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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

자유로운 삶을 가르치는 교육(1)

교육은 양동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밝히는 것이다. (예이츠)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학교에서는 그럴듯하게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생할속에서 노예가 되는 방법들이다. (존 홀트)

 

우리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학교에서 바로잡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이 땅의 교육제도는 이성적으로 성찰하는 기술은 가르치지 않고, 주류문화의 가치를 반영할 뿐이다. 학교는 사회문화적 인습을 고수하면서 우리가 텔레비전, 상업주의, 정치, 종교같은 사회적 권력의 지배를 받는 것을 묵인한다. 반영을 원한다면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말고 다른 종류의 교육이 필요하다. 내면을 살피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그런 교육 말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자신의행동과 결정을 반성하고, 현재의 상황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사실 학교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따르고 서로를 돌봐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 대신 치열한 경쟁과 같은 사회적 해악을 그대로 전달할 뿐이다.

 

1957년 존스 아이랜드에 최초이 공민학교가 설립되었다. 교사는 동네에서 일하는 미용사 버니스 로빈슨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 저는 교사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함께 배울 것입니다.’ 그녀는 세계인권선언문을 기본교재로 선택해서 읽는 법을 가르쳤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은 ‘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양심을 지니고 있으며, 형제애의 정신에 입각해서 서로간에 행동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이랜더 시민대학은 마일즈 호튼이라는 사람이 설립했다. 라인홀트 니부어는 기독교인은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를 돕기위해 사회변화에 노력해야 한다며, 사회적 복음을 열정적으로 지지한 인물이었다.1931년 성탄절 밤 호튼은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 나는 잠들지 않았지만 분명 꿈을 꾸었다. 지금 네가 할 일은 곧장 돌아가서 소박한 장소를 찾고 그곳으로 거처를 옮겨 머무는 것이다. 너는 평생토록 학교를 다니더라도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생활속에서 다른 이들과 소통할 때에 비로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후에 호튼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하이랜더 프로그램은 인종을 불문하고, 사회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와 형제애의 이름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이랜더 접근방식은 무엇일까? 바로 대화를 통해 해답을 찾게 하는 것이다. 지혜는 사람안에 있다. 서로가 서로를 지지할 수 있다면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19세기후반 스웨덴은 ‘스터디 서클’을 활용해 전세계 진보주의자들이 감탄할만한 국가를 만들었다. 스웨덴은 아직도 이 스터디 서클을 건강한 민주주의 핵심요소로 여긴다.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파울로 프레이리 교수는 ‘피억압자들의 교육학’이라는 책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 책은 브라질의 가난한 농민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문맹 퇴치 운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레이리 교수의 교육사상은 사실과 정보를 주입하는 ‘ 은행적금식 ’ 교육에서 탈피학생들의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주는 ‘산파식’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자신과 상대를 존중하며 대화할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대화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면, 문제의 해법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민중 교육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하여 서로 대화하는 거라면 거실에서도 가능하다.

 

1985년에 제작한 영화‘변해야 한다’는 하이랜더 시민대학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준다. 영화감독 루시 마시 피닉스는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무엇이 사람들을 무기력한 기분을 멈추고 변화를 바라게 만들까요? 이 영화는 경험이 가르쳐주는 교훈을 신뢰하기 시작하면서 삶의 문제에 대한 전문가의 판단을 점차 거부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서로에게 교훈을 깨닫게 만드는 하이랜더 방식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변화의 시대마다 민중교육과 같은 형태의 모임이 출현했다. 프랑스 혁명 때는 살롱이 있었고 스웨덴에는 스터디 서클, 덴마크에서는 시민대학, 라틴아메리카에는 파울로 프레이리 교수의 대중교육이 있었다. 우리는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지유, 평등, 존엄, 이성, 권리, 양심 그리고 형제애의 가치를 다시금 강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동체 교육은 곧 자성하는 것이다.  자성이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문하고, 인간과 지구의 운명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해야 흑인소년이 너무도 쉽게 살해당하는 이런 폭력적인 문화에서 서로를 돌보는 문화로 바꿀수 있는지 대화하는 것이다. 공동체 교육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모이게 함으로써 관계를 맺게 하고, 각자의 가치관을 말하게 함으로써 소명을 찾게 하고, 사람들과 어울림으로써 유희를 즐기게 하고, 협동하여 변화를 만듦으로써 삶을 통제하게 한다.

 

공동체교육에는 생각하기, 개인의 경험에서 배우기, 대화하기, 행동하기의 네가지 주요 특징이 있다. 어쩌다 미국 국민들은 폭스 뉴스채널에서 전하는 말을 그대로 신뢰하고, 유명 연예인을 숭배하고, 극심한 빈부 격차를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들게 되었을까? 우리는 당당히 일어나서 이나라에 이제 그만 자성해야 한다고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자고 요청해야 한다현재의 문제점을 함께 생각하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모아야 한다. 수많은 정보와 사상, 상업적 광고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동조종장치에 모든 것을 맡기고 머리로 생각하지 않으면 권력을 쥔자들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의식있는 선택을 하고,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종교적 억압과 지배를 타파하고 읽기와 쓰기 교육을 보급하면서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고, 서서히 교화와 왕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훌륭한 사상가가 없다. 게다가 우리는 시간도 없다.  모일만한 장소도 없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을 가치있게 여기지도 않는다. 새로운 사상을 내놓고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당신을 바보처럼 보이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하는 행위는 삶에 관한 질문을 하게 만들고, 실천적인 활동가로 변신시켜 신성한 경험을 하도록 이끈다. 우리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자성할 수 있도록 북독아야 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전문가에게 기대하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좋은 대화란 바로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