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처방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개인적인 변화의 촉매로 쓰이게 되기를 희망한다. 처방은 외부에서 주어지지만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난다. 우리에게 더 가치있는 일은 우리의 내면과 신체와 정신의 작용을 통찰하는 것이다. 통찰은 진리 탐구에 의해 고무되면 변화를 촉진시킬수 있다. 메리는 작은 체구에 상냥하고, 공손한 태도를 지닌 인디언 여성이었다. 메리는 피부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이다. 모든 자가면역질환들의 공통점은 환자 자신의 면역계가 신체를 공격하여 관절과 신체 결합조직을 손상시키고, 더 나아가 눈, 신경, 피부, 내장, 간, 뇌 등 거의 모든 신체 기관들을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피부경화증의 경우 면역계의 자살 공격으로 식도, 심장, 그리고 폐와 기타 조직들이 경화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대부분의 경우 유전적 형질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여겨진다. 메리의 개인적 경험중에서 특정한 경험이 그녀의 발병에 기여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누구도 발병 이전에 그녀의 심리상태가 어땠는지 혹은 그것이 병의 진행과정이나 최종 결과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메리는 어린시절 양부모집에서 파양되어 다른 양부모집에 버려진 학대 받는 아이였다. 그녀는 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에게도 어떤 일에 관한 감정표현 방법을 배운적이 없었다. 그녀는 덧에 걸린듯 어린 시절에 강요당한 역할에 갇혀 자신이 스스로의 보살핌을 받고, 경청의 대상이 되고 관심의 대상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과 성인이 거의 다 된 자녀들 뿐이었고, 그것은 병이 심각해진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피부경화증은 이같은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그녀의 의무감에 대해, 그녀의 몸이 마침내 거부를 한 방식은 아니었을까? 나는 칼럼니스트로서 기고한 글 속에서 메리에 관해 쓰면서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을 방해 받으면 우리의 신체가 그 말을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의가 신체와 정신의 연관관계를 거부하려고 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원론이 건강과 질병에 관한 우리의 믿음 속에 침투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체를 정신으로부터 분리시켜 이해하려고 한다. 의학은 아직도 ‘관찰자의 위치가 관찰 대상 현상에 영향을 미치고 관찰 결과에도 작용한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담긴 주요한 교훈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이 더 전문화 되고 신체부위나 기관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그 부위와 기관들이 존재 하는 바탕인 인간에 대해 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전문의들이 여러해 동안 각각의 환자를 치료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질병이라는 좁은 한계를 벗어나면, 그 환자의 인생이나 경험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상태일 수 있다는사실을 발견했다.
역사상 위대한 내과의사중 한명인 캐나다 의사 윌리엄 오슬러는 류마티즘관절염을 스트레스 관련질환이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오늘날 류마티즘학은 그의 해안을 거의 무시하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스 벅의 지적처럼 현대적인 의학기술과 과학적 약리학이 등장하기 이전에 의사들은 전통적으로 플라시보효과에 의존해야 했다. 그들은 내적인 치유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개별환자에게 불어 넣어야 했다. 의사는 치료효과를 얻기 위해 환자의 말을 경청해야 했고, 그와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했고 또 자신의 직감을 믿어야 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자질들이 우리가 거의 배타적일 정도로 객관적인 치료법, 기술에 근거한 진단법, 과학적인 치료법에 의존하게 되면서 의사들이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다. 다음은 임상의학 교수 노엘 B. 허쉬필드 교수가 신문편집자에게 보낸 편지다.
‘ 정신신경면역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는,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뇌와 면역계사이의 밀접한 연관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증거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단계까지 성숙했습니다.... 개인의 감정구조와 지속적인 스트레스반응이 의학적으로 치료가 되지만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질병들 예를 들어 피부경화증, 류머티즘 질환, 염증성 장질환, 당뇨병, 다발성 경화증 등의 실질적 발병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정신신경면역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내가 배운 바로 그것은 다름아니라, 신체와 정신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하고 발달과정 동안 혹은 건강하거나 병에 걸려 사는 평생동안 발생하는 감정과 생리적 활동의 불가분한 연관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인간의 심리, 즉 정신과 그 속의 감정이라는 내용물과 신체의 신경계 사이의 밀접한 상호작용 방식을 연구하며, 나아가 인간의 심리와 신경계와 우리의 면역계가 본질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면역계는 일상 경험과 분리된 채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기말시험의 압박에 시달리는 의과대학 학생의 경우는 건강한 젊은이들에게 정상기능을 발휘하는 면역방어체계가 억압된다고 밝혀졌다. 의대생들의 미래의 건강과 행복에 더 많은 의미를 지니는 사실이 있다. 고독을 많이 느끼는 학생일수록 면역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시험이 주는 압박감은 명백하고 단기적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족시켜야 하는 강력한 압박을 받으며 인생 전체를 소비한다. 스트레스는 어떤 식으로 질병으로 바뀔수 있을까? 스트레스는 강력한 감정 자극에 대한 일련의 복잡한 물리적, 생화학적 반응이다. 생리학적으로 볼 때 감정자체는 인간의 신경계에서 나오는 전기적, 화학적, 호르몬적 방출이다. 감정은 주요 장기들의 기능과 온전한 면역방어체계와 신체의 물리적 상태를 통제하는데 도움을 주는 많은 순환성 생물학적 물질들의 작용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영향을 받는다. 감정이 억압되면 이 억압이 질병에 맞서 싸우는 신체의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킨다. 억압 - 감정을 의식에서 분리시켜 무의식영역으로 내쫓는 일이다- 은 생리적 방어체계를 교란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며,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의 경우는 몸의 방어체계가 길을 잃으면서 건강의 수호자가 아니라 건강의 파괴자가 된다.
사람들이 삶을 살면서 습관화된 방식이 질병유발의 원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다. 우리는 모두 비난받는 일은 두려워하는 반면 책임은 더 많이 지고 싶어한다. 즉 우리의 삶의 상황에 단순히 반응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제대로 인식해 반응하는 능력을 갖고 싶어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우리들중 누구라도 질병이나 죽음에 굴복했다고 비난 받아서는 안된다. 우리들중 누구라도 언제든 그런 굴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수동적인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적어진다. 만일 감정과 생리기능의 연관관계가 존재한다면 사람들에게 그 관계를 알리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서 강력한 도구를 빼앗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치유하는 일을 권장하는 것이지 비난과 수치심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수치심은 부정적인 감정중에서 가장 깊이 뿌리박힌 감정이며, 그것을 피할 수 있다면 우리가 무슨 일이라도 할 것 같은 감정이다. 많은 의사들이 최선의 노력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메리는 진단을 받은지 8년만에 피부경화증 합병증에 무릎을 꿇고 숨졌다. 아마 곁에 누군가가 믿음직스럽게 꾸준히 있었더라면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신체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바운더리을 침범해올 때 강력히 화를 내는 법을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녀의 운명이 그랬더라면 그녀는 아직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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