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은행은 예금계좌 주인들에게 원하면 언제든지 돈을 찾아갈 수 있다고 약속한다. 은행이 이렇게 지킬수 없는 거짓약속을 해도 보통은 아무 문제가 없다. 어느 한 시점에 돈을 찾기를 원하는 사람은 예금주 전부가 아니라 일부이기 때문에, 은행이 전체 예금계좌에 들어있는 액수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에, 은행이 전체 예금계좌에 들어있는 액수의 극히 일부분만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어도 안전하다. 예금주는 은행에 예금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현금인출을 요구할 경우, 그 금액을 모두 지불할 현금을 은행이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많은 예금주가 동시에 행동에 옮기기 시작하는 '예금인출사태' 라고 부르는 이런 상황을 우리는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여러번 목격했다.
은행은 신용사기, 그러나 잘만 운영되면 사회적으로 유익한 사기다. 은행이 다른 신용사기와 다른 점은 사람들이 은행이 하는 말을 믿도록 만들기는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는가에 따라 그것은 진실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신용사기'야말로 은행이 존재하는 이유다. 우리 모두 현금이 주는 융통성이나 유동성을 누리고 싶어하지만, 그 돈이 한날 한시에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용해 보유하고 있는 현금보다 더 많은 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은행업무 아닌가? 은행이 더 많은 돈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바로, 예금인출사태의 위험이라는 불안정성의 비용을 감수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은행간 대출시장을 통해 은행이 서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곳이다, 금융상품을 서로 사고파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신용은 개별 은행 차원이 아니라, 전체 은행 시스템 차원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중앙은행은 은행시스템 신뢰를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신뢰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화폐를 발행하는 독점권을 가지고, 필요한 만큼 돈을 찍어낼 수 있는 중앙은행을 통해 신뢰 문제가 발생한 은행에 무제한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요령은 현금 흐름이 일시적으로 막혀서 신뢰문제가 발생한 경우 다시말해 유동성 위기에만 효과가 있다. 만일 은행의 문제가 채무액이 자산보다 더 커서 생긴 상환 능력의 위기 때문이라면, 중앙은행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빌려줘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때에는 문제의 은행이 파산하거나, 정부에 긴급 구제를 요청하는 수 밖에 없다. 중앙은행을 이용하는 방법뿐 아니라, 예금보험 등의 제도를 통해서도 은행의 신뢰를 떠 받칠 수 있다. 이 제도는 은행이 예금액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모든 예금주의 예금액을 일정액까지 보장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은행시스템의 신용을 관리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은행이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도록, 그 한도를 정하는 것으로 '건전성 규제'라고 한다. 건전성 규제의 중요한 방법중 하나가 자기자본 비율규제이다. 은행이 보유한 자기자본의 몇배 이상은 대출해주지 못하도록 빌려줄 수 있는 돈의 한도를 정하는 것이다. 금융중심부에는 우리가 방금 논의했던 전통적인 은행업무부문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으로 채권시장은 국채, 회사채 시장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주식시장은 기업이 직접 알아보지 못하는 익명의 투자자들에게 지분을 팔아 대규모 자금을 조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지분을 일반 대중에게 팔지 않던 비상장 기업이 처음으로 지분을 외부인에게 팔고, 상장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주식상장 혹은 기업공개라고 한다. 기업이 새주식을 팔아 자금을 모집하게 하는 것은 주식시장의 여러기능중 하나일 뿐이다. 주식시장의 또 다른 주요기능은 기업을 사고파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것인데 이를 전문용어로 '기업지배권 시장'이라고 한다. 한 기업주식의 과반수를 새로운 주주가 사들이면, 그 기업의 새로운 주주가 되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갖게된다. 이 과정을 '인수'라고 부른다. 간혹 두 개이상의 기업이 지분을합쳐서 새로운 하나의 기업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를 '합병'이라고 부른다.
1817년 설립된 뉴욕증권거래소(NYSE), 1801년 설립된 런던증권거래소(LSX), 1878년 설립된 도쿄증권거래소(TSE)는 2차 대전 후 가장 큰 증권시장으로 영향력을 떨쳤다. 또 다른 주식거래자인 미국의 나스닥(NASDAQ)는 가상거래소, 즉 온라인 주식거래소로 1971년에 문을 열었다. 주식시장에서 일어나는 가격의 움직임은 주가지수로 표시한다. 뉴욕증권거래소의 가격동향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푸어가 집계하는 S&P500으로 런던증권거래소는 파인내셜 타임스가 집계하는 FTSE100으로 도쿄증권거래소는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집계하는 Nikkei225로 알 수 있다. 주식시장외 중요한 금융시장으로는 채권시장이 있다. 채권시장에서는 기업이나 정부가 투자자들에게 직접 돈을 빌리고 차용증 즉 채권을 발행하는데, 채권은 누구에게나 양도할 수 있으며, 이자가 고정 되어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주식과 채권시장이 규모가 크고 독일, 일본, 프랑스처럼 은행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에 비해 영향력도 더 컸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과 영국은 시장에 기반을 둔 금융시스템이고 독일, 일본, 프랑스는 은행에 기반을 둔 금융시스템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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