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자연히 남의 손을 빌려야 할 일이 많아진다. 단지 그런 경우 다소라도 자신에게 경제력이 있다면 가능한 한 타인의 호의를 기대하지 말고, 일로 생각해 직업적으로 받아들여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의외로 득이 되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노인을 돌보아 주어도 아무 대가가 없으면, 아무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쓰면 참 쌀쌀 맞은 생각이라는 소리로 들릴 지 모르지만 분명 세상에는 결코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령자를 잘 돌보아 주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라는 체험을 한 사람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노인이 되었을 경우 그러한 구분을 분명히 하고 싶다. 타인의 호의에 의지하면서 어물어물 하다가는 자신의 자립심을 망가트리게 된다. “돈이면 다”라는 생각은 천박한 생각이다. 요즘 같은 물질 만능 세상에 인간의 마음을 적어도 돈으로 표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마음은 단지 돈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노인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줄어들었다. 모든 것을 자기 혼자 힘으로 해나가고 있다고 과신하는데서 감사의 표현은 상실되어 간다. 훈훈한 노후를 위해 지켜야 할 한가지만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는한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몸도 움직일 수 없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엄연한 인간이며 아름답고 참다운 노년과 죽음을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말해 노인은 감사의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다기보다 감사의 마음을 잃게 되는 것이 노화의 한가지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 겉다. 괴로울 때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감사의 표현 바로 그것이 최후에 남겨진 단 한가지 고귀한 인간의 임무인 것이다. 그리고 감사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은 없다. 누구의 힘으로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는가를 생각한다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감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모든 방법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같지 않으며 마음에 들지 않게 된다. 물론 많은 노인들이 젊은이보다 효과적인 방법 논리를 몇 가지씩 갖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좀처럼 변하지 않는 창조물이다. 인간의 본질은 결코 충고 정도로 변하지 않는다. 철학가 에릭호퍼의 “선창일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모세는 헤브라이인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모세는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는 것은 자유인에서 노예로 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괴롭다는 것을 깨닫는다.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으로 변하는 데는 많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신분이 자유인이 되는 것 외 더욱 중요한 것은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자기 의식과 다시 태어났다는 의식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모세는 어떠한 신화도 기적도 노예를 자유인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노예를 사막으로 데려가 노예세대가 다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세대가 들어설 때까지 40년간을 기다려야 했다. 모든 혁명 지도자들은 열렬하게 변화를 부르짖지만 사람들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세와 달리 그들에게는 적당한 사막이 없을뿐더러 40년을 기다릴 만큼 인내심도 없다. 그래서 기성세대를 내쫓기 위한 숙청 테러가 일어난다.
재미있는 것은 객관적인 과학의 세계에 있어서도, 인간의 두뇌는 습관에 얽매여 있는 일상생활의 세계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의 설득에 의해서가 아니고, 그 반대자가 마침내 다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과학적 진리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함으로써 얻는 것이다. 나 자신이 변화하지 않듯이 타인의 일하는 방법을 바꾸어 놓으려하는 것은 무리다. 우리들이 조직의 일원으로서 타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냉정히 말해서 기껏해야 그 결과 뿐이며 방법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감사 표시도 자신의 건강, 체력, 재력이 그런 일을 할 수 없게 만든다면 그러한 교제에서 지극히 자연스럽게 물러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선물을 사러갈 수 없게 되면 전화로 주문하든가 이리저리 궁리를 짜내는 것도 노화를 예방하는 좋은 일다. 그러나 타인을 시켜서 자신의 생활규모를 유지히려는 것은 같이 사는 가족에게 폐가 될 뿐이다. 늙어서 혼자 생활하게 되면 애정을 쏟고 싶은 대상이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화단을 만들거나 개를 키우거나 하는 노인은 몸과 마음 모두 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신의 체력이 그것을 지속할 수 없게 되면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젊은 세대 쪽에서 보면 노인을 보살피는 것 조차 힘든 일인데 개나 화초까지는 어렵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동물을 키우고 화초를 키우는 것은 선택과 기호 문제다. 여행하고자 할 때 불편하지만 애완동물과 지내는 즐거움은 날마다 있는 것이므로 매일매일 삶의 보람을 택하고, 여행은 희생하자는 사고방식도 있을 수 있다. 잘 생각해서 선택할 일이다. 애완동물에 대해서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지만 상대방이 같은 정도의 감정을 가질 수는 결코 없다. 자신이 기르고 있기 때문에 귀여운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이야기를 오래하는 것은 분명히 자기 생각만 하는 노화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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