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동기를 유발하는 원동력은 경이감이다. 아이들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왜 그렇게 놀라워 하는 것일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이상한 나라는 고양이가 말을 하는 등 불가능한 것들로 가득차 있다. 바로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나라인 것이다. 불가능한 것들 생각하는 아이들이 능력은 정말로 놀랍다. 엄마, 비는 왜 위에서 아래로 내리죠?, 왜 꿀벌은 캐러멜 소스랑 메이플 시럽은 만들지 않죠?, 왜 개미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죠? 무엇보다 부모는 늘 반복되는 이런 질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쓸데없는 질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쓸데없는 질문에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자녀들을 보면서, 부모들은 한숨을 내쉬며 걱정을 늘어놓는다. 도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심어준거야? 두서너 살 된 아이들은 터무니 없어 보이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댄다. 그렇다고 딱히 대답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플라톤은 경이감이야말로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실 앞에서든 '있을수'도 있다는 단순한 가능성에 감탄하며, 사물이 '있는' 방식이나 세상의 자연법칙과 하나하나 마주할 때마다 놀란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가장 먼저 엄마를 보고 그리고 아빠를 보며, 그 다음에 형제를 발견한다. 그러고나서 서서히 다른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아저씨, 아줌마, 꿏, 곤충, 돌멩이, 달, 그림자. 중력, 빛, 그림, 꿈 등을 발견하게 된다. 체스터턴의 말처럼 ‘아이의 귀여운 머릿속에서는 천지만물이 창조의 7일 처럼 새롭게 열린다’.
경이감은 알고 싶어하는 욕구다.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면 존재앞에서 처음 또는 다시금 그것에 대해 알고 싶어지고, 그렇게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아들은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지 않고, 하나의 선물로 보기 때문에 모든 것에 놀라는 것이다. 경이감의 본능적 메카니즘이 일상을 초월해서 더 큰 뭔가에 도달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더욱 겸손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경이감은 아이의 본능적인 메커니즘이다. 즉 아이는 경이감을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아이가 경이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것을 존중하는 환경에 있어야 한다. 인간은 정말로 알고 샆어하는 욕구를 갖고 태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학습과정은 전부 환경에 달린 것일까? 학습은 인간의 내부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외부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어린이는 어떻게 발전해나갈까? 보통 환경에서 발전하는데 필요한 뭔가가 아이안에 들어있는 것일까? 아니면 외부자극의 중재가 필요한 것일까? 배움은 어디에서 시작할까? 내부일까? 외부일까? 그 과정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아이 자체일까? 아니면 자극일까?
20세기 전반에 몬테소리는 교육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그녀는 '주인공은 어린이임'을 역설했다. 또한 교육과정은 아이 내부에서 시작하며, 주변환경과 교사는 단순히 조력자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변화의 원인이자 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오로지 아이뿐이다. 우리의 목적은 만들어내는 것을 멈추고 아이가 본래의 삶의 법칙에 맞게 조화와 자유를 쉽게 누리게 해주면서, 아이안에서 변화가 스스로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 뇌의 가소성은 몬테소리가 0세에서 3세까지 아주 민감한 시기에 감각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말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자극을 받지 못했거나, 아주 적게 받은 아이들에게 ADHD와 같은 다양한 심리적, 교육적 장애가 나타났다. 아이의 모든 부분이 나이에 알맞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자극이 있어야 한다. 만일 아이가 어떤 부분이 사전에 표시한 목표기준에 다다르지 못하면 시정조치가 이루어지고, 뒤처진 부분을 정상화하기 위한 훈련이 이루어진다. 이 방법에 따르면, 아이는 밖에서 즉 외부에서 시작된 학습과정에서 동기유발이 되어 움직이는 존재이다. 이런 방법은 더 일찍, 더 빨리, 더 잘 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깔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능한 모든 자극을 줄 것을 권하고 있다.
적합한 인성발달과 더 나은 인지 과정 준비에 걸리는 시간은 생애초기에 아이와 돌보는 사람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의 질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들은 있다. 조기 자극에 대한 더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건강하고 정상적인 아이를 뽑는 것 부터가 심각한 오류이긴 하다. '더 빨리, 더 일찍, 더 잘'은 과학이 계속 주장하는 근거없는 믿음일 뿐이다. 대중의 믿음과 달리 가능한 한 빨리 정규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신경과학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뇌의 가소성이 생애 초기가 아니라, 평생 지속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자연 친화적인 환경이라고 해서 자극이 전혀 없는 환경은 아니다. 결국 자극의 부재가 아이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증거는 있지만, 반대로 일반환경에서 더 많은 자극을 주면 더 발전한다는 근거는 없다. 우리 자녀들의 지능을 높여준다며, 대중에게 잘못된 신념을 심어주는 게임이나, DVD, CD, 비디오 게임이 그렇다.
미국의 어린이 오락산업은 그들이 만들어낸 제품의 장점을 부모들에게 매우 강하게 설득한다. 이런 제품들의 소비와 언어학습 및 외국어 학습효과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실제로 미국 소아학회에서는 두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는 털레비젼을 보여주지말라고 권장한다. 아이들의 건강과 발달측면에서 화면을 보는 것이 위험요소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연구들은 많다. 1999년 캘리포니아 대학 신경과학 분야의 권위자 댄 시겔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아기나 어린아이들에게 더 좋은 뇌를 만들어주려는 희망을 품고 과도한 감각자극을 폭탄처럼 던져서는 안된다. .. 감각자극이 최소인 환경에서는 생애초기에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시냅스 연결만으로도 뇌를 알맞게 발달시키기에 충분하다. 생애 발달 초기에 많은 자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린이와 돌보는 사람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즉 애착관련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발달의 핵심은 과잉 감각자극이 아니라 대인관계의 상호작용이다.’
우리는 인지발달 과정이 아이의 내부에서 시작하고, 시겔박사가 말한대로 주변, 주로 인간관계의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시겔은 아이내부에 있는 메커니즘이 뇌를 발달시켜준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신념이 어떻든 대다수 부모와 과학자, 교육자들은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무형의 어떤 것이라는 관점에 동의했다. 플라톤은 철학의 시작이 경이감이라고 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것을 알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밖에서부터 지속적인 자극을 줄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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