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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생활사 (차윤정)

풍경

 모든 생명들을 꽁꽁 얼어버렸던 빙하기가 몇차례 지나갔지만 숲은 매번 되살아나, 풍성한 지구의 외투를 만들었다. 숲은 과거 공룡들을 포함한 동물들이 활동하던 무대였으며, 현재는 인간이 무대이고 미래에도 여전히 인간이 아닌 새로운 종이 뛰노는 무대가 될 것인가? 물기가 튀어 오른 곳이나 빗물이 흘러내리는 나무에 깔려 있는 초록의 이끼는, 숲의 물을 가늠하게 하는 지표다. 이끼는 오랜 지구 역사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을 지켜온 생명이다. 이끼는 과거의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는다.

 

연방 맑은 물이 튀어 오르고 서늘한 물안개가 걸리는 가운데, 우거진 나무는 하늘을 가리고 이파리는 물기로 충만하여 빛을 반사시킨다. 물기로 축축한 줄기는, 물속에 녹아 내리는 양분과 푹신한 껍질로 인해 씨앗을 싹 튀울 수 있는 온상이다.  때로는 짙은 이끼가 줄기를 뒤덮기도 하고, 어떤 곳은 고사리가 터를 잡고 있기도 한다.

 

숲의 밤은 우울하다. 새가 뜬금없이 울어대는 계곡에 물소리,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아침이면 소쩍새의 애달픈 소리가 울리고 푸더덕 나뭇가지를 박차는 소리가 들린다. 풀벌레 소리는 여름 밤 숲에는 아직 소원하다. 그토록 치열했던 여름 낮이 이처럼 적막으로 가라 앉은 것을, 밤을 숲에서 새워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거칠지만 탄력 있는 숲은 어지간한 소리는 삼켜버린다. 그물처럼 엉킨 가지들, 켠켠이 쌓인 나뭇잎들은 완벽한 방음판이 되어 소리를 흡수한다. 딱딱한 도시는 작은 소리도 품지 못하고 튕겨낸다. 초록의 장막은 바람도 막아내고 그 어떤 움직임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 숲은 가장 적막하고 쓸쓸하다. 숲의 생명들은 철저하게 자연의 지배를 받고 있다. 빛이 없는 밤은 휴식 시간이다.  한낮의 열기는 낙엽에, 나뭇잎에 가두어져 있고 싸늘하게 식은 공기는 상대적으로 차갑다. 눅눅한 습기가 몸에 닿으면, 한기가 들어 표피조직도 급속히 수축한다. 오랜 도시 생활은 빛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지만, 숲에서의 야생적 삶은 빛에 대한 예리한 판단럭을 회복시켜준다. 식물은 빛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예민한 감지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빛도 다 사라지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깨어 있는 생물들은 신경이 예민하고 날카로울 수 밖에 없다.

 

여름 오후 바람은 포플러 나무가 더욱 시원스럽게 만든다. 포플러 나무의 호들갑스런 몸짓과 소리로 바람의 존재를 알려 준다. 숲에서 진골에게 배척당한 포플러는 언제나 숲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다, 여유로운 몸짓으로 계절을 살아간다.  우리 숲은 포플러 나무가 주는 시원스러움과 여유로움을 능가하는 나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줄기는 너무 벌어지지 않고, 너무 고집스럽지도 않은 적당한 각도로 뻗어있다.숲의 언저리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나 어느새 숲의 울타리가 된 포플러 나무, 그것은 아주 잘 생기고 순한 자식과 같이 든든하고 흐뭇하다.지상부의 줄기들과 같이 지하의 뿌리들은 흙 속의 모든 것을 왕성하게 흡수한다. 그것이 비록 해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포플러 나무 뿌리는 모조리 흡수한다. 나무의 눈부신 성장은 뿌리의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한다. 포플러 나무의 이런 습성은 불량한 토지를 개선하는데 이용된다. 쓰레기가 매립되어 있는 난지도에서,  붉은 물이 흐르는 폐탄광에서 포플러 나무는 씩씩하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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