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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게 산다는 것( 알렉스 파타코스 지음

삶의 순간순간 의미를 깨달아라.

 

미셀은 최근에 50회 생일을 보냈지만 자신이 반세기를 살았으며 은퇴할 나이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지난 세월은 힘겹고 고단할 뿐 즐거움을 찾기 힘들었다. 두번 이혼을 하고 십대의 두 아이들 둔 홀어머니인 미셀은 삶에 아쉬움이 많고 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이혼한 후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기가 힘들었다. 마음에 드는 직장을 발견했다 싶어도 금방 시들해졌다. 미셀은 계속 직장에서 형편없는 직장상사, 게으른 동료들, 불분명한 업무구분, 회사의 지원부족 등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그녀는 직장을 전전하다가 아렇다할 경력을 쌓을수 없었다. 그녀는 집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았으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그녀는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허둥지둥하면서 당장 급한 불을 끄는 식으로 살았고 고통의 불씨는 그대로 남았다. 그녀는 점점 자신이 처한 형편에 대해 비관적이 되면서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버릇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셀은 불행한 현실을 만든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고, 불평하느라 바빠서 소중한 순간순간을 놓쳤다. 그녀는 운명이 자신에게 불리한 패를 주었으며 지금 단계에서 고통을 견디면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것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삶은 무의미했고 어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한 계속 그럴 것 같았다. 왜냐하면 다른 무언가를 추구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미셀은 단지 중년의 위기를 겪는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미셀은 의미 추구를 포기함으로써 삶에서 일찍 은퇴하는 쪽을 택했다.

 

의미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미는 찾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다. 의미는 여러기지 형태로 찾아온다. 때로는 우리 삶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때로는 몇날 몇달,또는 몇년씩 의미있는 순간을 놓치고 흘려보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무의미하게 보였던 뭔가가 결정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때로는 무심코 지나친 순간들의 조각이 모여 조각 이불을 만드는 것처럼 수 많은 순간들의 집합적인 의미로 마침내 우리의 눈에 들어 온다.

 

발빠른 기업들의 시대에서 우리는 속도를 늦추고 반성하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다. 가다가 멈추는 이유는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이메일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시간이 우리에게서 멀어지면 의미도 함께 멀어진다. 그리고 시간과 마찬가지로 너무 늦게 의미를 인식한다. 어느날 아침에 눈을 뜨거나, 어느 날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갑자기 피곤함, 삶의 붕괴, 가치없는 속도가 우리를 무의미하게 남겨 놓은 것을 깨닫는다. 그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그것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의 삶은 의미있는 대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발길을 멈추고 충분히 오랫동안 감상을 할 때만 의미가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