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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생활사 (차윤정)

마감

 우우- 가을 바람이 불어대면 나뭇잎은 가다렸다는 듯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빛깔도 모양도 힘도 잃은 나뭇잎들은, 빈 가슴으로 마음껏 바람을 맞이한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나뭇잎은 하늘을 빙그르르 땅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비바람 몰아치는 숲에서 낙엽들이 그려내는 군무는 참으로 서럽다. 가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리다. 미련과 집착은 불행이다. 모든 장치들이 떨구어 내고, 떨어버리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겨우겨우 달려있는 나뭇잎은 이미 물기가 빠져 푸석거리고, 숲바닥도 푸시럭거리며 약간의 바람에도 움찔댄다. 나무 줄기들도 건조해지고 갈라진다. 낙엽은 식물이 한해동안 성장하면서 이룬 생산물이다. 바람에 떨어진 낙엽은 이리저리 뒹굴면서 낮은 곳이나 물가로 모여든다. 낙엽속에는 식물들의 노폐물이 저장되어 있으며, 단백질이나 지질 등의 영양분도 남아 있다.

 

나무는 풀에 비해 확실히 규모가 있다. 나무의 줄기나 가지는 비록 목숨은 다했지만, 폐기되어서 안되는 재산이다. 공중에 도달하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치열하게 가지를 뻗어왔던가? 몇 해의 겨울을 경험한 가지는 겨울을 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매년 돋아나는 새잎은 겨울을 결코 알지 못한다. 이미 단풍이 물들 때부터 가지 끝에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분리층이다. 잎과 줄기간의 통로는 이제 통제된다. 잎은 낙옆의 길로 가야 한다. 가지는 낙엽의 주저함을 막기위해 이별 준비를 해 두었다. 그토록 열광적으로 달렸던 잎들이 사라지기란 쉽지 않다., 여름 폭풍우 속에서도 가지는 잎을 지키며 온몸으로 저항했다. 바람이 잎을 건드려도 가지가 함께 움직이며 잎을 지켜주었다. 잎맥과 가지의 수로로 이어진 정비된 통로를 따라, 물과 양분이 서로 교환되고, 질긴 껍질이 가지와 잎줄기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었다.

 

그러나 잎의 미련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줄기 끝에 생기는 분리층은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주기 위한 배려이다. 봄에 성장을 돕는 호르몬이 만들어졌던 것과 같이, 가을에는 정리를 돕는 호르몬이 만들어 진다. 뿌리에서 만들어진 이 정리 호르몬은 서서히 전체로 번지면서, 잎을 떨어뜨리기 위한 분리층을 만들고 열매를 분리시킨다. 철옹성 같았던 가지와 잎이 분리되면서 나뭇잎은 작은 바람에도 후두둑 떨어진다.

 

낙엽의 양은 나무가 한해동안 성장하고 남은 여분이다. 매년 낙엽 양만큼 물질은 쌓인다. 그러면서 탄소의 양은 단순한 탄소의 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질소나 인산과 같은 유용한 양분들의 존재를 탄소를 통해 비교할 수 있다. 낙엽은 나무가 살아가는 전략의 하나다. 나뭇잎은 봄부터 여름까지 부지런히 생산 활동을 하지만, 가을을 지나 겨울을 나는 동안은 소비 활동만을 하게 된다. 나무로서 나뭇잎을 그대로 두는 것은 하릴 없이 재산을 축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는 유지비용을 줄이기 위해 나뭇잎을 털어낸다. 나무는 낙엽을 떨구기에 앞서 나뭇잎에 투자한 양분을 흡수한다.  나뭇잎 속에는 골격을 이루고 있는 탄소를 비릇하여 각종 양분이 되는 물질이 들어있다. 이중 질소, 인산, 칼륨은 식물에게 늘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이다. 이 영양소는 나뭇잎 속에서 이동이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여, 가을이 되면 다시 나뭇가지로 이동해 저장된다.  나머지 양분들은 낙엽이 질 때 노폐물과 함께 떨어져 나간다. 동물과 같은 배설구가 없는 나무에게, 낙엽은 몸의 노폐물을 제거하는 배설구의 역할도 함께 하는 것이다.

