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

정부가 하는 일

정치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민주사회에서 경제를 탈정치화 하자는 것은 결국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더 많이 주자는 반민주적인 주장이다. 정부실패론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은 사실상 다른 경제학 이론들에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더 열등한 것으로 취급하고, 자신들의 경제학이론이 맞는 이론이고, 심지어 유일한 경제학이라고 암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정부실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경제학이론이 맞다고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경제와 정치사이에 선명한 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의 경계 자체가 특정 경제학이론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에는 시장에서 거래가 금지된 것들이 있다. 인간, 인간 장기, 무기, 관직, 의료서비스, 의사자격증 등등이다. 그러나 이중에 어느 것도 시장에서 사고 팔면 안되는 경제적인 이유는 없다. 정부 또한 시장의 영역안에서 경제주체들이 무엇을 할수 있고, 무엇을 할수 없는지를 정하는 기본규칙을 만든다. 허위광고, 허위정보에 기반을 둔 판매행위, 내부자(기업의 내부정보에 배타적 접근성을 가진 개인) 거래 등등의 관행은 모두 금지되어 있다.  정치는 어떤 거래도 시작되기 전에 시장을 만들고, 그 모양과 범위를 정하고 수정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정부는 광범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낸다. 국방, 법, 질서, 사회기반시설, 교육, 연구, 의료, 연금, 실업급여, 보육, 노인, 요양, 빈민층 소득보조, 문화적 서비스 등등 그 예는 무궁무진하다. 또 대부분의 정부는 국영기업을 소유해 전기, 석유, 철강, 반도체, 은행, 항공서비스 등 다른 나라에서는 민간기업이 만드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연필에서 원자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투입물을 사들이는 막대한 액수의 돈을 지불한다. 이러한 비용은 세금과 기타 정부 소득원으로 충당된다. 세금에는 개인 소득세, 법인세, 재산세, 부가세, 그리고 주류세나 유류세 처럼 특정상품에 부과되는 세금 등이 있다. 기타 정부소득원으로는 국영기업의 배당금, 정부가 보유한 금융자산에서 나오는 이자소득, 그리고 개발도상국의 경우 부자나라로부터 받은 이전, 즉 대외원조 등이 있다. 

 

정부는 또 경제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큰 돈을 이전한다. 세금을 다른 국민을 보조하는데 사용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복지지출은 정부를 통한 이전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특정 종류의 생산활동 ( 농업, 유치산업, 사양산업 등)이나 투자(민간기업의 연구개발, 주택정비 등)에 대한 보조금도 정부를 통한 이전에 포함된다.  직접적인 생산, 지출, 이전 외에도 정부는 영향력을 이용해 경제활동의 수준을 조절한다. 바로 재정정책이다. 단순히 지출을 증가 하거나, 세금을 감소시키는 것만으로 그 지출이나 세금이 어디에 쓰이고, 어디에서 거둬들이는지 하는 장확한 내용과 상관없이 정부는 경제를 활성화 시킬수 있다. 또 화폐발행에 대한 독점권을 이용해 통화정책도 운용하는데 중앙은행을 통해 금리를 조정하고, 유통 되는 화폐량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경제활동의 수준에 영향을 끼친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어느 나라는 정부가 상당히 작았다. 1880년 당시 정부의 크기가 가장 컸던 나라는 프랑스로 정부지출이 총생산량의 15%에 해당했다. 영국과 미국의 정부지출은 국내총생산의 10%할당했고, 스웨덴은 6%에 불과했다. 그 이후 1세기반사이에 개발도상국 조차 정부지출은 보통 GDP의 15-25%에 해당한다. 부자나라는 30-35%이고 평균45%이다. 한국, 스위스, 호주, 일본 등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로 30-40% 수준이다. 정부지출의 많은 부분은 경제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돈을 이전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특히 빈민층에 대한 소득보조, 실업급여와 같은 사회보호 프로그램에 많이 지출된다. 따라서 국내총생산을 계산할 때 이전부분은 제외해야 한다. 이전금액은 부자나라의 경우 GDP의 10%에서 25%에 해당한다. 개발도상국 사회복지 지출은 많아야 4-5%수준이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저축, 은퇴, 일에 대한 태도와 행동에 좋든 나쁘든 영향을 끼친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기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왜 상대방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지 물었다. 다른 쪽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많이 나온 대답중 하나는, 상대방이 너무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미국 유권자들이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큰 자리에 정치에 서투른 사람을 앉히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많은 정치인은 정치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기를 얻는다. 현실의 정부들은 극단적 자유주의자들이 그리는 리바이던 같은 괴물은 아닐지 모르지만, 플라톤의 철인왕이 현신한 것도 아니다. 경제에 해를 끼치는 정부가 많을 뿐 아니라,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한 정부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조직 기술이며, 따라서 정부없이 커다란 경제적 변화를 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제수지  (0) 2016.08.08
국제무역  (0) 2016.08.05
시장,실패 정부실패  (0) 2016.08.03
국가개입의 도덕성  (0) 2016.08.01
실업  (0) 2016.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