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숲의 생활사 (차윤정)

치열한 생존경쟁

 

여름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있어야 나뭇잎은 햇빛을 반사할 수 있으며, 숲을 스치는 바람이 있어야 은빛 나뭇잎을 알아 볼 수 있다. 윤이 나는 왁스 잎을 가진 느릅나무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흰털을 수북히 가진 굴참나무는 바람이 불어야 이파리를 뒤집어 군무출 수 있는 것이다. 여름은 모든 것이 맞물려 있다. 풍성하고 울창한 숲은 그만큼 물질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여름 숲은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는 치열한 전쟁터이다. 우람한 몸짓을 만들어 내는 바람은 거세고 빗줄기는 굵다. 여름이 키워낸 강자들에 의해 숲은 다시 재편되고 견제당한다.

 

뻐꾹여름이다. 나무는 한해 동안 자라야 할 만큼의 높이에 충분히 도달 하였고, 잎의 두께와 크기도 연중 최고로 자란다. 숲의 두께는 한층 짙어지고 묵직해졌다. 초본들은 이미 새식구들로 교체되었다. 여름 숲의 풀들은 계절을 닮아 크고 시원스럽다. 그리고 억세고 거칠고 또한 둔하다. 풀들의 키는 1미터가 넘을 정도로 높고 줄기가 곧다. 봄 숲의 풀들이 줄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봄 풀들이 서둘러 꽃을 피우는 것과는 달리 여름 풀들은우선 잎을 무성하게 키운다. 꽃이 없는 잎들은 게걸스럽기도 하고 자유분방하기도 하다. 여름의 그런 자유 분방함과 방자함이 매력이다.

 

노고지리의 하늘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참새들의 재잘거림, 이름 모를 산새들의 높고 가는 소리들이 마른 봄 하늘을 메아리 쳤다면,  뻐꾹새의 싱거운 소리는 여름 숲을 어슬렁 거린다. 짙은 녹음 속에서 맑고 청명한 새소리는 곧 묻혀버린다.맑고 경쾌한 물소리 대신에 땅을 울리며 우당탕거리는 계곡소리에 귀가 멍해진다. 바람 소리가 솨솨하고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를 내면, 그 속에 울창한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섞여 있다. 모든 것이 절정에 달해 있는 울창한 여름이다.여름 숲에는 성장의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여름 숲의 성장을 지켜보면 실로 나무의 위대함을 알게된다. 잎 하나 줄기 하나가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잎을 피워내는 이 신기함은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잎의 기원은 무엇인가? 잎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이 가지는 유형의 실체는 궁극적으로 탄소들의 모임이다. 탄소들의 모임이라 말하지만, 식물이 만들어 내는 잎사귀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플라스틱과는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대기 중에 무수히 떠 있는 기체 상태의 탄소 ,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 식물 스스로 토해내는, 이 흔한 탄소들의 놀라운 변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광합성, 탄소동화작용, 빛을 받아들이는 전자상태, 물로부터 받는 전자, 암반응 , 명반응. 전문적인 이론과 용어들로 설명 할수록 식물들이 이룬 업적에 대해 신비감을 더해갈 뿐이다. 아무런 동력체계도 없이, 외부에서 투입되는 에너지나 물리력도 없이 만들어지는 유기물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까?

 

이 물질은 곧 에너지다. 지금 세계가 의존하고 있는 화석연료란 결국 식물들이 생산한 유기물이 기원이다.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물로 합성한 유기물이 미처 사용되지 못해 땅속에서 겹겹이 쌓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기물은 변형되어 석유가 된다. 수 억년 전의 물질이 오늘날까지 에너지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식물의 태양 에너지 이용효율은 2-3퍼센트이다. 효율성이 낮다. 그러나 나무  1그램에서 축적되는 에너지는 약 5000 칼로리 정도이다. 그렇게 볼 때 지금까지 인류가 사용한  화석 연료의 양을 생각해 보라. 식물이 얼마나 많은 연료를 생산하고 성장하였는지를. 식물의 신비한 능력은 사람이 사용하는 에너지만으로 위대하지 않다. 지구상에서 숲이 이루는 복잡한 생태계가, 이파리 하나로 시작되는 먹이 망 구조에서 세워진다.