 

나무가 영양소를 회수하는 정도는 숲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숲의 토양이 풍부하면 나무는 굳이 스스로 물질을 비축하지는않는다. 반도 채 안되는양만 회수되고 나머지는 공동의 은행인 숲 바닥에 위탁된다. 이를 받아 지렁이는, 곰팡이는, 세균들은 낙엽을 미세하게 부수어 일부는 몸을 불리는데 쓰고 나머지는 흙으로 저장된다. 나무는 매년 봄, 원금과 더불어 이자를 챙길 수 있다.  모든 낙엽을 훑어내면 나무는 허탈감에 빠진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건만 아득한 옛날같이 그립기만 하다. 신록에서 녹음으로 치열했던 여름이 까마득하고, 갈색의 숲만이 현실이다. 앞으로 신록을 보기 위해 얼마나 지루한 날들을 기다려야 할까? 언제나 푸른 숲 같지만, 정작 일년 열두달에서 푸르름을 볼 수 있는 기간은 고작 6-7개월이다.

 

빛이 아주 많았던 옛날 , 나무가 없었던 빈 땅에 솔씨는 희망을 품고 날아 들었다. 한동안 소나무는 햇빛을 독차지 하며 자신들만의 숲을 가꾸어 왔다. 많은 가지를 내지 않고 오로지 성장을 위해, 힘을 줄기에 모아 주변을 억제하며 권위와 품격의 상징인 삼각구조를 지닐 수 있었다. 빛이 부족하면 아래쪽 가지를 스스로 잘라낼지언정 궁상스러움을 경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집이 커지고 스스로 그늘을 드리운다. 숲이 만들어지면 여기저기서 씨앗이 날아든다. 소나무의 그늘도 아랑곳하지 않고, 참나무들은 무서운 속도로 자라 소나무를 서서히 압박한다. 겁기야 소나무의 키를 넘기면서 빛과 물을 차단한다. 해마다 새로운 나무들은 성장을 거듭하여 소나무를 고립시킨다.

 

어찌보면 숲의 이런 도전과 변화는 숲을 발전시키는 기본 힘인지도 모른다. 이런 적절한 견제와 균형의 작용이 없다면, 식물사회 역시 독단과 불평등이 우세한 집단이 되었을 것이다. 숲안의 덤풀들은 좀처럼 성장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긴 줄기를 따라 피어났던 이파리들은 내용물이 다 빠져 나가고, 볼품없이 쭈구려 든채로 매달려 있다. 가을이 깊어가면 줄기들도 여위어, 멀리서는 그 존재조차도 알수 없게된다. 낙엽이 질 것도 없는 풀들은 단풍도 없이 누렇게 마른다. 떨어지는 잎도 없이, 겨울의 얼음 칼이 자를때까지 혹은 새로 돋아나는 풀들이 밀어낼 때까지 그저 누렇게 지상에 남아있다.

 

무엇보다 작은 씨앗은 씨앗 속에 어린 싹이 먹을 양분이 부족하여, 씨앗이 떨어지고 나서 빨리 싹이나 햇빛을 받고 자라지 않으면 곧 생명력을 잃는다. 반대로 도토리와 같은 씨앗 속 양분이 풍부한 종은, 비록 싹이나 햇빛이 부족하고 양분이 부족하더라도 씨앗속에 저장된 양분만으로  얼마간 버틸 수 있다.

