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힘이 부치는 일을 일체 하지 않는 사람은 젊었다 할지라도 노인성 생활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노인의 불행 가운데 적어도 일부분은 주위 사람들의 방치가 아니라 노인 당사자와 그 주위 사람들의 과잉보호에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가혹함을 견뎌내는 습관은 비교적 젊었을 때부터 길들여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힘든 일을 매일 지속적으로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노년에는 병 그 자체 보다도 요양생활이 두렵다. 불과 1-2주간만 누워 있어도 앓고 난 후 다리가 눈에 띄게 움직여지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젊었을 때는 2,-3주간 누워 있어도 병이 나으면 그것으로 완전히 원래 상태로 회복된다. 그러나 노인은 다르다. 고열이 있을 때 몸을 움직이는 것을 삼가야겠지만 조금이라도 증세가 좋아지면 어쨌든 하루종일 누워 있는 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을 숲 내음 그것은 썩어가는 낙엽의 체취다. 나는 숲이 좋다. 숲에 혼자 서면 인간의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소리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자연의 냉엄함을 생각한다. 새싹이 돋아나고 그것이 나무를 자라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잎은 머지않아 지고만다. 나무를 인간사회의 역사라고 한다면 하나 하나의 잎인 인간도 나뭇잎과 같이 떨어져 썩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낙엽이 썩어서라도 토양이 되어 어린 잎을 나아가서는 나무 자체를 자라게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제 젊은이들에게 차차 우리 자리를 내어주고 또 그것을 아쉬워해서도 안될 일이다. 인간에게는 두번의 시기가 있다. 양육되는 시대와 양육하는 시대. 우리들은 음식물과 지식을 부여받아 버젓한 한 인간으로 자라난다. 그리고는 서서히 타인을 양육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이제 노인의 문턱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나보다 훨씬 고령의 사람을 예우하고 싶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양육 되어지는 시기가 온다. 이제 차차 우리를 양육하게 되는 젊은이에게 시기하지 말며 그 자리를 양보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한다.
노인이 되어서도 매사에 자신이 전면에 나서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진취적인 훌륭한 생활방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른답지 못하다. 노인이 제일 먼저 잃는 것은 어른다움이다. 노인은 언뜻 보기에 누구나 쉽게 단념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어른다움이란 대국적 견지에서 스스로 뒷전에 물러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이득이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을 어느 정도 희생하며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어른다움의 미학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누구든지 한번은 젊고 누구든지 한번은 늙는다. 이만큼 공평한 흐름을 시기하는 것은 탐욕이다.
노인들은 잘 단념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그렇지 않다. 노인은 의외로 공연한 참견을 잘한다. 손주의 결혼까지 간섭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예외로 치더라도 회사의 젊은이, 후배, 집안의 다 큰 청년등의 처세술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하는 노인이 의외로 많다. 물론 풍부한 경험을 한 사람의 충고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노인의 의견이란 단지 한가지 의견으로써 그치는 편이 무난하다. 노인이 되면 절망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결코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일생에 절망하고, 인간이 만든 모든 부실한 제도에 절망하고, 인간 지혜의 한계에 절망하고, 온갖 것들에 깊이 절망하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기꺼이 죽음을 받아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망을 포기하지 못한 사람은 어설픈 기대로 이 세상에 연연하며 이런 저런 일에 간섭하는 것이다. 물론 어설프더라도 나름대로 희망을 갖는 것은 필요하지만….
노년이 되어서 갑작스레 젊은이들의 교육이 되먹지 않았다느니 손주에게 처세술을 가르쳐야 한다느니 등등을 외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혹은 자신의 존재 의의를 어떻게든 느끼게 해 주기 위한 발버둥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구의 장래나 젊은이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모른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반 평생으로 미루어 보건데 사회가 예정한 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전문가가 아닌 우리들 자신의 사소한 인생계획이 생각대로 되지 않음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생은 잘못된 대로도 괜찮다. 나도 잘못했고 상대도 잘못했다. 서로 이것으로 용서하고 용서 받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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