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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생활사 (차윤정)

투쟁

 어찌 살아있는 것들만의 숲이든가?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법, 죽음은 삶으로 연결되는 고리다. 식물이 생산활동을 하는데는 이산화탄소가 주원료가 되지만, 이 과정을 이끌어 가는데는 17가지 원소들이 필요하다. 식물에게 필요한 탄소는 공기 중에서 기체로 공급받는다. 탄소이외의 모든 영양소는 흙 속의 물에 녹아있는 이온상태로 공급받는다.식물은 왜 유기물 덩어리를 직접 섭취하지 않을까? 생물이 유기물덩어리를 그대로 섭취하려면 매우 복잡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유기물의 분해와 섭취와 이동을 위해 특별한 조직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전체 시스템을 관장하는 뇌와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

 

다른 생물이나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식물의 몸은, 일부가 손상되더라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도록 되어 있다. 이런 구조야 말로 식물이 고착생활을 하는데 중요한 요건이 아닐 수 없다.  유기물 덩어리를 그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식물에게, 유기물을 분해해줄 장치는 절대적이다. 숲에서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숲은 매우 복잡한 생태계의 한 축을 구성하게 된다. 죽어 쓰러진 동물, 낙엽은 또 다른 생물의 시발점이다. 후덥지근한 열기, 축축한 물기는 다양한 미생물과 작은 곤충들의 왕성한 번식을 지원하는 환경이다. 땅속으로 온갖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번식하고 , 때때로 곰팡이의 포자가 공기 중을 떠돌며 공격할 생물체를 탐색하기도 한다. 1헥타르의 숲의 토양에는 2톤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고, 1그램의 흙 속에는 2천만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토록 많은 미생물이 지상의 생명체를 먹이로 삼는다면, 숲은 순식간에 벌거숭이가 될 것이다. 다행이 대부분의 토양 생물들은 살아있는 조직보다는 죽은 조직을 좋아한다.

 

식물이 생산한 산물은 동물이 소비하고, 다시 동물과 식물의 사체는 미생물들이 분해해 식물에게 공급한다.  생산, 소비, 분해 과정이 숲 내부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숲이 하나의 생명체이다. 땅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온갖 벌레들은, 이 부드러운 잎 조각들을 잘게 부수어 먹어치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먹어 치우고 고스란히 배설한다. 배설물은 흙과 섞여서 더욱 부드럽고 푹신푹신한 흙을 만든다. 분해가 왕성한 숲에서는 그 동안 숨죽이고 있던 포자들이 화려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여름숲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면 식물에도 동물에도 들지 못하고, 그저 미생물의 범주에서 균류로 지칭되는 부류들의 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균류중에서 진화했다고 여겨지는 버섯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세계를 볼 수 있을 때가 여름이다. 버섯과 곰팡이, 애초에 이들은 제대로 분류된 체계를 갖지 못했다. 이들의 보편적인 분류의 위치는 고등균류이다. 이 균류의 일차 소임은 지구의 청소부들이다.부서진 나무의 상처에서 몇 해 전에 쓰러진 나무의 줄기에서, 낙엽이 수북히 쌓인 바닥에서 , 작게는 낙엽 위에서 이끼 위에서, 숲 어디든지 흥미로운 모양으로 피어있는 버섯은 지구의 또 다른 세계다. 아무리 고집 센 나무라 할지라도, 일단 버섯 균사들이 침입하여 자라기 시작하면 금방 잘게 부수어진다.

 

식물의 잔해가 분해되는 과정에서 유기산 같은 각종 산성 물질이 방출된다. 이 물질들은 숲의 토양을 산성으로 만든다. 그런데 산성토양에서 균류는 살아남을 수 있지만, 세균이나 박테리아는 활동이 어렵다. 문제는 유기물중의 단백질이 최종적으로 분해되어 식물이 흡수 할 수 있는 형태가 되는데는, 세균의 활동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숲은 유기물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세균활동이 미약하여, 이용할 수 있는 형태의 질소 자원이 부족한 곳이다. 다행이 균류의 균사는 덜 분해된 질소를 흡수할 수 있다. 식물의 뿌리에 공생하는 균류들은 이런 미분해 상태의 질소를 흡수해서,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준다. 여름 숲에 우후죽순으로 피어나는 온갖 버섯들은 , 대부분 수목들과 공생하는 균들의 번식체이다. 소나무 숲에서만 볼 수 있는 송이버섯 역시 소나무와 송이 버섯균의 멋진 합작품이다. 

