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가 한두 살이 되면 걷고 말하는 것을 가르치고, 이후에는 침묵을 지키며 앉아있으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뭔가 잘 되지 않는다. ( 닐 디그래스 타이슨, 천체 물리학자)
교육자의 사명은 아이가 본연의 모습대로 발전하게 하고, 스스로 실행하는 습관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로마노 과르디니 ‘ 삶의 단계들: 윤리와 교육학의 중요성’)
경이감은 알고 싶어하는 욕구다. 하지만 감탄하고 놀랄수 있으려면 내면이 자유로워야 한다. 여과해 내는 필터와 편견이 적으면 적을수록 생각이 일정한 방식으로 정해지지 않기 때문에, 내면은 더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아이는 거의 모든 것에 속박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창의력은 어른들보다 높다. 아인슈타인은 성공을 위한 공식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A성공 = X일 + 놀이 + Z침묵
만일 일을 하는데 내면의 자유가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놀이는 뭐 좋은 것이 없나 생각하며, 영화관에 가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또는 오락기를 들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등의 기분 전환이나 지루한 시간보내기의 차원이 아니다. 놀이란 바로 과제를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 일을 하면서 거기에 상상력과 창의력, 내면화 과정을 보태면, 그것이 곧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지식과 경이감을 연관시킨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두가지 방법에 대해 말했다. 첫째는 발명과 발견을 통해서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 때, 즉 훈련과 학습을 통해서이다. 모든 훈련은 지식이 선행 되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배움의 씨앗이 심어진 곳에서 그것을 발견하는 주체를 통해 싹을 틔운다. 아이는 선천적으로 배움에 주도적으로 다가간다.
우리는 그 움직임을 과소평가 하다못해 무시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외부자극이라는 폭격을 아이에게 퍼부으며, 그 움직임을 없애고 있다. 배움은 내부에서 일어나고, 알고 싶어하는 욕구는 경이감을 통해 나타난다. 아이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알맞은 환경을 조성하면서, 교육의 주인공 아이와 함께 해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상상력 대신 흥미를 끌만한 특별한 것들을 보여주고, 특정한 행동을 하게 하도록 미리 동기부여를 하자는 뜻은 아니다. 아이들을 통제하지 말고 자유를 주어야 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 통제된 환경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의 변덕에 항복하는 것과 아이가 교육의 주인공이 되게하는 것은 꼭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이를 이루려고 애쓰는 아이 내면의 움직임을 존중하면, 청소년이 되어 그 목표를 좀 더 쉽게 이룰 것이다. 따라서 부모나 교사가 동기 유발할 필요가 없어진다. 앞에서 말한 규칙들을 존중하는 교육의 구체적인 방법은 통제된 혼란속에서 하는 자유로운 놀이이다.
핀란드 교육부는 유치원생들의 자유로운 놀이와 비슷한 배움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이는 안전한 환경에서 차분하게 자유로운 경험을 한 다른 친구들과 즐길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 아이는 배움의 주체이고, 이 배움은 호기심과 탐구의지, 자아실현의 기쁨으로 촉발된다...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그들과 상호작용 하는 동안, 교사들은 아이들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세상을 깊이 탐구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면서 아이들 스스로 탐구심과 궁금증, 생각, 행동이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는 사실이다.’ 교사는 아이 곁에서 신중하고 겸손하게 돕는 조력자 일뿐, 앞에서 이끌어 가는 주체가 아니다. 주인공은 바로 아이다. 아이는 남들이 대신 생각해 준 것이 아닌, 스스로 생각할 공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아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함께 하며 조용히 함께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
놀이를 통한 발견은 아이의 올바른 발달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반면 법칙, 방법, 교보재 등으로 이루어진 훈련은 단지 보조수단 일뿐 목적 자체는 아니다. 교육분야의 권위자인 빅토르 가르시아 오스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일깨운다. ‘나이 때에 맞는 교육과정은 주로 놀이를 통한 것인데, 놀이는 문화보다 오래 된 것이다. 놀이는 재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교육의 주인공인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과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생생하게 살아있지 않거나, 교사들이 과학적 증거를 이해할만한 지식을 갖고, 아이들의 열린 눈뒤에서 세상의 모든 신비와 인간존재의 모든 가능성을 민감하게 알아채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 방법은 절망적이고 이미 죽은 것이다.’ 놀이는 아이들이 경이감을 통해 느끼며 배우게 되는 일반적인 활동이다. 어린아이들은 타고난 발명가이다. 담요를 주면 바로 집을 뚝딱 짓고, 물과 흙을 조금만 줘도 엄마와 나누어 먹을 빵을 그 자리에서 구워낸다. 특별한 체계를 갖추지 않은 놀이 시간이 아이의 문제해결 능력과 창조력, 집중력을 높이는데,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이는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최근 저명한 잡지 ‘ 하버드 에듀케이셔널 리뷰'에서는 호기심이 아이들의 지능발달에 중요한 원동력이자 진짜 배움을 지속시키는 메커니즘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놀이는 어린이들이 호기심을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인 셈이다. 즉 안에서부터 밖으로 배우는 과정이다. 칙센트 미하이교수는 일을 실행할 때, 창의력을 꽃 피우고, 일을 즐기는 것은 지루함과 불안함의 중간상태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여기서 지루함은 일을 실행하는 사람의 능력에 비해 일이 너무 쉬울때 생긴다. 반대로 불안함은 일을 실행하는 사람의 능력에 비해 일이 너무 어려울 때 발생한다.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끼고 좌절할 때 모든 배움은 원천봉쇄를 당한다. 과도하게 구조화 되어있거나 훈련을 발명, 발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활동은 어린아이에게 지루함이나 불안함, 둘중 하나를 느끼게 한다. 다른한편 아무리 교육용이라 하더라도 영화와 비디오게임, 컴퓨터화면으로 이루어진 오락물은 아이를 더 수동적으로 만들고,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 생각하는 힘을 덜 요구하기 때문에 머리를 덜 쓰게 되고, 그렇게 되면 머리가 점점 더 멍청해지고,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이는 자유롭게 놀면서 자연스럽게 지루함과 불안함 사이의 균형을 스스로 찾아간다. 아이의 지식에 대한 타고난 욕구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도전을 하게 하고, 창조적 생각을 배우고, 발전시키게 해준다.
자녀가 장난감이나 방석, 카드, 텔레비전 화면, 자전거 없이 자연의 열린공간에서 형제자매와 두서너 시간을 자유롭게 놀게 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잘 살펴보자. 부모 없이도 조용하게 상상의 놀이를 하며 혼자 즐기는가, 아니면 너무 지루해 하며 불안과 과잉행동을 보이는가? 만약 세살에서 여섯살의 아이가 지루해 한다면, 그건 뭔가 비정상적이다. 왜냐하면 아이의 창의력은 끝이 없고, 대체로 아직은 덜 오염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지루해 한다면 그 아이는 극성스럽고 광적인 삶의 속도와 과도하게 조직화된 환경 또는 너무 높은 자극에 노출되어 이미 거기에 길들여져 있다는 뜻이다. 발명, 발견이 먼저고 훈련과 학습은 나중이다. 아동교육에서 이 순서를 지키지 않는다면, 카를 융이 '우리 모두는 진품으로 태어나서 복제품으로 죽는다' 라고 말했다. 상황을 해결할 다른 방법을 상상해 보는 대신 간단히 스위치 누르는 법만을 배우게 될 것이다. 발명과 발견의 능력이 부족하면, 바로 무책임과 체제 순응적인 태도만 낳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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