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4명중 한명이 노인인 시대가 닥칠 때 노인이라는 사실이 지위나 자격으로 통할 수 없다. 자립의 마음가짐은 정신의 젊음을 유지하는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므로 그것은 바로 자신을 위하는 일이 된다. 노인이 되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일종의 응석이다. 세상 사람들에 대해 해도 좋을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분간해야 한다. 가족끼리도 마찬가지다. 가정은 노인이 되어 의존하고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지만 노인이라고 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함부로 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타인이 참고 있는 것을 노인은 양해를 받은 듯 하는 착각한다. 이것은 노인과의 관계에 한한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는 마음을 편히 열어도 좋다고 해서 기분 나쁜 일을 마구 털어 놓거나, 상대방의 급소를 찔러도 상관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정 안에서의 표현은 부부사이든, 부모자식 사이든 편안함과 배려 그리고 위로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었다고 이것들 중 어느 한가지를 간과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자식이 의무적으로라도 부모를 찾아 뵙는 것을 정하는 것이 좋다. 이때 부모쪽에서는 될 수 있는대로 집을 깨끗이 잘 치워놓고 옷도 깔끔한 것으로 입고, 즐거운 화제를 생각해 놓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그 기회를 푸념을 늘어 놓는다거나, 불평을 토로하는 기회로 삼아서는 안된다. 자신의 체력과 수입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한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여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자식을 맞이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간에는 서로 조금씩 노력하는 부분이 있어야 자연스럽다고 생각된다. 고통이란 것은 어느 누구 것과도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든 마찬가지다.
사람은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노년에는 자기 중심적이 되는 법이다. 노인은 솔직히 말해서 이미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왕성한 흥미를 갖고 있지 않다. 자신과 관계없는 바깥 일에 흥미를 갖는 능력은 남성적인 특성으로, 여성에게는 다소 결여되기 쉬워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외부세상과 멀어지게 된다. 바깥 세상일과 멀어진 경우 자신이 처한 처지를 인간의 공동 운명이나 전체적인 사회상황에서 파악하는 일이란 도저히 불가능해지고 만다. 그러면서 나의 불행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은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되었기 때문에 내가 가장 불행하다고 잘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만큼 고생한 사람도 없으니까 내 일생이야말로 드라마로 쓰면 좋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생은 드라마와 같다고 생각한다. 자기만을 특별한 경우인양 생각하는 것은 역시 너무 연약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반면에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서도 깊은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리 평범한 삶처럼 보여도 인간의 일생은 어느 누구의 것도 위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일에 자신만큼 세상 사람들이 감동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깨달을만 하다. 자신이 축하받기 위해서 바쁜 사람들에게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돈을 쓰게 하고 마음고생을 시켜서 괜찮은 것은 아니다. 우쭐해서 어쩔줄 몰라 그저 좋아한다면 어떻게 나이를 먹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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