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말과 1990년대초의 희열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멋진 신세계의 모든 게 안녕하지 못하다는 첫번째 징후는 1995년 멕시코 금융위기였다. 1997년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더 큰 충격이 들이닥쳤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의 금융부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타고 현실적인 수준을 훨씬 넘도록 가격이 오른 자산거품이 붕괴한 탓이었다. 1980년대말과 1990년대초에 들어서는 상당히 급진적인 금융시장 개장을 감행하였다. 규제가 줄어들자 이 나라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이자가 낮은 부자나라들로부터 공격적으로 돈을 빌려왔다. 외국자본이 더 많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아시아 국가들의 국내 자산가격은 올라갔고, 그럴수록 이 나라들의 기업과 개인은 더 비싸진 자산을 담보삼아 더 많은 돈을 빌렸다. 얼마가지 않아 이 모든 과정은 계속 오르기만 하는 자산가격으로 더 많은 대출을 정당화 하고, 쏟아져 들어오는 돈 덕분에 가격은 더 오르는 순환고리가 형성되었다. 결국 그 자산가격이 지속 불가능한 것이 분명해지자 돈이 빠져 나가기 시작했고 금융위기가 닥친 것이다.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복지정책이 잘 갖추어저 있지 않아 일자리를 잃으면 곧 극빈자 생활로 이어지는 나라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IMF와 부자나라들은 금융위기를 맞은 아시아 국가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수많은 정책변화를 요구했다. 모두 시장을 자유화하는 것, 특히 금융시장을 자유화 하는 방향의 변화들이었다. ‘파인내셜 타임스’의 마틴울프나 자유무역주의 경제학자 지그디시 바그와티 등 세계화의 선봉에 섰던 사람들마저 자유로운 자본 이동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2000년 또 한순간 위기가 찾아왔다. 이른바 닷컴 거품이 미국에서 붕괴된 것이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개입해 이자율을 공격적으로 낮추고, 다른 부자나라들의 중앙은행도 같은 조치를 취하면서 이에 따른 위기감은 금방 잦아들었다. 미국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는듯 했다. 성장률은 눈부시다고 할 수 없지만 양호했고, 부동산, 주식 등 자산가격은 영원히 오르기만 할 것처럼 보였다.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는 이전 20년동안 기적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의 존재를 마침내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초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중국의 세계의 식량, 지하자원, 연료를 엄청나게 흡수하기 시작했고, 전 세계는 성장하는 중국의 무게를 점점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중국은 또 일부 아프리카 국가의 주요 대출국이자 투자국 역할을 했다. 2007년초 '서브프라임'이라는 듣기 좋은 이름이 붙은 담보대출 채무불이행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은 미국 금융회사들이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가정하에 안정적인 수입이 없거나, 신용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갚을 능력 이상의 돈을 빌려준 대출상품을 말한다. 처음에는 문제가 되는 미국 담보대출이 500억 내지 1000억달러 정도로 추산했다. 작은 액수는 아니지만 시스템에서 쉽게 흡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2008년 여름, 베어 스턴스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진짜 위기가 닥쳐왔다.
금융위기에 대한 주요 선진국들의 첫 반응은 대공황 직후와 매우 달랐다. 그들이 취한 정책은 막대한 예산적자를 낸다는 의미에서 케인스식이었다. 적어도 줄어든 세수입에 맞춰 지출을 줄이지 않는 나라가 많았고, 일부 국가는 정부지출을 늘이기 까지 했기 때문이다. 주요 금융기관과 GM, 크라이슬러 같은 산업체가 공적자금으로 구제되었다. 더 이상 이자율을 낮추지 못할 수준까지 이르자 은행들은 양적완화라고 알려진 조처를 취했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 돈을 새로 찍어서 주로 국채를 매수하는 방법으로 시중에 돈을 푸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자유시장주의가 맹렬한 기세로 귀환했다. 2010년 5월이 그 회귀점 이었다. 영국에서 부수상이 이끄는 연립정부가 선출되고, 그리스에 대한 유로존의 구제금융프로그램이 시작 되면서 균형제정원칙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지출을 큰 폭으로 삭감하는 긴축예산이 영국과 이른바 PIIGS (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에서 시행되었다. 2011년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오바마 정부를 압박해 막대한 지출삭감프로그램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는 처참 했고, 아직도 그 휴유증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위기가 터지고 4년이 지난 2012년말 OECD 회원국 34개국중 22개국의 1인당 생산량이 2007년보다 낮았다. 다수의 나라들이 긴축예산을 집행하고 있어 경제회복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 경제가 정체된 상황에서 정부가 지출을 급격히 줄이며 회복을 저해했기 때문이다.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는 위기전에 8%였던 실업율이 2013년 여름에는 각각26%, 28%로 치솟았다. 청년 실업율은 55% 웃돌았다. 위기 원인이 금융시장의 과도한 자유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개혁은 미미 했고, 그 도입에 몇년씩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지나치게 복잡한 금융상품거래를 포함한 몇 분야에서 그나마 미미하고 점차적인 개혁마저도 행해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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