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법연구 목적은 자본주의 지배체계를 비판하고, 변화시키는데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법은 억압적 측면을 가질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성격도 갖는다. 이데오로기를 통한 지배는 사람들의 의식을 통해 일상적으로 지발적 동의에 의한 복종을 이끌어 낸다. 마르크스의 법이론의 법적 상부 구조는 그속에 사는 사람들이 계급및 생산 관계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이데올로기적 형태라는 점이다. 이데올로기로서 법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르크스에 의하면 생산관계의 총체는 사회의 현실적 토대를 형성하며, 이 위에 하나의 법적 또는 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고, 또 이 토대의 일정한 사회적 형태가 서로 대응한다.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식 혹은 관념이 이데올로기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의식은 인간의 사회적 실천속에 뿌리 박고 있으며, 의식이 인간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 의식을 규정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은 그들이 살고 있는 물질적 사회적 상황의 압력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란 피착취자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자신들의 지위를 오해하게 함으로써, 계급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 이라고 생각했다. 특정한 계급의 이해관계가 마치 인간의 보편적인 이해관계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에게 사회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가지도록 설득함으로써, 기존 생산관계가 잘 유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은 자기 지배를 정당화 해주는 이데올로기적 형태를 발전시켜 나간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경제적으로 주도적인 계급은 동시에 정치적, 이념적 지배계급이기도 하다.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계급은 또한, 국가도 통제한다. 어떠한 시대에도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 된다. 즉 사회의 물질적인 힘을 지배하는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정신적인 힘도 지배한다.
지배계급은 생산수단의 통제권과 국가의 통제권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신념을 형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제도들을 창출하고 유지한다. 중세에는 이러한 제도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회였다. 법의 지배원리는 피지배자와 지배자 모두 똑같이 법체계에 복종함으로, 법 그 자체가 고유의 합리성을 갖는 것으로 계급이익과 무관한 것으로 인식된다. 예컨대 스포츠에서 운동선수들이 동일한 게임의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사회생활의 규칙들의 집대성 혹은 법전 편찬은 그것이 사회생활을 더욱 확실하게 하고, 예측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엥겔스는 18세기 계몽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가졌던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라는 이상과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 사이에서 큰 괴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로마법은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과 함께 유럽 자본주의 초기 중심지로 전수되어 민법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민법은 전통적 공동체 사회에서처럼 종교적 법규에 권위의 기반을 두기보다는 합리화된 규범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관념은 그 스스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속에서 생활하는 인간이 갖는 의식의 한 요소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르크스에게서 존재와 의식의 관계, 생산관계와 법적, 정치적 상부구조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을 결정하는 관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변증법적 관계이다. 안정적인 사회에서는 생산양식과 그 생산양식의 필수요소인 사회적 관계, 그리고 계급 지배를 매개로 하여 그와 결부되어 있는 상부구조의 삼자 사이에 균형이 존재한다. 그러나 생산활동의 분야에서 점진적 변화가 발생하면, 새로운 생산력과 현존하는 생산관계 사이에 긴장이 발생한다. 이 모순은 공공연한 계급갈등으로 표현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상쟁적인 원칙들 간의 충돌로 드러나게 되며, 결국 국가나 정치적 영역에서 혁명적 투쟁으로 귀결된다. 국가는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존립조건 및 재생산 과정을 구성하는 경제적 관계의 정형을 법적 규범으로서 공인하고 ,그것을 바로 법적규범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한다. 공적으로 승인된 법규범은 법적관계 당사자의 내적 강제를 외적 강제에 의해 뒷받침 한다.
