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쓴 목적은 독자들이 경제에 대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과학이 아니고 앞으로도 과학이 될 수 없다. 경제학에는 정치적,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확립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학 논쟁을 할 때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로마의 정치인이자 유명한 웅변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말이다. 가끔은 어떤 경제학적 주장에 정치적 색체가 드리워져 있는 것을 알아차리기 쉬울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낙수효과이론은 총생산량에서 더 큰 부분을 부자들에게 주면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실현되지 않는 가정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어떤 때는 특정 경제학적 주장이 뜻하지 않게 일부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단 한명의 구성원도 사회로부터 짓밟힘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파레토기준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유리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 기준은 한 사람에게라도 피해를 주는 변화는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득권층에게 유리하다. 시장에 어떤 것을 포함 시킬지를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강도 높은 정치적 행위이다. 경제학적 현실은 너무도 복잡하기 때문에 하나의 이론만으로는 완전히 분석할 수 없다. 각각의 경제학 이론은 기초적인 경제학적 단위를 각각 다른 방법으로 개념화 하고,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질문을 하고, 다른 분석도구를 사용해 답을 찾아내려 한다. '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문제를 특정 이론의 관점에서만 보면 특정 질문만 하게 되고, 특정한 각도에서만 답을 찾게된다.
‘파우스트’를 쓴 문학가이자 ‘색이론’을 쓴 과학자였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모든 사실은 이미 이론이다'라고 말했다. 경제학에 등장하는 숫자들은 모두 하나 같이 최소한 어느 정도 어떤 경우에는 극심하게 논쟁의 여지가 있는 개념을 측정하려는 시도의 결과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경제지표를 구축하는 방법은 우리가 경제를 어떻게 조직하고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칠수 있다. 경제학에 등장하는 숫자들이 모두 쓸모없다거나, 오도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숫자를 사용해야 우리가 사는 경제세계의 규모를 이해하고, 거기에 생기는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요즘의 경제학은 많은 부분을 시장에 할애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그물처럼 얽히고 설킨 교환관계로 보는 신고전주의 학파에 속해있다. 즉 개인은 수많은 기업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고 자신의 노동서비스를 그중 하나에 판매하며, 기업은 많은 개인 및 기업과 매매행위를 하는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경제를 시장과 동일시 해서는 안된다. 시장은 경제를 조직하는 여러 가지 방법중 하나일 뿐이며, 사실 현대경제에서는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이제 수많은 경제활동이 기업내부 지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정부가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 주도하기도 한다. 정부 그리고 세계무역기구 같은 국제기구가 점점 더 시장의 한계를 정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행동에 관련된 규범을 만들어 낸다. 시장에 너무 큰 초점이 맞춰지면 대부분이 경제학자들이 경제생활에서 엄청나게 넓은 부분을 간과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의 복지에 상당히 부정적이 영향을 미쳤다. 교환에 초점을 맞추고 생산을 간과하면서 일부 국가의 정책입안자들은 제조업이 기운데 대해 안이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개인을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만 보는 관점 때문에 노동의 질을 둘러싼 문제나 노동과 여가의 균형 등에 관한 문제는 관심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해리 S,트루먼은 특유의 촌철살인 화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문가란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더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뭘 더 배워야 한다면, 그것은 전문가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말 그대로 아주 좁은 영역을 잘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하나 이상의 넓은 영역이 결부된 문제에서 다양한 인간적 필요와 물질적 제한, 도덕적 가치를 모두 고려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려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잔문경제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주요경제학 이론에 관한 약간의 지식과 어떤 문제의 배후에 깔린 정치적, 윤리적 가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만 있으면, 경제문제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수 있다.어떨 때는 그들의 판단이 전문경제학자들의 판단보다 더 나을 수 있다. 비전문가의 판단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고 특히 좁은 영역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복잡하고 모든 경제학이론이 어느 정도 편향성을 지녔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론의 정당성에 대해 겸손하고 열린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기나름의 의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견해을 가져야 하고, 그 견해가 강하면 더 좋다. 그러나 강한 견해를 갖는 것과 자신의 견해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책 전체를 통해 우리는 경제현실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게 되었다. 그것이 가난한 나라의 낮은 임금이든, 극상류층의 조세도피처든 과도한 기업권력이나 극도로 복잡한 금융시스템이든 말이다. 때로는 현상태에서 혜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로비, 대중매체를 통한 선전, 뇌물, 심지어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능동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하기 때문에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 때도 있다. 시장의 1인 1표 원칙 탓에 상대적으로 돈이 없는 사람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소득과 부의 분배로 인한 자신에게 부과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을 거부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신념에 넘어가기도 한다. 이런 경향 때문에 현체제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마저, 그 체제를 변호하는 현상이 생긴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더 이상 경제를 전문경제학자와 기술관료에게 맡겨둘수 없다는 사실을 처참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능동적인 경제시민이 되어 경제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생계를 잇느라 몸은 완전히 지쳐 있고, 정신은 개인적인 문제, 금전적인 문제 등으로 꽉 차있다. 그래서 능동적인 경제시민이 되려면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 즉 경제학을 배우고, 경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겁날 수 있다. 일단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초적인 이해가 생기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관찰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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