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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코칭 (존 가트맨, 최성애, 조벽)

감정에 솔직한 아이로 키우자

실연의 아픔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실연을 당한 사람의 마음을 읽고 공감해줄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대충 짐작은 할 수 있겠지만, 마음으로 공감하기는 어렵다. 마음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무리 상대의 마음을 안다, 이해한다고 해도 상대방는 믿지 못한다. 감정코칭도 이와같다. 부모가 다른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을 나쁜 감정이라 생각하면서 그런 감정이 생길 때마다 안간힘을 쓰며 부정하고 눌러왔다면, 아이가 미음의 감정을 표출할 때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을까? 입으로는 '그래 밉고, 싫을 수 있어'하고 말해도, 마음으론 '그런 감정을 느끼면 안돼'를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감정코칭은 실패이다. 아이의 감정을 잃고 공감해 주려면 먼저 부모 자신의 감정부터 인식해야 한다. 감정을 인식하다는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꼭 감정을 겉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다. 다만 자기안에 꿈틀대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리기만 해도 된다.

 

감정이 그 감정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뒤에 또다른 감정이 깔려있는 감정을 초감정이라고 한다. 영어로 메타감정이라고 하는데 meta는 '뒤에, 넘어서'라는 뜻이므로, 결국 초감정은 감정 뒤에 있는 감정, 감정을 넘어선 감정, 감정에 대한 생각, 태도, 관점, 가치관 등이다. 초감정을 주로 감정이 형성되는 유아기의 경험과 환경, 문화 등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될뿐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인 반응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초감정을 본인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초감정을 인식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자신에게 어떤 초감정이 있을지를 모른다면, 아이의 감정을 제대로 읽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그런 초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아이를 탓하거나 자신의 관점이 모든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인듯 착각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알아차리는 것은 감정코칭의 전제조건이다. 굳이 초감정을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하고, 감정코칭에 악영향을 미치는 초감정을 부정하거나, 없애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자신에게 그런 초감정이 있는 것만 인식해도 충분하다초감정은 무의식중에 나타나기 때문에 자신의 초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알기가 어렵다. 우선 어떤 상황에 필요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어떤 초감정이 있다고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과 감정이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슬퍼도 슬퍼하지 않고 화가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고, 기쁜 상황에서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만큼 불행한 일도 없다.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도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온 몸으로 느낀 감정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표현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조절하면 된다. 그러려면 어른이 되어도 아이의 감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이의 감성으로 다양한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고, 어른이 이성으로 감정에 적절히 대응하고 조절할 때, 가장 건강한 자아가 완성된다.

 

인간발달학적으로 볼 때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건강한 아이를 지니고 있다아이는 자기 중심적이며, 감정으로 사물을 느끼고,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며, 생기발랄 하다. 원하는 것을 즉각 하고자하고, 웃고울며, 화내는 등 감정표현을 시시각각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다운 모습을 지니면 순수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어른이 모습도 지녀야 한다. 어른다운 모습이란 참을줄 알고, 하기싫은 일도 하고, 양보도 하고, 법도 시키고, 남을 배려하고, 예의를 지킬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와 어른의 상반성을 조화롭고 균형있게 조율할수 있는 건강한 자아가 있어야 한다. 아이는 어른이 하라는대로 애어른으로 행동할 필요가 없다. 아이다운 감정의 모습에 대해 꾸지람이나 훈계와 비판을 받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뒤 나이에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엄마가 자꾸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조심해라, 떠들지 마라, 울지마'라고 하면 할수록 아이는 어른스러워지는게 아니라 더욱 아이 영역이 커진다.

 

'should'를 빼고 'want'를 넣어야 한다. 아이를 깨워 늦지 않게 유치원에 보내야 해, should 대신 아이가 제 시간에 유치원에 가기를 원해want 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아이의 마음이 되어야 아이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 학습을 놀이처럼 한다면 아이들은 아주 재미 있어서 누가 보든 안보든 열심히 할것이고, 말려도 할 것이다. 하트업 박사에 따르면 아기들끼리의 상호놀이는 대략 생후 6개월부터 발견된다. 아 무렵 아기는 다른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하고, 미소를 보이기도 한다. 돌이 지나면 아기는 평행놀이라고 하여 각자 장난감을 갖고 따로 놀며, 상호작용은 별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상대가 노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하고, 한 아이가 웃으면 다른 아이도 따라 웃는 등 다른 아기의 행동에 반응한다. 생후 15-18개월부터는 단순히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간단한 사회적 놀이를 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놀다가 자기 장난감을 다른 아기에게 주기도 한다. 만 24개월부터는 특정주제를 놓고 놀면서 규칙대로 순서를 바꿔 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두돌 지난 아이는 숨박꼭질을 할 수도 있다. 유치원에 다니는 시기에 아이는 협동적 놀이를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다. 이때 상상력을 동원하여 소꿉놀이도 하고 전화로 누군가와 통화하는 흉내도 낼 수 있다. 조금 더 크면 상상력이 훨씬 더 풍부해져서 접시가 자동차 운전대로 둔갑하고, 나무 막대기가 장군의 칼이 되기도 한다. 놀이의 효용성에 관하여 연구하는 여러 연구팀들은 이 시기의 상상놀이가 아이의 어휘력, 언어 구사력, 표현력, 기억력, 유추능력등 전반적인 인지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분노, 슬픔, 두려움, 미움과 같은 감정을 자주 격렬하게 느끼며, 진정 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다보니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도 어렵다. 직장에서 자주 분란을 일으켜 제대로 직장을 다니지도 못하고, 술에 빠지기도 한다. 감정표현이라는 말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부모처럼 격렬한 표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감정을 마구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그것을 솔직하게 시인한다는 뜻이다.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숨기는 부모의 자녀는 자라면서 부모와 점점 멀어진다.  또한 아이는 부모를 보면서 감정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배우는 부분이 많은데, 감정을 숨기는 부모밑에서 어려운 일이다. 아이가 화날 만한 행동을 했을때 화를 내거나 말썽을 부려 속상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를 때리거나 언어폭력을 휘둘러서는 안된다. 아이를 존중하고 대화를 통해 왜 화가 났는지, 화가 나서 힘든 감정 등을 알려주면 아이는 오히려 부모를 신뢰하고 따른다. 만약 감정이 너무 격해져 아이와 이성적으로 대화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잠시 시간을 두고 자기 진정부터 해야 한다. 과학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자기 진정법은 호흡을 천천히 고르게 3-4회 하는 것으로 약 20-30초 정도 걸린다. 심장은 이성보다 감정에 즉각 반응하는데, 이때 반응속도는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상대의 감정을 공감하고 수용할 수 없다. 시각 자체에 축소되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마련이다. 감정을 느끼는 것도 일종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을 단번에 바꾸기 어렵듯이 오랜 시간 무감각하게 살았던 사람이라면, 자기감정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