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사는 40대 초반의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면서 긋는 한계선을 한참 벗어나, 합리적인 지점을 넘어서기까지 일상생활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쳤다. ‘그녀는 믿을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을 일하며 과도한 연장근무를 했다. 그녀처럼 자신을 격렬하게 몰아붙이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고 노이펠드 박사는 회고한다. 그녀는 다발성경화증 이었다. 영국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근위축성병 진단을 받고 수십년을 살고 있다. 여타 신경계퇴행성질환들과 달리 ALS(근위축성 측색 경화증)환자들은 지능손상을 겪지 않으며, 근육을 조절하는 힘만 상실한다. 마이크로글리아라고 부르는 일군의 세포들은 뇌속에서 보호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 세포들이 과도하게 자극되면 파괴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노이펠드 박사는 '알렉사는 독립적으로 생각할수 없는 사람이었다' 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남편과 분리된 별개의 인간이라는 걸 가리키는 말은 할 줄 모르는 사람 이었다. 그녀는 세상을 감정적으로 느끼는 경험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들로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렉사를 그렇게 얼어붙게 만든 것은 자신이 버려질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감이었다. 이미 친부모에게 버림 받았던 그녀는, 양어머니와 결코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했다. 그녀의 첫번째 결혼은 곧바로 파탄이 났다. 그녀는 모든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성장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단 한번도 휴식이 없었다. 그녀 마음속엔 휴식할 공간이 없었다.
ALS환자들은 도움을 구하는 일을 회피하려 한다. 도움을 청하거나, 도움을 받는 일을 못하는 패턴과 부정적인 감정을 상습적으로 배척해 버리는 패턴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일하는 태도가 그들 사이에 고루 퍼져있다고 한다. ALS의심환자 판별프로토콜은 전기진단검사(EDX)부터 시작된다. EDX는 전기전도율 측정을 통해 근섬유에 작용하는 신경세포들인 운동뉴런들이 생존 가능성과 괴사부를 탐지한다. ALS환자들의 특징은 바로 좋은 성격이라고 말한 다. ALS 걸린 사람들의 삶은 한결같이 아동기에 정서적 박탈이나, 결핍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ALS환자들의 특정적인 성격은 자신을 혹독히 몰아붙이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고통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들의 이 모든 행동과 감정조절 메커니즘은 질병발생 훨씬 전에 존재한다. ALS환자들이 보여주는 눈에 띌 만큼의 친절한 태도는 자신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할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 강요하고 있는 이미지의 표현이다. 인간적인 특색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일반인들과 달리 ALS환자들은 특정한 역할에 갇혀 있다.
뉴옥양키스 1루수였던 루 게릭의 전기작가에 의하면 게릭은‘ 충직한 아들, 충직한 선수, 충직한 시민, 충직한 피고용인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강요한 역할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게릭은 전형적인 마마보이였다고 묘사한다. 스티븐 호킹은 스물한살에 진단을 받았다. 호킹은 어떤 날은 심하게 낙상하거나 어딘가에 심하게 부닺쳐 머리에 붕대를 칭칭감고 학과사무실에 나타나기도 했다. ALS 환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유일한 특징이 바로 에너지가 넘쳐나던 그들의 과거다. 거의 모든 경우 이 병의 희생자들은 전형적인 과잉성취주의자들이거나 만성적인 일중독자들이다. 질병은 종종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하고 그때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재평가하게 된다. 치밀어 오르는 슬픔이나 화를 받아주고, 위로해 주고, 자제시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아이에게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일이 전혀 위안이 되지 못한다. 그 경우 모든 감정이 강하게 억압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자신의 겉모습을 진정한 자아로 알고 있다해도, 사람좋은 성격이라는 그 겉모습의 이면에는 분노와 고뇌가 잠복해 있다. 45세 나이에 알코올성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난 수의 친아버지는 톰 자신이 이동기로부터 과잉 억압된 감정의 희생자였다. 그는 평상 남들에게 휘둘리기만 하며 살던 자존감 낮은 사람이었다.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수 로드리게스의 대인관계 내력은 그녀가 사실은 자신의 삶을 결코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녀는 단 한번도 진정한 자아에 다가가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역들만 수행하며 살았다. 캐나다 의회 입회하에 안락사가 시행된 수 로드리게스가 법정과 대중을 향해 던진 ‘누가 제 삶의 주인입니까?’ 라는 고뇌에 찬 질문은 그녀의 인생을 요약한 것이다.
젊은시절 호킹은 대부분의 환자들은 가질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재능을 사용할수 있는 사람이었다. 몸은 파괴 시키지만 지능은 손상 시키지 않는 ALS라는 병의 특성을 감안할 때, 추상적인 사색가야 말로 정신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인 입장에 처한 사람이다. 어린시절의 호킹은 아버지의 좌절된 야망을 대신 짊어지도록 선택된 아들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교육적, 사회적 목표를 아들이 성취하도록 요구했다. 호킹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의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원과 실질적인 보살핌이 있었다. 전처인 제인은 그에게 혼산하며 살았다. 그녀는 스티븐의 간호인, 어머니, 수호천사 역할을 했다. 제인이 자기 포기적인 태도를 받아들이고, 아내에게서 남편에게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에너지 흐름을 받아들이던 동안 그들의 관계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제인은 늘 도움의 손길이 기대되고, 그것이 당연시 되고 그것이 부재할 때만 존재가 부각되고, 언제든 이용할수 있고, 제대로 할 말도 못하고, 고분고분 하기만 한 엄마, 보모 같은 인물이엇다. 그녀는 점점 더 독립적인 별개의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사라진다고 느꼈다. 호킹은 여전히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며, 독립을 갈구하는 제인의 이런 분투에 경멸감과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같은 분노로 응대했다.
심리적 바운더리를 지켜주는 자기주장은 필요하면 공격적으로 보일수 있고, 또 그렇게 보여야만 한다. 호킹의 지적인 자기과시는 그런 공격성이 모습을 드러내는 근거가 되었으며, 육체적 쇠약이 시작된 이후에는 더 그랬다. 제인에 의하면 호킹 가족은 ‘감정을 드러내거나 고마움을 표하는 일이 나약함을 드러내고, 자제력이 부족하다는걸 내보이면서 스스로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일이라고 여겼다...이상하게 이들 가족은 온정을 보이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제인은 남편에 대한 책임 외에도 세 아이까지 혼자서 떠맡아야 했다. ALS가 아동기의 정서적 고립과 결핍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일까? 일반적으로 그 병이 쫓기듯 몰리는삶을 사는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성격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일까? 크리스티앤 노스럽박사의 ‘여성의 신체, 여성의 지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공인 간호사이자 내 동료인 대너 존슨은 신체의 모든 양상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 루게릭병에서 회복하기 까지 했다. 그녀는 호흡곤란으로 죽을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녀는 그 시점에 적어도 죽기 전에 한 번은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체험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 거울 앞에서 몸의 다양한 부분을 사랑으로 표하기로 했다. ....그녀는 아동기 이후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인정을 받고 가치있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자신의 욕구는 희생시켜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자기희생적 봉사가 사실은 막다른 골목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노스럽 박사에 의하면 대너 존슨은 매일 같이 의식적으로 목록을 만들어 자기애를 실천하면서 그것을 통해 조금씩 몸의 각부위를 다독여준 덕분에 치유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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