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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 (게이버 메이

부정적인 사고의 힘

밴쿠버의 종양학자 캐런 겔먼은 암에 종종 사용되는 전쟁에 관한 비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저는 그게 암을 바라보는 데 있어 도움이 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첫째 그런 생각은 생리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습니다. 둘째 저는 그런 생각이 심리적으로 건강에 유익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유입이 있으면 유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흐름의 모든 양상이 다 통제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있고,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일은 전투가 아닙니다. 그런 균형과 조화를 찾기 위한 밀고-당기기 현상이고, 상충하는 힘들을 반죽해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질병의 군사이론이라고 부를수 있는 가설에서는 질병을 생체가 전투를 벌여 패퇴 시켜야 하는 외래집단, 즉 적군으로 간주한다. 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어떤 사람은 그냥 두고 어떤 사람은 쓰러뜨리는가? 미생물은 같은 사람 몸속에 살면서도 그 사람의 생애의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다른 특정한 시점에서는 치명적인 공격을 대시한다. 19세기는 의학사상 가장 뛰어난 두 인물이었던 선구자적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와 생물학자 클로드 바르나르가 앞의 질문을 놓고 수십년간 열띈 논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파스퇴르는 병원균의 독성이 병의 진행과정을 결정한다고 주장했고, 바르나르는 숙주의 질병 취약성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파스퇴르는 결국  ‘ 바르나르가 옳았다, 병원균은 아무것도 아니다. 활동무대 (숙주)가 모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환자가 이 질병에 걸린 것인가?'라고 물었을 때, 현대의학은 어떤 면에서 보나 원인과 결과라는 단순주의적인 관점을 채택해 왔다.

 

병원균이나 유전자처럼 독립된 발병원인을 찾는 일이 훨씬 더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더 광범위한 관점을 무시한다면, 질병은 늘 발병 원인미상 상태일 것이다. 성격 또한 그 자체만으로는 질병을 유발하지 않는다. 단순히 화를 억압한다고 해서 무조건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며, 단순히 너무 착하다고 해서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말이다. 시스템 모델에서는 질병이 발생하거나, 건강이 구축되는 일에 수많은 과정과 요인들이 함께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생물심리사회적 관점에 따르면 개별인간의 생물학적 상태는 그 사람의 생태가 평생동안 주변환경과 맺어온 상호작용, 즉 심리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이 신체적 요인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에너지 교환작용을 반영한다. 겔먼 박사의 주장처럼 치유란 균형과 조화를 발견하는 현상이다. 치유healing란 단어가 온전한whole 이라는 의미를 지닌 고어 어원에서 나왔다. 치유한다는 것은 온전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무언가 본질적인 욕구가 거부되고 있다는 위협을 포함하는 어떤 위협이 감지되면, 그에 대한 반응으로 몸안의 균형에 교란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신체적인 배고픔도 그런 욕구 결핍중 하나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대개 그런 위협이 정서적 보살핌의 결핍이나 심리적 조화의 교란 같은 심리적 위협이다. 질병이란 부조화다. 정확히 말하면 질병은 내부의 부조화가 표출된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긍정적 사고는 우리의 모든 현실을 포함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런 사고는 우리가 스스로를 신뢰하면서 온전한 진실을 직면할 수 있다는 확신감- 그 온전한 진실이 결과적으로 무슨 진실로 판명되든 간에 -에 의해 통제된다. 마이컬 박사의 지적처럼 강박적인 낙관주의는 불안을 직면하는 일을 회피하려고 그 불안을 꽁꽁 묶어버리는 방법 중 하나는 증상이 발발하거나 병이 진단되면, 다음과 같은 두가지 질문이 일어나야 한다. ‘이 병이 내 과거와 현재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와 ‘앞으로 무엇이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런데 많은 치유방식들이 무엇이 병을 발생시켰는가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않은 채, 이 두 갈래 치유방식중 오로지 후자에만 초점을 맞춘다.

 

부정적인 사고는 현실주의를 가장한 슬프고 비관적인 시각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무엇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가?’  ‘내가 무엇을 무시했는가?’  ‘내 몸이 무엇에 대해 아니라고 거부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균형 부재의 원인인 스트레스들이 계속 모습을 숨긴채 남아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는 우리가 현실을 충분히 다룰만큼 강하지 않다는 무의식적인 믿음에 근거를 둔다. 이런 두려움의 지배를 허용하면 아동기의 불안상태를 촉발한다. 이런 불안은 의식적인 것이든 아니든 스트레스 상태다. 우리 자신과 상황에 대한 필수적인 정보의 부재가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중 하나이며,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축을 강력히 활성화 시키는 원인중 하나이다.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조절력이 증가할수록 스트레스는 점점 더 감소한다.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내몰리는 사람은 자기보다 더 강력한 힘들의 지배를 받는다그가 하는 선택들은 보이지 않는 끈들에 매달려 있다. 긍정적인 감정이 분명 건강에 이바지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다. 진정한 기쁨과 만족이 신체의 웰빙을 고양시킨다. 그러나 심리적인 불편함을 회피할 목적으로 생겨나는 긍정적인 정신상태는 질병 저항력을 감소 시킨다. 뇌는 몸의 모든 기관들과 계들의 활동을 지배하고 통합하며, 동시에 환경과 우리 사이의 상호작용을 조절한다. 이런 조정기능은 부정적인 영향, 위험신호, 내부의 고통신호들을 분명히 인식하는 일에 의존한다. 주변환경으로부터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만성적으로 전달받는 아이들은 뇌 발달기관에 손상이 생긴다. 그들이 긍정적인 생각이나 극기심, 몽상 등을 통하여 불안감을 더 많이 회피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는 더 오랫동안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더 위험해진다. 열감지 능력이 결핍되면 화상의 위험이 더 높아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암에 걸린 다를렌의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 갓난아기는 자기가 불편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울든지 슬픔을 표헌하든지 화를 내든지 합니다. 우리가 고통이나 슬픔을 숨기기 위해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다 후천적으로 습득한 반응입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는 일이 의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늘 이런 일을 합니다. 게다가 기계적으로 합니다.' 정서적으로 고갈된 기족관계야말로 퇴행성 신경질환에서 시작해서 암과 자가면역질환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범주의 주요 질병들의 위험 요인이었던 것으로 확인 되었다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목적은 부모, 과거의 세대들, 배우자를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에 위험한 것으로 판명된 그릇된 믿음들을 버릴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

 

질병을 새로이 진단받은 사람들에게 병을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자신의 대인관계를 점검해 보기 시작하라고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표현이나 정서적인 욕구 인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교감을 나누고 자기주장을 펴면서 다가가기 위한 자신감과 적절한 말을 찾는 일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한스 셸리에는 ‘우리가 느끼는 대부분의 정신적 긴장과 좌절은 실제의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강박욕구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사람은 강하면서도 도움을 필요로 할 수 있으며 어떤 삶의 영역에서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무기력하고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을 다 할 수는 없다. 질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바와 같이-이따금 너무 늦게-자신이 강하고 약하지 않다는 이미지에 맞춰살려고 한다면,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조화가 깨어진다. 나는 나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진실에 따라 내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