 

여름숲의 공기는 진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숲의 공기를 채우고 있는 것은 물기만이 아니다. 만질 수는 없지만 강렬하게 느껴지는 그 무엇, 오히려 숲에서 더욱 긴장된다. 여름의 생명들은 긴장을 늦추어서 안된다. 성장과 더불어 붕괴 역시 가장 왕성한 여름 숲에는 유해하든 무해하든 간에 다양한 미생물과 붕괴 세력이 있게 마련이다. 숲은 생명들의 상호작용으로 서로 공존한다. 그러나 숲의 토양기반이 취약해지고 수목들의 활력이 약해지게 되면, 숲은 유해한 미생물들이 득세하게 된다. 상호간의 견제에 의해 세력의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생명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습하고 더운 여름 숲에는 온갖 유해한 미생물들의 활동이 왕성하다. 나무들은 유해한 미생물들을 방어하기 위해, 다양한 성분의 물질들을 공기중으로 방출한다. 식물들이 방출한 물질이 공기중에 섞이면 숲에는 푸르스름한 안개가 걸린다. 이로써 숲의 공동 방어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첫째 방어진은 독특한 냄새로 확인할 수 있다. 여름 숲의 공기에서 특별한 것을 느낄 수 없다면, 도시의 먼지 냄새를 생각해 보라. 숲이 내품는 수증기 속에는 나무가 내품는 다양한 물질이 들어 있다. 이 냄새는 향긋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하다. 풀 냄새 같기도 하고, 솔잎 향이고, 오렌지 향기 같기도 하다. 이 냄새의 화학적 실체는 테르펜류이다.  테르펜류는 박테리아, 곰팡이, 기생충, 곤충 등을 죽이거나 발육, 증식을 억제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살충, 살균, 방부제로 이용된다. 눈 앞에서 윙윙되며 달려드는 날벌레들,  성한 나뭇잎 , 성한 나뭇가지 하나 없이 비단실 같은 거미줄이 쳐져있고, 실끝에는 고치가 늘어져 한발 내딛기 어려운 곳이 여름 숲이다.  쐐기풀은 팔에 쓰라린 고통을 주고, 송충이는 갑작스런 공포를 준다. 땅에는 지네, 지렁이, 노린재, 달팽이, 굼벵이등 온갖 토양 소동물,  곤충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는 땅 역시 분주한 여름 숲을 보여준다.

 

여름 숲은 두툼하다. 나뭇잎들도 봄과 같지 않고 진하고 두툼하다. 부드러운 잎이 두툼하고 고약한 맛으로 변한 자연의 이치앞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른 봄, 알에서 깨어난 무수한 애벌레들은 자연의 인심에 행복했다. 나뭇잎은 달고 연하고 향긋했다. 나무도 별스런 반응 없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았지만, 어느새 나뭇잎이 딱딱해졌다. 나무가 침입자들의 식욕이 왕성해지는 시기에 맞추어 급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것이다. 달고 맛나던 아미노산 대신에 잎은 매우 쓰고 떫은 맛을 내는 탄닌 성분의 물질들이 대량으로 만들어진다. 탄닌은 맛도 고약할 뿐 아니라, 곤충 소화기관내에서 단백질이 소화되는 것을 방해한다. 이제 잎들은 맛도 없고 소화도 잘 안된다.

 

결국 애벌레들은 신선한 풀을 찾아 땅으로 내려 와야 한다. 어린 참나무 잎을 먹고 행복했던 딱정벌레도 6월이면 새로운 먹이를 찾아 떠나야 한다. 딱딱해지고 고약해진 잎은 강한 턱을 가진 사슴벌레나, 조직을 파고 진을 빨아 먹는 벌레만이 이용한다. 나뭇잎이 질기고 딱띡해진 것은 나무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다. 엉겅퀴는 가시로 무장하고, 억새풀은 예리한 칼날을 새워 적을 위협하고, 어떤 풀은 독을 만들어 방어전선을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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