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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

실업

일자리를 잃어도 나오는 실업수당을 길게는 2년동안 이전에 받던 임금의 60-70%까지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이전의 임금의 30-40%만이 실업수당으로 지급된다. 실업은 존엄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 작가 커트 보네거트는 1952년 ‘자동피아노’ 에서 아무도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그린다.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기본적 욕구가 모두 충족되고, 원하는 만큼의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지만 극소수의 엔지니어와 경영자를 제외하고는 지독하게 불행하다. 일을 통해 얻는 사회의 유용한 구성원이라는  존엄성을 빼앗겨서 이다. 특정 지역에 장기간의 실업이 집중 되면 사회의 쇠락과 도시의 퇴보가 나타날 수 있다. 오래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가지고 있던 기술은 구식이 되고, 자신감도 없어져 장래 생산성까지 약화된다. 가령 1년 이상 장기실업은 다시 일자리를 찾을 확률을 극적으로 저하시키기 때문에 취직능력은 계속 떨어지고, 그에 따라 실업기간이 더 길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사람들이 일을 가졌다 그만두었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새 일자리를 찾고, 기업이 자리에 맞는 사람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것을 마찰적 실업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형태는 필요한 노동자의 종류와 시장에 나와 있는 노동자의 종류가 잘맞지 않아서 발생하는 실업이다. 이를 가리켜 기술적 실업 혹은 구조적 실업이라고 부른다. 현실에서는 시장에만 모든 것을 맡겨놓으면, 순조롭게 노동력 이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체계적인 정부보조금과 제도적 지원으로 재훈련 및 거주지 이전을 돕는다해도 기술적 실업을 없애는 것은 쉽지 않다. 부자나라에서는 일부 노동자들이 현행 임금을 받고 일하기를 거부하고 실업상태를 유지한다. 정부의 복지수당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정부의 복지수당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임금을 내리지 하게 막는다. 그와 동시에 정부의 노동시장 규제책과 고용주가 내야 하는 고용세 때문에 노동력이 필요 이상으로 비싸지기도 한다. 이로인해 고용주들이 더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려는 동기를 잃게 되고 그 결과 실업률이 높아진다.

 

정부나 노조와 같은 정치적 존재의 개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런 형태의 실업을 정치적 실업이라고 부른다. 대공항이나 대불황으로 인해 총수요의 부족으로 인해 바자발적 실업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순환적 실업이라고 부르는 이런 종류의 실업에는 정부가 적자재정과 이자율을 낮춘다든지 하는 느슨한 통화정책으로 수요를 북돋움 으로써, 민간부문이 회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내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기가 하는 작업에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일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당연히 노동자들의 결정 범위를 최소화 하기 위해 세밀하고 쉽게 감독할 수 있는 작업방식을 도입하거나, 컨베이어벨트를 사용해 노동자들이 작업속도를 결정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 해도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이 노동과정에 대한 재량권이 어느 정도 남아 있고, 자본가들은 어떻게 하든 노동자들이 작업에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붓게 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싶어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노동자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작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지금 일자리를 잃고 싶어하지 않도록 임금을 시장가격보다 높게 책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실업은 어떻게 측정할까? 일하기에 너무 어리거나 너무 나이든 사람도 있다. 따라서 실업율을 계산할 때 노동가능 인구를 감안한다. 노동가능 연령에 들어가는 사람이라도 일을 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실업자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라든지 임금을 받지 않는 가사노동을 하거나, 친지를 간호하고 있는 사람중에는 임금을 받는 일을 원치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따라서 실업자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능동적으로 일자리를 구하고 있어야 한다. 노동가능 인구에서 능동적으로 일을 구하고 있지 않은 사람수를 뺀 것이 경제활동 인구이다. 경제적 활동은 하고 있지만 일을 하지 않는 사람만 실업자로 구분된다. ILO 규정이라고 알려진 실업자에 대한 이 규정은 모든 나라에서 이용하고 있지만 문제가 있다. '일한다'는 것을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 돈을 받고 일하는 것으로 굉장히 너그럽게 정의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구직의욕을 상실한 노동자가 실업통계에서 빠지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대, 일본과 서유럽국가들의 실업율은 1-2%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전의 시기에 3-10%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황금기가 끝난후 부자나라 사람들은 5-10% 실업율을 보통으로 여길 정도로 익숙해졌다. 2008년 글러벌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부자나라에서 실업율이 상승했다. 미국, 영국, 스웨덴은 6% 선에서 9-10%로 상승했다.  구직의욕을 상실한 노동자들과 불완전 고용상태인 사람들을 포함하면 미국의 실제 실업율은 15%라고 주장한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위기 이전에 8%였던 실업율이 각각 28%, 26%로 상승했고, 15-24세 청년 실업율은 55%가 넘는다. 개발도상국의 실업을 측정하는 일은 간단하지가 않다. 실제로 작업시간에 아무일도 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거나, 경제 전체 생산량에 거의 보태는 것이 없다는 의미에서 불완전 고용상태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인구의 50-60%가 농업에 종사한다. 이들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그 땅에서 나오는 생산물의 양에는 거의 차이가 없으므로, 이들을 취업자로 분류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의 여자가 있다.

 

농업부문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의사에 반해 너무 짧은 시간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역시 불완전 고용이다. ILO는 일부 개도국상에서 이런 상황에 처한 노동력의 비율이 높게는 15-20%라고 추산한다. 이것을 고려하면  해당국가의 실업율은 5-6%가 쉽게 올라갈 것이다. ILO에 따르면 지난 10여년동안 개발도상국중 가장 실업율이 높은 나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보통 25%이고, 간혹은 30%가 넘을 때도 있다. 대부분이 사람들에게 일은 삶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제학적 논의에서는 사람을 노동자가 아닌 소비자로 규정한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이론에서는 궁극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부자나라에서도 일은 사람들에게 성취욕을 주기도 하고, 따분하게 만들기도 하고 자존감을 느끼게 하거나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아주 깊이 들어가자면 일은 우리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은 그것이 부재할 때, 즉 실업문제가 있을 더 관심을 받는다. 그러니 실업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팽배해지면서 실업문제 마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일은 소득을 위해 견뎌야 하는 불편한 것으로 전락했고, 인간은 오직 소비에 필요한 소득을 얻기 위해 일을 하는 것으로 간주 된다. 특히 부자나라에서는 이런 소비주의적 시각이 낭비, 쇼핑중독, 감당할 수 없는 가계부채 등의 문제를 만드는 한편 탄소배출을 줄이고, 기후변화와 싸우는 일을 더 어렵게 한다. 일을 무시하는 태도는 작업환경이 악화되어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복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도 임금만 오르면 괜찮다고 여기는 태도로 이어졌다.  물가상승율이 조금만 올라가도 국제적 재난인 것처럼 요란을 떠는 반면, 높은 실업율은 사회성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미치는 데도 상대적으로 사소한 문제로 취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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