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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생활사 (차윤정)

새로운 시작

 

분명 가을은 여름보다 빛이 여유롭다. 새로운 봄이 온 것이다. 옅은 빛이기는 하나 느슨한 숲의 상층을 통과한 빛이 도달한 바닥에는 느닷없는 설레임이 있다. 모든 것이 마감되는 시간인줄 알았는데 은근한 빛의 유혹이 느껴진다. 빛의 성질이 약간 바뀌었을 뿐 모든 것이 봄과 같다. 느슨한 나뭇잎 , 바람, 물,  사그라드는 약한 빛에도 숨을 죽이고 있던 싹들이 지상으로 돋아난다.텅빈 숲의 덮개가 적당히 바람을 막아주고, 낙엽은 따스한 지기를 아직 가두고 있어 땅바닥에 생을 일구는데 부족함이 없다. 나무의 뿌리들은 물에 대한 탐식이 줄어 흙은 여유로운 미소를 보낸다. 풀은 여름보다 더욱 싱싱하며 더 많은 꽃을 달수 있다.

 

조릿대는 더욱 새파란 잎으로 얼마후 강풍이 햇빛을 얼릴 때까지 부지런히 삶을 꾸민다. 어차피 큰 나무들의 틈바구니에서 위로 자라지 못할 바에는 낮게 자라기로 작정한 조릿대는, 나름대로 큰 나무들과의 타협점을 찾았다. 봄에 잎을 피우지 말 것, 깊이 뿌리를 내리지 말 것, 그리고 늦게 성장 할 것. 봄에 조릿대는 성장하고 싶은 열망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 다른 잎들이 서서히 성장의 가속도를 내는 6월 두장의 잎을 서서히 뻗어낸다. 그렇게 묵은 잎과 새잎으로 궁핍한 햇빛 조건 속에서 삶을 꾸려가다가, 9월 나뭇잎이 생의 열정을 접을 때 조릿대는 마지막 햇빛을 불사르기 위해 몸부림친다. 묵은 잎은 다 떨어지고 새잎으로 무장한 조릿대는 드디어 10월의 햇살에 눈부신 성장을 이룬다. 성장의 결실은 지하로 내려가 때늦은 눈을 만든다. 12월의 추위가 눈 앞에 닥칠 때까지 조릿대는 가을을 여름같이 살아간다.

 

참나무 가지에도 때 아닌 푸른 다발이 왕성하다. 무성한 잎에 가려져 혹은 줄기와 같은 색깔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겨우살이들, 참나무 잎들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린 빈가지에 다복히 쌓인 겨우살이는 이제 막 생을 시작했다. 참나무 줄기 속을 흐르는 아직 식지 않은 물과 양분을 제 몸속으로 끌어들여, 쏟아지는 가을 햇살 을 듬뿍 받으며 한해 살림을 꾸릴 채비를 한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올 때, 겨우살이는 황금빛 꽃을 피우고 붉은 육질의 열매를 만들어 주린 새를 유혹한다. 풍만한 환경만이 삶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때로 부족하고 아쉽고,  때로 고통스러워도 삶은 만들어진다. 고난 속에 피어나는 삶이 더욱 옹골지고 강인하다.  가을의 야생화는 가을 숲에서 단풍만큼이나 매력적인 요소다. 나무들이 단풍으로 가을 장식하고 있는 숲틈으로 가을 들꽃들이 또한 꽃잔치를 한다. 봄부터 여름, 가을까지 물이 녹아있는 동안 식물은 항상 자란다. 산으로 들어가는 아스라한 들길은, 이미 억새의 흔들리는 이삭무리로 사람의 마음을 다분히 감상적으로 만들면서 들 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어느새 물기를 잃고 말라가는 풀들이 발길에 제법 사그락 거리면, 무언가 준비의 시간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아스라한 감상의 풀속에서 가장 먼저 들국화 무리를 만나게 된다.

 

가을 정취의 으뜸은 바로 야생의 들꽃 무리다. 진정으로 숲의 가을을 만드는 것은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온통 단풍으로 물든 배경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들국화다. 숲 가장자리 언덕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난 산국무리, 지천으로 세력을 뻗쳐 가는 개망초의 흰 꽃망울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너무나 반갑고, 소중한 산 식구로 다가온다. 개망초 대신 산국이 피어났다는 것은 이제 숲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산국은 우리 산야 식물들에 대한 긍지와 기대를 말해준다. 별스럽게 빛나지는 않지만, 노오랗게 무리진 작은 꽃무리는 오래전부터 숲 언저리에 살아왔다. 숲이 사람에 의해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개망초 무리가 그 사이에 들어차고 산국은 잊혀져 갔다.

 

가을에 피어나는 꽃들은 집단의식이 강하다. 집단 개화의 목적은 단순하다. 꽃가루받이를 동시에 많이 하여 꿀을 절약하기 위해서이다. 거대한 꽃무리를 보고 많은 꿀을 기대하고 찾아온 벌들은, 한번에 많은 꽃에서 꽃가루를 묻히고 전달해준다. 이렇게 적은양의 꿀로 많은 꽃에서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다. 거대한 꽃 무리는 한마리의 벌들이 오더라도 많은 꽃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초원에 있는 꽃무리는 키가 비슷 비슷하다. 긴 꽃줄기를 만들고 그 끝에 약속이나 한듯이 일정한 높이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어느 정도 키가 커지 않은 꽃은 곤충에게 별 흥미를 주지 못한다. 꽃무리에서 꽃들은 자신의 꿀을 조금만 만들 뿐이다. 꿀이 충분치 않은 벌들은 이꽃에서 저꽃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니게  되고, 꽃은 더 넓은 지역 , 더 많은 꽃들에게 꽃가루를 전달한다.,

 

가을 청명한 빛에는 자외선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자외선은 안토시아닌 색소를 발달시키기 때문에 빛이 강하게 내리 쬐는 산과 들의 야생화들이 훨씬 색이 진하고 아름답다. 고도가 높을수록 공기층은 얇아지므로 광선은 더욱 밝아진다. 아주 높은 고산의 초원이나 가을 산 높은 곳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더욱 꽃색과 무늬가 선명하다. 나무도 떠나버린 고산 초원에서 꽃들이 유난히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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