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하이눈 시기: 1870-1913년
1860년대와 1910년대사이에 새로운 기술혁신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이른바 중화학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전기를 이용한 기계, 내연기관, 인공염료, 화학비료 등등이다. 이와 더불어 생산시스템의 발명으로 인해 많은 산업분야에서 생산과정을 조작하는 방법도 혁명적인 변화를 거쳤다. 점점 더 거대해지는 생산규모와 위험부담, 불안정성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 제도가 출현한다. 하이눈 기간에는 유한회사, 파산법, 중앙은행, 복지국가, 노동법 등 현대적 모습을 갖춘 자본주의의 기초 제도들이 등장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은행들도 커졌다. 이와 함께 은행 하나가 잘못되면, 금융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위험도 증가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설립되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게 된다. 1844년 영국의 중앙은행이 된 잉글랜드 은행이 최초의 중앙은행이다.
자본주의 하이눈 기간은 최초로 세계화가 시작된 때라고 거론된다. 세계경제 전체가 하나의 생산 및 교환 시스템으로 통합 되었다는 뜻이다. 많은 논평가들은 국제무대의 자유주의와 함께 각국은 국내경제 정책에도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사용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시기에 자본주의의 중심지인 서유럽과 미국에서 보호무역이 줄어들기는 커녕 늘어났다. 유럽국가들은 아프리카 점령경쟁에 열을 올렸고, 다수의 아시아 국가도 식민지가 되었다. 말레이시아, 싱가폴, 미얀마는 영국 손으로, 캄보디어, 베트남, 라오스는 프랑스 손으로 돌어갔다. 독일, 벨기에, 미국, 일본 등 그때까지 식민지 점령에 별 관심이 없던 나라들 마저 이 대열에 끼여들었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내적으로도 정부개입이 늘어났다. 정부의 역할은 강화되어 노동규제, 사회복지제도,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공적투자 등의 분야에서 정부의 개입이 늘어난 것이다. 자유주의는 약소국으로 확산되었고, 그것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불평등조약 등을 통해 강요된 것이었다.
파란의 시기: 1914-1945년
1914년 발발한 1차 대전은 자본주의의 한 시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러시아 혁명은 자본주의 신봉자들에게 1차 대전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자본주의의 초석이 되는 모든 요소를 뒤엎은 경제시스템이 혁명후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후 10년 사이에 기계, 공장, 건물, 토지 등의 생산수단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이 폐지 되었다. 자본주의의 또 다른 초석인 임금 노동 문제는 이보다 더 상황이 복잡했다. 물론 소련의 노동자들은 이론적으로는 임금노동자가 아니었다. 국유 혹은 조합을 통해 생산수단을 모두 함께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자본주의 경제의 임금 노동자들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소련식 사회주의는 거대한 경제적, 사회적 실험이었다. 그때까지 어떤 경제도 중앙에서 세운 계획에 따라 운영된 적이 없었다. 소련의 초기 산업화는 큰 성공을 거두어 1928년에서 1938년 사이에 1인당소득은 연간 5% 비율로 성장했다. 다른 나라의 1-2%에 비하면 실로 눈부신 성장이었다. 이 성장은 정치적 탄압과 1932년의 기아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댓가로 얻은 것이었다.
자본주의 신봉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준 것은 사회주의 부상보다 대공황이었다. 특히 1929년 월가의 붕괴로 시작된 악명 높은 대공항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미국에서는 더욱 그랬다. 1929년 월스트리트 붕괴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같은 거대한 금융위기가 벌어지고 나면 민간부문 지출이 감소한다. 부채 회수가 잘 되지 않으니 은행들은 대출을 줄이고, 돈을 빌리는 것이 어려워지니 기업들과 개인들은 지출을 줄이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경제 전체의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정 수준의 수요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 주체는 정부밖에 없다. 정부는 들어오는 수입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함으로써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자본주의 개혁은 공황이 가장 심하고 오래 지속되었던 미국에서 제일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새로 취임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휘 아래 시도된 1933-1934년의 이른바 뉴딜정책에서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도록 했고, 예금보험을 마련해서 은행들이 파산해도 소액 예금주들이 보호를 받도록 보장하는가 하며, 주식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1935-1938년에 실시된 제2차 뉴딜정책에서는 노령연금과 실업보험을 도입한 사회보장법, 노조를 강화한 와그너법 등 더 깊숙한 개혁정책들이 실행되었다. 1914년-1945년의 혼란은 2차대전의 발발로 그 정점에 이르고, 전쟁은 군인과 민간인들의 목숨 수천만을 앗아갔다. 전쟁은 19세기초 이후 가속적으로 증가하던 경제 성장률이 처음으로 역행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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