마르크스이후 마르크스주의의 법이론을 체계화한 대표자는 파슈카니스이다. 그는‘ 법의 일반이론과 마르크스주의’에서 법은 이데올로기적의 안개속에서 사회적 현실을 감추어버린다고 표현하면서, 법을 규범의 체계로 정의하는 규범적 법이론, 이른바 순수법학을 '부르주아 법이론'이라고 비판하였다. 법을 규볌의 체계라고 하는 정의를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비판하고, 법을 하나의 사회적 실재로서 파악하고자 한다. 현대의 마르크스주의 법이론에 의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법은 지배계급이 사법기구를 직접적으로 통제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유지와 전체 자본가 계급의 이해의 실현에 기여하게 되며, 결코 완전한 자율성을 갖지 못한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상품은 노동자의 구체적 노동에 의해 사용가치로서 생산된다. 즉 상품은 본래 그것을 생산한 불균등한 노동에 따라 불균등한 사용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개개인의 상품은 시장에서 다른 상품과 교환되기 위해 화폐라는 보편적 척도에 의해 교환가치로 전환됨으로써, 구체적인 인간의 욕구와 불균등한 사용가치로부터 추상된 형식적 속성을 부여 받게 된다. 상품은 원래의 본질, 즉 구체적인 인간의 욕구와 사용가치를 은폐하게 되며, 생산주체의 의지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된다.이것은 곧 상품물신주의를 말한다.
화폐가 보편적인 경제적 등가물이며 상품의 교환을 촉진하는 것처럼, 법은 보편적인 정치적 등가물 로서 명백하게 불평등한 개인들을 동등하게 보이도록 한다. 사회관계에서의 위치와 욕구 및 이해가 상이한 개인들은 법적 주체로서 추상화 됨으로써 정치적인 교환에 필요한 형식적인 평등권을 획득하게 된다. 법률 형태로서의 개개시민은 상품 형태가 실질적인 생산물의 추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 존재하는 인간의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법 혹은 법적 시민권은 경제적 교환에서 화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불평등한 개인들간의 정치적 교환을 가능하게 한다. 상품 형태가 화폐를 통해 사용가치와 구체적인 노동을 은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률형태는 의지와 권리라는 추상적 법적 개념을 통해 실제 인간의 불평등과 이해의 다양성을 은폐해 버린다. 법물신주의는 법체계들이 사회질서와 문명의 본질적 구성 부분이라고 믿는 것을 말한다. 법물신주의는 사회질서 유지에 법이 필수적이라는 믿음, 법의 지배라는 이상추구의 두 가지 생각으로 구성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법률 형태에서는 법을 만든 인간주체가 법의 객체로 화하게 됨으로써, 법이 마치 내적 체계와 논리에 의해 독립적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며, 사회의 존립 자체가 거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즉 법이 사회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사회질서가 법의 산물인 것처럼 간주된다. 마르크스가 법의 본질을 탐구는 것도 자본주의 사회의 정당화 이데올로기인 법의 지배를 비판 해체하기 위해서이다. 마르크스에게서 법의 내용은 사회적 관계의 본질의 표현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국가와 마찬가지로 사유재산과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던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법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씨족 혹은 부족사회는 공동생산, 공동소비하는 사회였을뿐 아니라, 씨족 혹은 부족의 관습이 집단의 공동의 이해를 표현하였고 사회관계를 규율하였다. 관습은 특별한 집행기관의 강제력에 의해 힘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습관과 전통, 씨족집단 성원의 도덕적, 종교적 견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에 비해 근대 법체계는 관습적 규범이 아닌 성문법으로 형식화 되고, 그 해석과 집행을 전담할 사법기관과 전문집단을 구비하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반영이라고 보았다.
'법사회학 (김명숙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형식주의에 대한 비판과 극복 (이상수)2 (0) | 2016.03.11 |
---|---|
법형식주의에 대한 비판과 극복 (이상수)1 (0) | 2016.03.09 |
칼 마르크스: 법의 사회이론 (안진) 1 (0) | 2016.03.07 |
막스 베버의 법사회학: (김명숙)2 (0) | 2016.03.03 |
막스 베버의 법사회학(김명숙)1 (0) | 2016.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