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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카

과잉 자극의 결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는 가짜 전염병이다....우리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그것을 옮기고, 무감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까지 하던 방법과는 분명히 정반대로 해야 한다.  즉 아이들을 가두어서는 안되고 아이 안에 있는 것을 일깨워야 한다. ( 켄 로빈슨 경)

 

배움이 아이 내부에서 일어난다는 관점에서 볼 때, 그와 반대로 외부에서 최대한 많은 자극을 통해 뭔가를 움직이게 하면, 아이의 행동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최근 몇년간의 연구에서는 아이들에게 많은 외부자극을 줄 경우, 아이가 똑똑해지기는 커녕 학습장애를 일으킨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이들이 DVD, 게임 등의 속도가 빠른 내용에 익숙해지면 일상생활로 돌아와 지루해 하고, 참지 못하면 신경질 내는 것은 당연하다. 틸레비젼 시청과 비디오 게임과 집중력문제, 그리고 아이의 폭력적인 프로그램 시청과 그에 따른 집중력 문제, 아이에게 나타나는 충동성과 문제가 있다. 유년기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시겔박사가 말한 것처럼, 어린이에게는 더도 덜도 말고, 정상적인 환경과 최소한의 자극이 필요하다.  우리가 작은 뇌속의 신경회로를 아이들에게 직접 그려줄 필요는 없다. 아이는 내부의 원동력인 경이감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주인공은 교육방법도, 자극의 양도, 교사도, 아니다.  몬테소리가 말했듯이, 교육의 주인공은 바로 어린이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그저 탐험기지처럼 아이와 현실사이에서 중재자 역할만 하면 된다. 만일 돌보는 사람과 아이의 관계가 충분히 안정적이라면, 아이는 점점 더 먼곳으로 탐험을 떠날 것이다. 반대로 아이와 돌보는 사람 사이가 안정적이지 않다면, 아이는 불안해 하며, 주변을 안심하고 탐험하지 못하게 된다. 관계의 질은 아이들에게 주는 자극이 양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와 관계를 쌓아가는 것은 밥 먹이고 눈을 맞추며, 부드럽게 말을 건네고 웃어주며, 간질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6개월된 아이는 주의를 집중해서 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9개월된 아이는 풀을 뽑아서 입에 갖다되기만 해도 너무 좋아 한다. 아주 어린 아이에게는 복잡한 동화가 아니라, 단순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삶은 그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롭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에게 과잉자극을 줄 경우 감각이 무딘 어른이 되거나, 다른 아이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크리스테이키스가 말한 것처럼 빛이 깜빡거리고 계속 화면이 바뀌며 빠르게 움직이고, 이미지가 짧게 잘리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온전한 뇌발달에는 과잉자극이 될 수 있다. 텔레비전의 과격한 장면들은 아이안에 내재해 있는 지속적인 학습능력을 방해한다. 즉 자기 자신을 발견하거나 처음 또는 새롭게 세상의 속도를 인지하는데 혼란을 일으킨다. 만일 과잉자극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라면 감각의 포화상태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만일 아이가 지속적으로 과잉자극을 받으면, 즉 넘쳐나는 물건들과 과도한 과외활동, 수면부족, 단계보다 미리 받는 자극들,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의 빠른 속도와 소리에 둘러쌓이게 되면, 또는 아이에게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하라고 요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겠는가? 인간에게는 복잡한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다. 인간은 다양한 조건속에서 사는데 익숙하다. 따라서 자극에 넘쳐나는 환경에서 사는 아이는 계속되는 과잉자극 속에서 사는 것에 익숙해진다. 과잉자극으로 인해 감각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다음과 같은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

 

* 과잉자극은 경이감과 창의력, 상상력을 파괴한다.

* 아이는 수동적이 되어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지루해 하고 게을러진다. 기대감도 조금씩 줄어 들고 주변에 무관심해진다. 과잉자극과 더 많은 잡음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과잉자극은  어린이로 하여금 갈수록 더 높은 수준의 자극 속에서 살게 한다.

* 아이는 과잉행동을 보이고 과민해지며, 자기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규칙을 어기면서 어른들의 주의를   끌고 싶어한다. 또한 과잉자극에 중독되어 갈수록 더 높은 강도의 감각과 즐거움을 찾는다.

* 과잉자극에 익수해질수록 잡음은 커지고, 악순환이 계속된다.

* 과잉자극을 받은 아이는 이후에 그 모든 것을 보고 그대로 배운 청소년이 된다. 이런 과잉자극에 둘러  싸였던 아이의 과거는 현재의 욕구를 차단한다.  문화나 종교, 예술 등을 잘 알지 못해서 그저 쾌락  도구로써 그것들을 파괴하려 하고, 학교 폭력이나 술, 약물 등에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갈수록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폭력적이고 배은망덕한 태도를 보이며,  산만하게 과잉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어른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이 감정을 조절하는데 어려워하는 모습을 접하게 된다. 그들이 외부자극에서 주요동기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주변환경이 아이들의 속도와 필요를 따라갔지만, 오늘날은 아이들이 갈수록 더욱 자극적인 것들을 만들어 내는 환경의 광적인 속도에 적응해야만 한다. 지금 아이들은 텔레비전과 비디오 게임에 빠져있고 쉴새 없이 과외활동을 하며, 따라서 수면시간은 줄고 말하는 장난감들에 조기교육까지 온통 난리통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몬테소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이가 고립된 반응을 보이고 부모를 무시하며 의기소침해 있고 변덕스러움 등 부모가 원하지 않은 행동들을 보이면, 어른들은 이런 행동이 아이가 큰 소리로 하는 표현이자 본능적인 절규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않고, 그저 아이의 존엄성에 반하는 뭔가를 강요하거나, 아이 발달에 꼭 필요한 것들을 못하게 하며 빼앗기만 한다.’

 

설령 교사가 아이의 이런 마음을 알아챈다 하더라도 아이를 더 나쁜 상황이 계속되는 악순환으로 밀어넣는 경우가 많다. 즉 규율을 더욱 강화하면서도 고집스럽게도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는 해소해 주지 않는다. 아이들과 계속 싸우며, 갈수록 더 많은 자극을 주는 수업들에 밀어넣는다. 또한 그 중독증세를 완화시키려고 바로 DVD를 틀어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악순환은 가속되고 갈수록 문제해결만 더 어렵게 된다파스칼은 ‘인류의 모든 문제는 인간이 방에서 혼자 침묵할 수 없게 된 데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만일 아이가 과잉자극의 소용돌이가 계속되는 악순환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누군가 답을 써준 문제지를 받지 않고, 자유로운 놀이를 통해 스스로 리듬을 발견하게 된다면, 지적잠재력과 상관없이 훌륭한 아이 본연의 모습이다.  아이는 호기심 많고 발견하길 좋아하며 발명을 잘하고 의심을 품으며, 예측을 해보고 관찰을 통해 맞는지를 확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는 청소년이 되어서도 계속 지적인 호기심을 갖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소설을 읽고, 여러 장소의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의 특징을 보고 느끼면서, 오랜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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