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가 1979년 영국총리로 선출되면서 커다란 전환점이 찾아왔다. 대처 정부는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낮추고 교육, 주택, 교통부문을 중심으로 정부지출을 삭감하는가 하며, 노동조합의 권한을 줄이는 방안을 도입하고, 자본통제를 폐지했다. 대처 정부의 가장 상징적인 정책은 민영화였다. 물가를 잡기위해 이자율을 올려 경기를 위축시키고, 이를 통해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썼다. 그 결과 소비자와 기업이 긴축을 하면서 1979년부터 1983년 사이에 깊은 불황이 찾아왔다. 로널드 레이건은 1981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마거릿 대처보다 한술 더 뜨는 정첵들을 추진했다. 레이건 정부는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을 공격적으로 깍으면서 이 조치로 부자들이 투자이익중 더 많은 부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투자의욕을 촉진해서 부의 창출을 독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자들이 부를 더 많이 축적하면 더 많이 소비할 것이고, 이로인해 일자리가 더 늘어나 더 많은 사람들의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것을 낙수효과이론이라고 부른다. 부자들의 세금을 깍는 동시에 레이건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고 최소임금을 동결하면서 그것이 더 열심히 일한 동기를 부여하기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일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하기 위해 부자들은 더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이 논리는 '공급경제학'이라고 불리며 향후 30년 동안 아니 그 이후까지도 미국 경제정책의 기본신념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물가를 잡기위해 이자율 인상이 감행되었다. 미국제조산업의 상당부분은 이렇게 높은 이자율로 인한 금융비용을 감당할수 없었다.
이 시기에 진행된 금융규제완화는 현재 미국의 금융체제를 이루는 기초가 되었다. 규제완화로 인해 기존 경영진의 의사에 반해, 기업이 다른 기업에게 인수되는 적대적 인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미국 기업문화가 달라졌다. 기업 사냥꾼이라고 부르는 매수자들은 기업의 자산 수탈에만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인수한 기업의 장기적 생존과는 상관없이 가치있는 자산을 분리해 팔아치우는사례가 늘었다. 적대적 인수의 대상이 되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은 이전보다 더 빨리 수익을 내야만했다. 그렇지 않으면 참을성 없는 주주들이 주식을 팔아치우고, 그에 따라 주가가 떨어져 적대적 인수의 대상이 되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기업이 이익을 빨리내는 방법은 다운사이징이었다. 장기적으로 기업발전에 방해가 되더라도 당장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모든 고용과 투자를 축소하는 관행이 생긴 것이다.
1970년대말, 1980년대초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부분적으로는 산업화에 필요한 재정때문에 또 부분적으로는 오일 쇼크이후 비싸진 원유를 수입하기 위해 외채를 많이 빌려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자율이 2배로 치솟고,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외채상환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이 3차 외채위기라 부른다. 경제위기의 개발도상국들은 IMF와 세계은행에 돈을 빌리는 조건으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예산을 삭감하고, 공영기업을 민영화하고 국제무역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정부역할을 줄이는 것이었다. 모든 필요한 구조조정을 한 후에도 대부분의 국가들이 1980년대와 1990년내내 성장률의 극적인 감소를 경험해야 했다. 이 기간 동안에 경제적 성공을 거둔 다른 나라들은 모두 광범위한 정부의 개입과 점진적인 개방전략을 쓴 곳이었다. 일본과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호랑이, 그리고 중국이 좋은 예이다. 그러던중 1989년 역사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그해 소련이 와해되기 시작했고,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1990년 독일이 재통일이 되었고, 대부분의 동유럽국가들이 공산주의를 포기했다. 1978년이후 중국도 점차적으로 개방을 추진했고, 1986년 베트남도 도이모이라는 이름의 문호개방정책을 채택했다.
사회주의의 경제문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정점 더 다양해지는 경제를 중앙에서 계획해서 제어하는 어려움, 실적과 보수사이의 미약한 상관관계로 인한 동기부여 문제, 표면적으로는 평등을 부르짖지만 정치적 결정에 따라 받게 되는 불평등의 확산 등 문제가 많았다. 그 후 10여년동안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앞다퉈 자본주의 경제로 변신하는 데 온 정신을 쏟았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빅뱅식 개혁방법을 채택해서 하루아침에 자본주의 경제로 바꾸려고 했다. 그 결과 글자 그대로 대부분의 국가에게 재앙이었다.유고슬라비아는 와해되어 전쟁과 인종청소라는 비극으로 치달았고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던 수많은 공화국들이 심각한 경기침체 늪으로 빠져들었다. 러시아에서는 경제체제 붕괴에 따른 높은 실업율과 경제적 불안감 때문에 스트레스 알코올중독을 비릇한 건강문제가 극심해졌다.
1990년대중반에는 신자유주의가 전세계로 퍼졌다. 대부분의 구사회주의국가들은 빅뱅개혁이나 중국과 베트남처럼 점차적이고, 꾸준한 개방과 규제완화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흡수되었다. 이때에는 이미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시장개방과 자유화가 상당수준 진행된 후였다. 이즈음 맺어진 중요한 국제협정은 글로벌 통합의 새장을 여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 1994년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사이에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맺어졌다. 1995년 GATT를 확장한 세계무역기구WTO가 탄생했다. EU의 경제통합은 1993년 재화, 서비스, 사람, 돈의 자유로운 이동을 표명하는 이동의 자유와 함께 단일시장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또한 세계화는 시대를 규정하는 개념으로 떠올랐다. 이는 통신기술과 교통수단의 혁명적인 발전으로 거리의 종말이 오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세계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각국이 이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여 국제무역과 투자에 자국을 완전히 개방하고, 국내경제 또한 자유화 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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