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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

모든 것이 변한다.

경제학 저술에 등장한 최초의 주인공은 무엇이었을까? 금, 토지, 금융, 아니면 국제무역. 답은 핀이다. 신용카드 핀넘버를 말하는게 아니다. 요즘 옷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 아니면 잘 쓰지도 않는 쇠로 만든 그 작은 물건을 뜻한다. 애덤 스미스는 궁극적으로 부의 양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더 세세한 분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라고 주장한다. 스미스는 열 사람이 핀을 만드는데 한 사람이 한두가지 일만 하는 방식으로 분업을 하면, 하루에 4만8000개의 핀을 만들수 있다고 계산했다. 반면에 한 명이 전체공정을 하게 되면 한 사람이 하루에 20개 남짓밖에 생산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애덤 스미스가 살던 시대와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 사이에 변한 것은 물건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생산기술만이 아니다. 경제활동을 벌이는 행위자 즉 경제주체와 생산을 비롯한 기타 경제행위가 어떻게 조직되는가에 관한 규칙 경제제도 또한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 경제라는 것은 무엇일까? 자급자족적 영농처럼 자기자신이 소비하기 위해서나 봉건사회의 귀족 또는 사회주의의 중앙계획 당국 같은 정치적 권위를 지닌 존재가 명령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정치적 의무 때문이 아니라, 이윤을 내기 위해 생산이 조직되는 경제가 자본주의 경제다. 이윤은 시장에서 무엇을 팔아서 번 것에서 그것을 생산하는데 들어간 모든 비용을 뺀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재를 소유한 사람들 즉 자본가들에 의해 움직인다. 자본재는 생산수단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생산과정에 들어가는 내구재를 말한다. 원자재는 자본재가 아니고 기계는 자본재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업 등에 투자한 돈을 자본이라고 말한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직접 소유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생산수단을 가진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간접적인 소유형태가 흔하다. 자본가들은 상업적 원칙하에 생산수단을 작동할 사람을 고용한다. 이 사람들을 임금노동자 혹은 노동자라 부른다.

 

자본가들은 재화와 서비스를 사고파는 시장에서 생산한 것을 팔아 이윤을 낸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파는 사람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면, 이윤을 쫓는 생산자들이 기능한 한 가장 낮은 비용으로 물건을 생산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혜택받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 시대와 현대의 자본주의는 닮은 점이 거의 없다. 애덤 스미스 시절에는 대개 자본가 한명이 단독 혹은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는 소수의 자본가들이 합명회사를 만들어 공장이나 농장을 소유하고 운영했다. 이와 달리 현대공장은 대부분 비자연인, 즉 기업이 소유하고 운영한다. 기업은 법적인 의미에서만 사람이다. 그리고 기업주식을 사서 부분 소유권을 가지게 된 수많은 개인들의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 소유권과 경영은 거의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애덤 스미스 시대의 대부분의 기업은 규모가 작고 한 곳에서 모든 것이 생산되는 체제였고, 반면에 현대의 기업은 수만명 심지어는 전세계에 걸쳐 수백만명의 노동자를 거느린 거대한 조직인 경우가 많다.

 

애덤 스미스 시절에는 자본가 밑에서 임금노동자로 일하는 사람의 수가 얼마되지 않았다. 대다수는 소규모 자급농 이거나, 귀족 지주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은 다음 수확물의 일정량을 소유주에게 내는 소작인이었다. 이 시대에는 자본가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조차 많은 수가 임금 노동자가 아니었다. 이때는 노예들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경운기나 소처럼 노예도 자본가가 소유한 생산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임금노동자 중에서 현대기준에 따르면 임금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로 어린이들이다. 성인 노동인구의 10%는 자영업자이고 15-25%가 정부기관에서 일한다. 나머지는 모두 자본가 밑에서 일하는 임금노동자들이다. 애덤 스미스 시대의 시장은 규모면에서 대부분 각지역, 커봤자 한 나라안에서 국한되었다. 설탕, 노예, 향신료 등 국제적으로 교역되었던 몇가지 핵심상품과 비단, 면, 모 등 몇몇 제조업 제픔만 예외였다. 이 시장에서 수많은 소규모 기업들이 활동하면서 현대의 경제학자들이 완전경쟁이라고 부르는 상태를 이루었다. 완전경쟁은 어떠한 공급자도 가격에 임의로 영향을 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반면 오늘날 대부분의 시장은 대기업이 지배하고 자주 그들에 의해 조작되곤 한다. 일부 대기업은 유일한 공급자로 시장을 독점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소수의 몇몇 공급자 중 하나로 시장을 과점한다. 이 독과점 상태는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점점 전 세계적 규모가 되어가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살던 시절의 작은 기업들과 달리, 현대의 독점 혹은 과점기업들은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수있다. 경제학자들이 시장지배력이라고 하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상대기업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 담합하여 이윤을 극대화 하는 것을 카르텔이라고 부른다. 이제 대부분의 나라들은 독점금지법이라고 부르는 경쟁법을 제정해서 반경쟁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수요독점과 수요과점은 몇십년전만 해도 이론적 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볼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수요독과점현상은 우리 경제가 돌아가는데 있어, 독과점기업들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제 우리는 지폐와 동전을 만들어 내는 은행은 각 나라에 하나씩만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일을 하는 곳이 중앙은행이다. 애덤스미스가 살던 시대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은행들이 돈을 찍어내고, 일부 대규모 상인들도 화폐를 발행했다. 각 지폐는 특정인물에게 발행 되었고, 각각 다른 가치를 지녔으며 발행한 출납원의 서명이 들어갔다. 1853년에 수취인 이름과 출납원 서명이 들어가지 않은 인쇄된 지폐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지폐의 가치가 그 지폐를 발행한 은행이 소유한 금이나 은같은 귀금속의 가치와 연계되어 있었다. 이것을 금본위제라고 부른다. 금본위제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지폐를 특정 중량의 금과 아무 때나 교환하는 것이 가능한 통화 제도였다. 지폐와 금의 태환성 때문에 중앙은행은 굉장히 많은 양의 금을 보유해야 했다. 예를 들어 미국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발행한 화폐가치의 40%에 해당하는 금을 보유했다. 지폐를 사용하는 것과 은행업무, 다시말해 은행에 돈을 저축하거나 돈을빌리는 것은 별개 문제이다. 은행 업무는 지폐의 사용보다도 덜 발달되어 있었고, 이를 이용하는 것은 극소수의 사람들 뿐이었다. 기업의 주식을 사고파는 주식시장은 애덤 스미스가 활동하기 1-2세기 전부터 존재했다. 많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을 도박장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정부가 돈을 빌리고 써주는 차용증으로 누구에게나 양도 가능한 국채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와 같은 극소수의 국가에서만 존재했다.

 

회사들이 발행한 차용증인 회사채 시장은 영국에서 조차 별로 발달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늘날 금융산업은 은행, 주식시장, 채권시장뿐만 아니라 선물, 옵션, 스와프 등 점점 더 비대해져가는 파생금융상품 시장, 그리고 MBS, CDO, CDS 같은 이름의 복잡하고 다양한 금융상품들을 거래하는 시장도 포함되어 있다. 이 시스템을 지탱하는 것은 중앙은행으로, 중앙은행은 아무도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는 금융위기시에 제한없이 돈을 빌려주는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는 지난 2세기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 경쟁은 거대한 초국적 기업간에 벌어지고, 그들은 각계에 영향을 끼칠뿐 아니라 ,아주 짧은 기간내에 기술 자체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어떤 경제이론이 아무리 위대해도 그것은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만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