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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생활사 (차윤정)

소멸과 부활의 노래

숲에서 여름이 사라지는 것은 썰물이 빠져 나가는 것처럼 빠르다. 삶의 치열함이 물러간 숲은 당혹스럽기 까지 한다. 가을은 다가올 겨울에 대비하기 위한 조정 기간이다. 나무는 잎을 정리하고 짐승들은 먹이를 준비한다. 헐거워진 숲을 통과한 빛은 짧은 가을 동안 새로운 희망이 된다. 여름 끝에 가을이 없다면 자연은 훨씬 혹독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가을이 오는 첫번째 징조는 헐거워짐이다. 무게로 출렁이던 숲의 덮게가 갑자기 하늘로 오르듯 가볍다. 물이 빠진 것이다. 치열한 여름이 끝나고 신선한 바람이 불때면, 생명들은 마감 준비를 해야한다. 왕성한 성장을 도모했던 세포속의 물질들은 분해되고 정리된다. 살이 녹아버린 나뭇잎은 얇고 투명해진다. 빛은 서서히 숲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을 빛은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 행성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너무나 익숙하고 친숙한 빛, 여름날 온갖 수단을 동원해 피하고자 했던 그 빛이, 가을날이 되면서 잊혀진 추억과 같이 소중하고 흠모하는 대상이 된다. 비스듬히 기울어져 들어오는 빛은 삶을 사색하게 만든다.

 

지구의 원시 대기는 이산화탄소와 매탄과 같은 유해가스들로 가득차 있었다. 지각운동으로 인해 바다가 생겨나고 많은 양의 이산화 탄소가 바다로 가라 앉았다. 초창기의 강력한 빛 에너지는 대기중 산소로 지구의 방어막 오존층을 만들어냈다. 지구에 생명이 출현하고, 식물이 무성해지면서 약 4억년 전에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으로 낮아졌다. 식물들의 광합성 작용이 왕성해짐에 따라, 대기중으로 방출되는 산소의 양도 늘어나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관계는 일정한 법칙으로 묶이게 되었다. 그러나 지구에 급속하게 일어난 문명은 이산화탄소와 산소간의 평형을 무너뜨렸다. 문명은 유기물를 태워 이산화 탄소를 배출하는 과정이다. 불과 200년만에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4억년의 균형을 깨고 350 ppm으로 늘었으며, 더 빠른 속도로 400ppm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는 2-3도의 온도 상승을 가져오고,  숲은 이 온도 변화에 의해 변하게 될 것이다. 결국 지구는 열 속에 갇히게 된다

 

여름의 강렬한 빛은 이산화탄소를 숲에 가두는 경로를 지원한다. 성장은 곧 이산화탄소의 가둠이다. 가을의 경사진 빛은 에너지가 약하고 따라서 대기도 곧 식어버린다. 식물들이 이산화탄소를 가두는 힘이 서서히 약해진다. 이제 부터는 살아있는 나무와 낙엽에서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면서 여름 동안의 불균형을 맞춘다, 대기의 이산화탄소의 양이 조금만 늘어도 숲은 온실 속에 갇힐 것이며, 산소의 양이 조금만 늘어도 숲은 화염에 쌓인다여름이 끝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한 단풍을 기다렸는가여름동안의 축축하던 물기가 공기중으로 흩어지고, 숲이 말라오면서 어느 순간 누구 불을 당기기라도한듯 가을 숲은 붉게 타오른다. 여름이 더욱 여름답게 지나간 가을날의 아침, 저녁이 극적으로 쌀쌀하면 우리는 더욱 아름다운 단풍을 기대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차가운 밤공기는 나뭇잎의 푸른색을 여지없이 무너뜨려, 극적인 비장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특히 가뭄이 계속되거나 기온이 갑자기 낮아지면, 엽록소가 급격히 파괴되어 나뭇잎은 더욱 선명하고, 아름다운 단풍색을 드러낸다. 가을 밤 바람이 유난히 차가우면, 화려해질 단풍색을 떠올리며 위로 받을 수 있다.

 

가을잎의 고운 단풍잎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푸른 나뭇잎 속에는 사실 처음부터 단풍의 색이 들어있다. 나뭇잎은 과거 자신들이 성장해왔던 불완전한 지구의 환경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광합성 효율을 높이는 카로티노이는 부족한 빛 조건에서 살아가기 위한 보조장치이다. 암흑속에서도 합성될 수 있기 때문에, 빛이 부족한 곳에서 자란 식물들은 주로 노란색을 띠게 된다. 가을날 아름다운 단풍잎을 위해서는 일정 기간 맑고 시원한 날씨가 계속되며, 온도가 점진적으로 낮아져야 한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기온이 낮아지면 엽록소는 파괴되기 시작하지만, 카로티노이드는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그대로 잎속에 남아있게 되고 또한 안토시아닌이 합성되어 나뭇잎은 아름다운 단풍색으로 변하게 된다. 단풍의 색은  색소들을 고르는 식물들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 안토시아닌이 많으면 붉은색을 띠고, 카로티노이드를 선호하면 노란색을 띤다숲이 울창한 곳의 단풍은 극적인 아름다움을 띠지 못한다. 숲이 오래되고 우거질수록 단풍색은 칙칙하다. 단풍색은 다소 파괴적  속성을 지니고 있어, 엽록소가 급격히 파괴될 때 더욱 선명한 색이 발현된다.  숲 속은 낮 동안 숲덮개로 차단된 햇빛과 밤동안 나무에서, 땅에서 방출된 열기로 훈훈하다. 따라서 온도 변화가 극적이지 못하고 밋밋하다. 엽록소는 퇴각을 주저하고 단풍식은 칙칙한 색소가 된다. 따라서 단풍은 온도 변화가 온건한 숲보디는, 물이 튀어 오르는 계곡에서 혹은 햇빛이 비쳐드는 사면에서 혹은 도시 공원에서 더욱 선명하다.

 

치열했던 여름의 삶이 가을의 결실을 맺는다. 먹을거리가 제철도 없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산에서 만나는 야생열매는 야릇한 설렘을 준다. 사람이 가꾸지 않아도 자연은 스스로 열매를 만들어 낸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사실인가? 열매 속에는 나무의 미래를 이어줄 씨앗이 들어있다. 씨앗은 꽃에서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만들어진다. 열매속의 씨앗이 온전하게 성숙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 성숙의 시간동안 나무는 열매를 잘 보존해야 한다. 식물들은 열매가 익을 동안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열매를 노리는 무리들로부터 열매를 보호한다. 현명한 자라면 나무의 경계 경보를 이해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나무는 경계경보를 해제한다. 열매에 붙은 가시나 털이 떨어져 나간다. 고약한 물질은 분해되어, 달고 맛난 것으로 변한다. 딱딱한 육질은 부드럽고 단물이 흐른다. 사람의 후각이 달콤한 향을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열매들로부터 나오는 신호에 적응되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무들이 적극적인 냄새와 색을 내어 성숙을 알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동할 수 없는 식물이 영토를 확장하고,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기는 씨앗을 퍼뜨리는 것이다. 새들이 열매를 먹고 배설물과 함께 씨앗을 배출한다. 새들의 배설물은 씨앗의 거름이 된다. 이 과정에서 식물들은 선호하는 새들의 부리에 맞추어 크기를 조절한다그러나 키 작은 풀들은 열매를 만들지 않는다. 지상을 어슬렁거리는 짐승들에게 먹힐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대신 딱딱한 껍질에 싸인 낟알을 만든다. 동물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풀들은 제 씨앗을 동물의 몸에 슬쩍 묻혀 멀리 이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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