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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

새로운 금융 시스템과 그 영향

시장이 완벽하다는 이러한 절대적인 믿음은 규제 당국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주택거품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마저도, 주요 정책 입안자들은 거품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2005년 6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회장 그린스펀은 미국 하원에 나가 일부지역에 악간의 거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전국적으로 볼 때 '주택가격의 거품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의원들을 안심시켰다.  이런 호언 장담에도 미국주택가격 거품은 2007년, 2008년에 터지고 말았다. 경제실적에 비해 주택가격이 너무 높아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해 졌다. 합법적인 금융계약의 정의가 점점 느슨해지고, 여러 상품을 묶고 구조화된 상품거래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은 모두 금융부문에 대한 전반적인 규제완화 흐름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상업은행에 대한 건전성 규제 가운데 특히 유동성과 레버리지 규제, 대출기관이 매길 수 있는 금리 상환선, 각 금융기관이 보유할 수 있는 자산형태 제한, 얼마나 공격적으로 대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규제 등이 모두 완화 되었고, 자본의 국가간 이동에 대한 제한도 완화 되거나 철폐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금융시스템 내의 각부문이 전례없이 얽히고 설키는 사례가 급증했다. 이렇게 상호연관성이 증가하면서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쪽으로 급속하게 문제가 확산되어 시스템 전반에서 불안정성이 급증했다. 새로운 금융시스템의 탄생으로 변화를 겪은 것은 금융부문만이 아니다. 처음으로 나타난 중요한 변화는 기업경영의 시계가 더욱 짧아졌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 적대적 인수가 늘어나면서 단기이윤을 내야 한다는 압력이 기업들을 압박했고, 이를 위해 필요하면 장기적 경쟁력까지 희생 되기에 이르렀다. 거기다 빠른 시일 내에 고수익을 제공하는 금융상품이 급증하면서 지난 10-20년 사이 주주들의 인내심은 더욱 줄어들었다.

 

기업의 전문경영인과 점점 세력이 커지는 단기주주사이에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동맹을 통해 경영인들은 천문학적 보수를 받는 대신 제품의 질과 노동자 사기저하라는 희생을 감수 하고라도 단기이윤을 극대화 한 다음,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형태로 가능한한 많은 이윤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상부상조 관계가 이루어졌다. 이런 관행으로 인해 기계설비, 연구개발, 훈련 등에 투자할 제원이 고갈되어 기업의 장기적 생산성 향상에 고개를 돌릴 여력이 없어졌고, 결국 경쟁력이 저하되는 결과를 낳았다. 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즈음에는 이 쇠락을 초래한 장본인인 전문 경영인과 단기주주들은 대부분 그 기업을 이미 떠난 후였다.

 

전통적인 사업분야보다 금융자산에서 더 많은 이윤이 나온다는 것을 깨달은 많은 기업들이 점점 더 많은 제원을 금융자산 관리에 쏟아부었다. 지난 10-20년 사이 일부 기업은 공격적으로 금융부문을 확장했다. GE캐피탈, GM의GMAC, 포드사가 설립한 포드 파이낸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갖춘 금융부문은 이전과 달리 비금융부문에 비해 훨씬 이익을 많이 내게 되었다. 다른 부문보다 월급과 보너스를 훨씬 더 많이 지급할 수 있게 되면서 대학의 전공과 관계없이 가장 유능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금융부문에 불균형적으로 부가 집중 되면서 금융부문은 로비활동을 통해 사회적 으로 유익한 규제 마저 효과적으로 반대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금융산업과 규제기관사이에 양방향 으로 고용관계가 오가는 일이 더욱 빈번해짐에 따라 굳이 로비가 필요하지 않은 지경까지 이르렀다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친금융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금융부문의 힘이 너무 세어졌고,  종사자나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주는 후한 보상을 안겨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금융시스템에서는 주주이익 극대화 모델이 힘을 얻으면서 비금융기업의 장기투자에 필요한 재원이 극적으로 감소했다. 같은 시기에 분배된 이익은 극적으로 증가했다. 분배된 이익이란 배당금이나 주식환매 등의 형태로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이윤을 말한다.  2001년에서 2010년에 미국 대기업은 이윤의 94%를 영국기업은 89%를 이윤분배에 할당했다. 이는 이 나라 기업들의 투자능력이 현저하게 감소했다의미이기도 하다. 비금융기업 특히 미국의 비금융기업은 금융자산을 엄청나게 늘렸다. 일부기업에서는 최근 금융부문 소득이 기업 이윤의 주된 원천이 되면서, 기존의 제조업 수입이 상대적 으로 왜소해졌다. 2003년 GE이윤의 45%가 GE 캐피탈에서 나왓다. 2004년 GM이 이윤의 80%가 금융부문인 GMAC에서 나왔고, 포드는 2001년부터 2003년 사이 거둔 이윤의 전부가 포드 파이낸스에서 벌어들인 것이다. 금융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았으면, 자본주의는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상업은행의 확산, 주식시장의 탄생, 투자은행의 발전, 회사채와 국채시장의 성장 등은 선례없는 규모로 재원을 동원하고, 위험을 한데 묶어 관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발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재정적, 행정적으로 능력이 부족해서 재대로 지원도 못해주는 정부하에서 ‘소규모 자본가겸 공장주’가 돈을 대고 운영하는 작은 공장만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난 30년동안 급격히 부상한 새로운 금융으로 인해, 이제 금융시스템은 부정적인 힘이 되고 말았다. 거품이 터지면서 이 기업들은 민첩하게 경제적 힘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구제금융을 확보하고 정부보조금을 받지만, 그렇게 해서 비어버린 정부의 금고는 세금을 올리고, 정부지출을 줄여서 전 국민이 다시 채워야 한다. 금융시스템은 훨씬 더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으면 이런 위기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다니거나 소가 끄는 수래를 타고, 고작해야 말을 타고 달리는게 가장 빨랐던 시대에는 교통신호도 ARS브레이크도 안전벨트도 에어백도 없었다. 이제 이런 것들이 존재하고 규제 등을 통해 사용을 의무화 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강력하고 빠르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잘못되면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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