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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 (게이버 메이

대인관계의 생물학 2

미국의 정신건강의학자 머리 보웬박사가 명확하게 정립한 가족체계이론에 의하면, 질병은 개별 인간에게 일어나는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다. 가족체계이론 관점에서는 개별 인간들의 생리적 기능들이 시시각각 상호관련을 맺는다고 본다. 대인관계는 평생동안 작용하는 중요한 생물학적 조절기이다. 가족체계 이론의 근본개념은 ‘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 접촉을 하면서 정서기능을 자율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되는 ‘분화’개념이다. 분화가 빈약하게 이루어진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간의 정서적 경계가 부재하며, 사고 과정이 다른 이들의 정서감지 과정에 압도당하는 것을 막아주는 바운더리가 부재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안을 자동적으로 흡수하여 내면에 상당한 불안감을 발생시킨다. 분화가 잘된 사람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식으로 반응할 수 있으며, 그 감정을 다른 사람의 기대에 억지로 조화 시키거나, 반발하도록 맞추지 않는다. 분화가 잘된 사람은 자기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거짓연출을 하지도 않는다.

 

기능적 분화는 어떤 사람이 기능을 수행할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근거하여, 그 기능을 수행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 내 직원들, 내 배우자들, 내 아이들-이 내가 부여한 역할을 거부하면 나는 허물어질수 있다. 반면에 내가 다른 사람들과 자신에게나 정서적으로 열린 태도를 유지하면서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다면, 나는 기본적인 분화가 이루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분화가 덜 이루어진 사람일수록 정신적 스트레스와 신체적 질병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연구결과, 결혼생활의 질이 낮은 것은 빈약한 면역반응과 강력하고 명확한 관련이 있었다. 이혼하거나 별거상태인 여성의 경우는, 결별이후 경과한 시간과 면역기능의 감소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심리적 요인이었다. 자기조절을 더 잘하고,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두 사람의 관계에서 정서적으로 덜 의존적이었던 여성들이 더 강한 면역력을 갖고 있었다. 분화가 더 잘된 사람일수록 더 건강하다는 의미다.

 

어떤 관계에서든, 힘이 약한 쪽이 양자가 공유한 불안들에서 불균형상태에 이를 정도로 많은 양의 불안을 흡수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남성들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이를테면 불안증이나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 두 사람의 관계가 불균형 상태에 있다면, 여성들은 자신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지면서 동시에 남편의 스트레스와 불안까지 흡수하는 것이다. 여성쪽이든 남성쪽이든 부부간의 관계를위해서 욕구를 더 많이 억압하는 쪽이 신체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자가면역질환이나 흡연과 무관한 암들이 여성에게 더 자주 발생한다. 커 박사는 ‘ 정신과 신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사람과 사람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사람의 불안이 다른 사람의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썼다. 자연의 궁극적 목표는 한 개인이 절대적 의존상태에서 독립적 상태로 성장하도록 촉진시키는 일- 정확히 말하면, 성숙한 성인들이 공동체내에서 상호의존하며 살아가는 상태로 성장하도록 촉진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발달이란 유전적 프로그래밍이 허용하는 한계안에서, 완전한 외부조절에서 자기조절로 이동해 가는 과정이다. 자기조절이 잘되는 사람은 공동체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유익한 상호작용을 하는 능력이 많은 사람이며, 자기조절이 잘되는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아이들을 양육하는 능력도 많은 사람이다. 이같은 자연의 목표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간에 생체의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을 위협한다.

 

성인기에 접어들어 자기조절능력이 더 커지게 되면 자율에 대한 욕구가 고조된다. 자율을 해치는 것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경험된다. 사회적 환경이나 신체적 환경에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이 결핍될 때마다 혹은, 의미있는 선택을 하지 못하고, 무력감을 느낄때 마다 다시말해 자율성이 방해를 받을때마다 스트레스는 확대된다. 유아기와 아동기시절 정서적인 자기조절능력이 덜 발달된 사람일수록 성인이 되었을때 항상성 유지를 위해서 대인관계에 더 많이 의존한다. 그 같은 의존이 크면 클수록 사회적 관계가 상실되거나, 불안정해질 위험성도 커진다. 결국 주관적이며, 생리적인 스트레스에 대한 취약성이 정서적 의존 정도와 비례하게 된다. 위협적인 대인관계에 의한 스트레스를 최소하하기 위해 사람들은 일정부분 자율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건강의 공식이 아니다. 자율부재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자율의 포기가 대인관계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것처럼 보이고, 또 그런 식으로 안정이 확보될 때 주관적으로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스트레스 원인이 된다.

 

위협적인 대인관계에 의한 스트레스로부터 정신을 보호하는 또 다른 방식이 아예 감정을 차단시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다른 사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친교를 차단시켜버리는 것이다. 친교관계에 담을 쌓은 사람들은 자기조절이 안되는 사람들이며, 정서적으로 꽁꽁 얼어붙은 사람들에 불과하다. 층족되지 못한 욕구들로 인해 그들의 스트레스 수치는 높아질 것이다. 사회적 지지는 생리적인 스트레스 개선에 도움이 된다. 결국 성인에게 생물학적 스트레스 조절이란 사회적 대인관계적 안정과 진정한 자율사이의 균형에 달려있다. 개인이 의식을 하든 안하든 이런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스트레스 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