 몸에 맞는 코트를 구입해야 한다. 무엇을 노트하든 변덕을 피하라. 읽기가 정신의 양분이고, 기억이 인성의 일부가 되듯이, 노트는 양분과 인성의 저장고다. 읽기, 기억, 노트는 모두 우리를 완성해야 하며, 따라서 우리를 닮아야하고, 우리의 인성과 역할, 소명을 어느 정도 담고 있어야 한다. 책을 읽다가 적은 노트도 당신 자신이어야 한다. 읽기는 그 자체로 자각적 반영이어야 하고, 빌려온 구절일지라도 직접 창작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우리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 나는 읽기만 하지 않고 읽으면서 적는다. 나는 누군가를 만난 뒤에 그 사람의 사유를 적기보다 나의 사유를 적는다. 쓰는 사람은 하나의 관념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클로드 베르나르는 ' 과학적 관찰이란 정신이 제기한 물음에 대한 답이며,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찾는 것만을 발견한다'고 단언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적으로 읽는 무언가는 우리가 다루는 주제에 따라 마음속에서 제기된 물음에 대한 한가지 잠재적인 답이다. 기대감을 품은 채 읽어야 한다. 읽는 목표는 알찬 곡물을 남기고 나머지는 빠져나가게 거르는 체와 같다. 주의력을 흩뜨리지 마라.  당신의 목표와는 다른 저자의 목표가 아니라, 당신 자신만의 목표만을 안중에 두라. 저술할 때는 약간 다른 두가지 방법이 있다. 당신은 먼저 상세한 계획을 세운 뒤에 자료를 찾을 수도 잇다. 반대로 자료에서 시작해 한 방향으로 사유하면서 읽을 수도 있다. 주제 관해 두루 읽고, 주제를 모든 측면에서 살펴보고 탐구하지 않은 부분이 없을 만큼 조사한다. 전개해야 할 관념을 결정하고, 그 관념의 주요한 특징이 드러난다면 그 특징만 적어둔다. 정확한 표현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적절한 비유를 기록한다. 영감은 한번 지나가면 되돌아오지 않는 은총과 같다. 

 

당신이 목표로 삼거나 바라는 것과 관련된 기반 전체를 조사했다면 저술할 준비가 된 것이다. 작업장은 재료로 가득하며, 일부는 거의 미가공 상태이고, 일부는 임시로 꼴을 갖춘 상태다. 이제 나는 재료를 구성하는 일에 대해 말해야겠지만, 이 경우에는 계획에서 재료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재료에서 게획이 나온다는 것이 분명하다. 억지로 대상에 집중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나아가거나 물러날 수도 있고, 한동안 떠나 있거나 마음이 내킬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으며, 정신을 속박하지 않고 생기가 있을 때만 공부할 수 있다. 예비노트가 노트에 있고, 재료를 파악하고, 그 계획이 구상되면 당신이 뒤쫓는 관념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관념에 들어맞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가장 좋은 노트는 깊은 공부를 통해 수확물 처럼 거두어 들이는 노트, 풍요로운 생명을 담아 저장하는 노트일 것이다.

 

자신의 독서와 성찰을 어느 정도 따라가는 것, 문서자료에서 구절을 발췌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수집광으로 가는 위험한 습관이다. 고집스럽게 수집과 완성에 몰두하는 것은 정신을 생산에서, 심지어 배움에서 멀어지게 하는 길이다. 모든 것은 쓰임에 종속되어야 한다. 모든 종류의 공부에서 단연 가장 실용적인 방법은 메모지에 노트하는 것이다. 모든 노트의 내용을 적고나면 활용할 수 있는 관념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 관념을 살펴서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의존하고 있는지 밝혀라.  주요 관념을 골라낸 다음 각 관념에 속하는 요점을 정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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