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戒 老 錄 소노 아야코

푸념해서 좋은 점은 단 한가지도 없다

 젊을 때는 푸념도 애교가 된다. 푸념을 늘어놓지 않는 사람은 반대로 친구 만들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노인의 푸념은 자신도, 타인도 비참하게 할 뿐이다. 푸념은 산사태와 같아서 한번 시작하면 끝없이 계속하기 마련이다. 불평만 늘어 놓는 노인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 들지 않는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평은 그늘진 느낌을 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참고 살아 왔던가. 그것은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혹은 이득을 보기 위해 참고 견디어 왔던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는 실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므로 그 사람들의 존재를 뜻있게 하고, 함께 일하며 살아가기 위해 기꺼이 누구에게라도 양보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참한 일도 아니며 전혀 슬퍼할 일도 아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성격이 연마될지언정 삐뚤어지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런 인내심은 점차 약해지는 것 같다. 몸이 쇠약해지고 능력이 줄어들고 친구가 이 세상을 하직하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슬프지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하다고 해도 그 마음 그대로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어서 좋을 것은 없다. 외형만이라도 좋다. 마음속에서부터 명랑하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그런 위선적인 행동은 아무리 많이 해도 좋다. 사람이 삐뚤어져서 좋을 시기는 평생에 한번도 없다. 삐뚤어진 인간은 사귀기가 아주 성가시다. 차라리 어수룩한 사람을 사귀는 편이 훨씬 낫다. 빼딱하게 생각한다는 자체가 교만으로 흠뻑 찌든 냄새를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