 

숲의 울창함은 식물 활동이 눈부심을 의미한다. 가지마다 풍성하게 달리는 잎들은 숲의 또 다른 생명들에게 축복이다. 나무가 열 장의 잎을 생산한다면 그 중에는 여분의 잎이 있다. 열장중 두장은 자신의 성장에 쓰인다. 또 다른 두장은 각각 꽃과 씨앗을 만드는데 쓰인다. 또 다른 두장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물질을 만드는데 쓰인다.  또 다른 두장은 스스로 저장되는 몫이며, 나머지 두장은 숲의 다른 생명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물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숲의 많은 생명들이 나무의 은혜를 입는 것이다. 그 두장의 잎을 먹는 애벌레, 애벌레를 먹는새, 새를 먹는 짐승 숲의 생태계는 이렇게 하나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나무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숲을 키우고 숲은 모든 생명을  키운다.

 

여름 숲은 사람의 온갖 감각을 자극하는 먹거리가 있다. 결실의 가을이라 하지만 미식가를 자극하는 맛은, 여름이 오히려 더하다. 가을날 여무는 밤이나, 도토리가 갖추어야 할 것은 겨울나기 위한 저장 능력이 중요하다. 느리게 분해되고 맛이 없는 것, 동물들이 관심을 갖지 않게 하는 것 , 그래서 녹말덩이가 제격이다. 길가에 먹음직스럽게 열려 있는 산딸기 열매,  아무런 저항없이 그대로 떨어지는 열매는 이미 작은 벌레들의 만찬장소가 되어 있다. 흰꽃에 화사하게 만발하던 산벚나무의 꽃자리마다 검붉은 열매가 매달려 있다. 여름 숲의 열매는 다양한 숲의 식구들을 거느리는 힘이 된다. 온갖 종류의 새소리를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계절이 여름이다.

 

여름 숲은 복잡하다. 지상부에서 시작되는 초본류, 덤불, 관목, 아교목,  교목은 한치의 빈공간도 허용하지 않다. 최고의 자리를 바라볼 수 없는 산벚나무와 팥배나무, 수적으로 열세인듯하지만 숲의 장악력은 신갈나무가 최고다. 숲을 점령한다는 것은, 지상의 공간을 장악한다는 뜻이다. 숲의 가장 높은 곳에 어떤 나무가 있는가에 따라 구성원의 구조도 달라진다. 활동적인 숲일수록 구조는 더욱 풍부하고,  숲을 풍부하게 만든다. 큰 나무만의 숲이라면 숲의 생태계는 빈약하다. 경쟁이 없는 곳에서라면 나무들은 무한한 서식공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보편적인 숲에서는 늘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공간과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 나무들은 서로 중첩되는 것을 피해 각자 경쟁력있는 곳에서만 제한된 영역을 차지한다.

 

복잡한 숲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빛의 부족이다. 숲의 층이 겹겹이 포개지면서 숲은 점점 어두워진다. 무성해진 숲의 덮개는 하늘과 땅을 가로질러 빛을 차단한다. 가장 빛이 풍부한 계절이라고 하지만, 그 빛은 몇몇 나무들이 독점하고 있다. 무성한 참나무 숲을 뚫고 숲안으로 들어온 빛은, 전체 빛의 25%에 불과하다. 소나무 숲은 이보다 더 심각하여 20%에 불과하다. 그래서 여름은 빛에 대한 불평등이 가장 심화되는 계절이다. 곧은 줄기를 가지지 못하고 바닥을 기어야 하는 덩굴성 식물들에게, 나무줄기는 더 없이 좋은 버팀목이 된다. 다래덩굴은 한번 휘감은 나무줄기를 평생 버팀목으로 사용한다.

 

'숲의 생활사 (차윤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투쟁  (0) 2009.08.27
여름 숲  (0) 2009.08.26
생명  (0) 2009.08.25
  (0) 2009.08.25
  (0) 2009.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