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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는 없다.

경이감을 죽이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갖고 싶어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원하는 즉시 다 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줘서 생기는 광적 소비주의는 아이의 경이감을 파괴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사물이나 사람이 늘 자기가 원하는대로 따라야 한다고 여기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자연, 나비, 사랑, 우정, 가족 등 모든 소중한 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들을 기다리고 원하며 노력해서 알려고 하면,  우리는 그것들을 더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존재 앞에서 경이감을 느끼게 된다. 돈키호테를 쓴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 물질적 풍요로움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본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녀들이 생일에 무감각하게 기계적으로 선물을 풀어보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선물앞에서 더이상 놀라거나 감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감동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더 화려하고, 비싼 물건들이 가득한 소비주의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는 이제까지 넘쳐나는 것들이 얼마나 아이의 느낌을 무디게 하고 욕구를 차단하는지를 지켜봐 왔다. 이렇게 아이의 욕구가 차단되면, 빠른 영화와 오락게임 등 외부에서 즐겁게 해 줄 뭔가가 필요 해진다. 그 결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놀이를 지어내고 그것을 내면화시키는 과정이 점점 힘들어진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의 손에 있던 것이 사라지거나 부족해지면, 학교나 집, 혹은 어떤 곳에서든 권위에 시비를 걸고, 규칙을 파괴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은 갈수록 더 일찍 각자의 단계에서 벗어난 놀이에 노출되고 있다. 일상에서 흥미를 잃은 아이들은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일상생활 에서 원하던 것을 찾지 못하면, 원래 있던 규칙을 깨뜨리면서 흥미를 느낄 만한 것을 찾기 시작한다. 우리의 삶을 자녀에게 풍족함을 주고 즐겁게 해주는 데만 온전히 바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분명 많은 부모가 자녀의 변덕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문화적으로 아이를 장식용 트로피로 만들려는 풍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제 여성이 장식용이던 시대는 갔다. 대신 아이가 장식용이 되었다우리가 아이를 선물로 여기지 않으면,  그들은 바로 진열장에 놓인 트로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트로피 같은 아이에서 다루기 힘든 아이가 되는 것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다.

 

'엄마 저거 사줘, 안사주면 평생 잊지 못할 말썽을 부릴 거야'. 네 살 난 아이가 성질을 부리는 걸 막기 위해 뭐든지 다 해준다. 아이를 계속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상점에서 뭔하는 모든 것을 사주고,  몇 시간동안 아이들을 떼어놓고 평온하게 보내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상황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규칙을 이미 잘 알고 있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황을 조종하며 가지고 놀줄 안다. 이런 마법 공식을 알고 있어서 어떤 때는 부모에게 고마워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냉소의 씨앗이 아이 내부에서 싹을 틔웠기 때문에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군다. 

 

어떻게 해야 이런 모습들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까?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이감을 좀 많이 느끼게 해야 한다.  화려한 사치품 대신 평범한 상품을 늘리며 휴대폰 사용을 줄이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며, 비디오 오락시간을 줄이고 자전거 타는 시간을 늘리며, 물질적 보상을 줄이고 애정표현을 더 많이 하며, TV 시청시간을 줄이고 산에 오르는 등 자연을 관찰하는 시간을늘리며, 소음을 줄이고 침묵을 늘려야 한다. 즉 유익하고 소중한 것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알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에는 '안돼' 라고 끝까지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 어느 정도 제한을 두고 아이 내면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햇빛을 가리기 위해 씌워준 모자를 아이가 벗지 않고 계속 쓰게 할 수 있을까? 모자를 계속 씌워 주면 된다. 다시벗으면 또 씌워주면 된다. 아이가 모자를 벗지 않을 때 까지 말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아이라면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 집으로 발길을 돌리며,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 어떡하지 햇살이 너무 따가워 모자를 안쓰면, 공원에 갈 수가 없겠어. 할 수 없네. 다음에 가야지 안타깝네'.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제한이 주어져 있는지 확인해 보면서, 그 안에서 놀게 하는 것이 좋다.

 

‘대략 두살’전 아이는 아직 순종할 능력이 없어서 아이가 관심이 있는 것을 만질때마다 잘 살펴보고 위험한 것들을 제거해 주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울고 떼를 쓸 때는 기본적인 필요나 정서적인 욕구를 채워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잠버릇과 식습관을 조절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행동방식에 조건을 거는 것처럼, 외부자극 상과 벌을 통해 아기를 단순히 수동적이고 ‘ 프로그램화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약 24개월부터 주로 돌보는 사람과의 신뢰관계를 강화하며, 아이는 순종할 능력이 생기기 때문에 행동에 따른 결과를 자연스럽게 발견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원하는 대로 할 자유가 있지만, 자신의 행동이 일으킨 결과에 대해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법칙이다.  이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가 성질을 부리는 것은 두살 이후부터 이해력이 생겨나면서 나타나는 좌절의 결과다.

 

만일 우리가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들어준다면, 아이에게 거짓소망 만을 심어주는 셈이다. 하지만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지 않으면, 행동에는 그에 따른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른들도 아이의 변덕에 따라 행동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그 책임을 빨리지면 질수록 아이가 막무가내로 행동함으로써 생기는 고통을 덜 받게 된다. 그 리고 아이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시작할 때 좌절감을 덜 느끼게 된다. 이 세상에는 나름의 법칙이 있다. 엄마가 햇살이 내리쬐는 날에 공원에 가려면 모자를 써야 한다고 할 때, 아이가 모자를 쓰기 싫다고 하면 공원에 가지 말아야한다. 규칙은 강요나 체벌, 협박의 결과가 아니라 아이가 한 행동의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아이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드리도록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부모 입장에서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이가 성질을 부리는 것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교육에는 꼭 시간이 필요하다.

 

소비주의 때문에 느낌이 포화상태가 되어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는 경이감과 더 나은 성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극복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셈이다. 지식의 씨앗을 못쓰게 만드는 소비주의와 무절제는 아이의 마음을 미덕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올곧은 교육에는 가치있는 기쁨과 그만큼 가치있는 고통이 함께하기 때문에, 어릴 부터 아이들에게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 혼돈과 소음, 감각의 포화, 그리고 통제와 훈련 부족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발명과 발견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좋은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런 제약 없이 자란 아이는 최고의 것을 얻을 수 없다. 가장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희생과 노력이 따르기 마련인데 버릇없이 오냐오냐하며 키운 아이에게는 의지도 부족할 뿐더러 노력의 지속시간도 아주 짧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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