 

가을 숲의 아래쪽은 일년중 가장 두툼하다. 울창한 숲을 키워냈던 숲의 바닥이 두툼한 보너스를 받은 것이다. 온갖 나뭇잎이 주저앉아 푹신푹신한 카펫이 되었다. 바람이 불면 후두둑 후두둑 열매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무가 열매를, 씨앗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이들의 속성은 떠나감이다. 자연은 항상 여분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생물을 부양하기도 하고, 자신을 위협하는 생물을 유인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한 그루의 나무에 달리는 숱한 열매들이 모두 나무로 자랄 수는 없다. 열에 아홉은 산짐승에게 먹힐 것이고, 그동안 하나는 싹으로 자랄 시간을 갖는다. 싹으로 자라난 열에 아홉은 벌레에게 먹힐 것이고, 그 동안 하나는 나무로 자랄 것이다. 나무의 열에 아홉은 다시 하나의 자리를 만들어 주면서 희생 할 것이다.

 

나무들의 열매 생산은 숲속 동물들의 밀도를 조절한다. 열매의 생산량이 많으면 동물들의 개체수가 늘어난다. 포식자 집단이 커지면 다음에 생산되는 열매를 모두 먹어 치울 것이다. 열매가 풍년이 든 다음에는 열매를 많이 만들어 보았자 대부분 늘어난 포식자의 배를 채울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흉년이 든다면 포식자의 상당수는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어죽을 것이다.  결국 풍년 다음 해는 생산량을 낮추어야 할것이다.

 

가을이 오면서 숲은 오히려 포근해지기 시작한다. 여름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기는 서늘한 공기를 만들었지만, 물기가 빠져 버린 가을 공기는 빛으로 데워져 따스하다. 가을 숲에서 물기는 날려 버려야 할 요소이다. 모든 조직과 기관들의 물기는 겨울이 오면서 공기중으로 흩어져야 한다. 물이란 상황에 따라서 고약한 성격을 드러낸다. 물은 물로서 존재할 때 은혜롭지만 얼음은 재앙이다. 물이 얼기 시작하면 응집력에 의해 주위의 수분을 끌어당기면서, 얼음 결정을 키워나가고 이 과정에서 파괴력이 커진다. 세포밖에서 얼기 시작한 얼음은 결정을 키워가면서, 세포 안쪽의 수분을 탈수시키며 날카로운 얼음결정은 세포막을 파괴시킨다. 따라서 물기를 정리하는 것이 맨처음 해야 할 월동 준비이다. 나무는 조직내 수분을 감소시켜 이러한 위험성을 제거해야 한다. 물기를 정리한 다음에 식물들은 세포내 탄소화물, 단백질, 지방 등을 농축시키기 시작한다.  이는 세포 용액의 농도를 증가시켜 어는 점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낙엽도 나름대로 숲을 위해 마지막 희생을 한다. 낙엽은 땅으로 떨어지면서 빠르게 말라간다. 조직속의 물기가 빠져버리면 낙엽은 쭈글쭈글하게 오그라들며 마른다. 공기는 열의 급격한 변화를 차단하는 보호막이다. 낙엽속은 적당한 공기와 습도와 온도로 인해 작은 생물들이 깃드는 숲이 된다. 낙엽은 때로 강한 빗물로부터 흙을 보호한다. 낙엽층이 없는  흙은 초당 30미터의 속도로 떨어지는 빗방울에 씻겨나간다. 낙엽은 숲의 옷과 다름없다. 물기가 깃든 낙엽은 불에도 강하다.

 

벌레들도 치열한 울음을 그치고 마감의 시간을 맞이한다. 작은 곤충들에게 겨울은 견디기 힘든 시련이다. 곤충들의 삶이 한해로 마감되는 것은 살아가는 지혜일 것이다. 한여름 밤부터 가을밤까지 치열하게 울어대던 소리는, 마지막 사명을 실행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더러는 알을 낳아 겨울동안 보관하기도 하고, 더러는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나기도 한다. 겨울이 오기전에 가을이 있다는 것은 준비할 시간을 가지라는 자연의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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