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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우리 모두의 이야기(패멀라 D.

영원한 망각: 새로운 경계를 넘어서 1

20세기 중반이다. 한때 지구의 변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포유류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구의 부를 착취한다. 가장 머나먼 구석까지 개척한다.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세대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스톤헨지에서 마천루까지 놀라운 공학기술로 문제를 해결해 왔다. 우리는 새로운 에너지원과 소통방법을 찾아왔다. 처음으로 인간은 종種 자체를 변환시킬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되는데, 이는 자칫하면 종 전체를 몰살시킬 수도 있다4000년전 인류가 유전자를 변형한 최초의 작물이 옥수수였다. 중앙아메리카 태생의 야생풀을 먹을수 있는 곡식으로 품종을 바꾸었던 것이다. 20세기중반 옥수수는 10억인구의 주식이 되었다. 사냥꾼겸 채집인은 소규모 집단으로 모여 살았다. 농사의 발전으로 마을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도시가 형성되었다. 도시는 증기기관의 개발로 상인들이 먹을거리를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운송할수 있게 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1936년 아이오와 로즈웰 가스트는 농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전세계이 농업을 바꾸게 될 혁신적인 농산물을 파는 회사를 설립했다. 가스트는 이종교배 옥수수를 한 봉지 5달러에 판다. 가스트는 과학자가 아니었지만, 농학자 헨리 A. 윌리스가 개발한 새로운 아이디어의 가치를 간파했다.여러해 동안 윌리스의 이종교배 종자가 수확량도 많고, 줄기도 튼튼하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가스트는 윌리스에게 이 농산물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달라고 요청했다. 가스트의 종자는 수확량이 더 많은 데다가 가뭄에도 끄떡없음을 증명했다. 미국의 곡창지대인 콘벨트의 농토 절반 이상에 10년도 안되어 윌리스와 가스트의 다수확 품종의 옥수수가 뿌려졌다. 1940년대 가스트는 이종교배 옥수수를 들여올 때의 열정으로 질소비료를 팔기 시작했다. 작물 돌려짓기의 옛방식이 농작물 생산을 감소시킨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종교배 종자와 인공비료를 비롯한 농업혁신을 활용하면서 농부들은 인간 역사상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길를 수 있는 식량의 양에 대한 자연적 한계를 없애 버린다. 1940년대 시작된 미국 개발도상국 원조계획은 화학비료와 살충제, 새로운 다품종 수확의 사용을 권장했다. 수확량이 증가하면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기아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쟁은 인간에게 자연스레 다가온다. 6000여년동안 1만4000번이상 전쟁을 치렀고, 적어도 35억명이 희생 되었다. 우리는 땅과 금, 소금, 대구 그리고 왕위계승 문제로 전쟁을 벌였다. 영원한 원리 때문에 사소한 모욕 때문에 충돌했다. 우리는 육지에서 바다에서 그리고 최근 100년동안 하늘에서 싸웠다. 인간은 태초 이래로 무기경쟁을 계속했고, 창의성을 활용해 새로운 무기와 전쟁방법을 개발했다. 우리 조상은 화살발사기, 그리고 날카로운 물질을 더 단단하고 더 빨리 던질수 있는 기구를 발명했다. 화약을 밀어내는 발사무기를 발명해 갑옷을 입은 기사를 저지하기도 했다. 20세기에 우리는 하늘에서 공격하는 법을 배웠고, 비행기와 폭탄의 조합은 궁극의 무기로 변모했다. 비행기는 1차세계대전때 처음으로 무기로 사용되었다. 전투기는 순식간에 폭격기로 변모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미래는 하늘의 장악에 달렸음이 명료해졌다.

 

1920년대, 1930년대에 서구의 정부들은 장거리 폭격기를 개발하기 시작하는데 전략적 폭격으로 적의 빠른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배운 근대전쟁의 교훈은 승리를 위해서는 전장에서 뿐만 아니라, 전장 밖에서도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적의 전선너머로 수백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는 장거리 폭격기가 있으면 주요한 전쟁 물자의 생산을 저지할 수 있다. 민간의 사기를 걲는 것은 민간인이 일하는 공장을 쓸어버리는 만큼이나 치명적이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할 당시 전쟁은 6년을 넘어서면서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미국에서 일본과 태평양까지 확전되었고,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미 5000만명이 사망했다. 파괴적인 신기술이 속속개발 되고, 전장이 전세계로 확대 되면서 2차세계대전은 인간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쟁으로 돌변했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계획 , 코드명 ‘맨해튼 프로젝트’는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미 육군공병대 소속의 레슬리 R. 그로브스 소장이 지휘했다.

 

독일 5월에 항복했고, 이제 세계 시선은 태평양전쟁으로 집중되었다. 이 전쟁은 이미 연합군의 승리로 판가름 되었다. 항복이라는 최종의 불명예만은 피하기로 결심한 일본 내각은 결사항전을 선언했다. 일본인들은 열다섯살에서 열여섯살 소년 전원과 함께 열일곱살에서 마흔살까지의 여성전원을 민병대로 소집해 미군의 공습에 대비했다. 최초의 원자폭탄실험이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고, 트루먼 대통령은 육군의 준비가 끝나는 대로 이른 시일안에 일본의 도시에 투하할 것을 명령했다. 히로시마는 일본에서 일곱번째로 큰 도시이자 일본함대와 물자보급에 중요한 항만이었다. 1945년 8월6일 이른 아침 B-29한대가 도시상공에 나타나자 공습경계경보가 울렸다. 20분후에 그 비행기가 사라졌고, 공습 사이랜이 다시 울려 상황상료를 알렸다. B-29세대가 다시 시야에 들어왔을 때 히로시마 시민들은 공포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B-29는 최신식 전쟁무기이다. 이전의 어느 비행기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날수 있도록 설계된 전략폭격기 이다. 지구에서 가장 파괴력이 큰 4톤짜리 원자폭탄, 코드명 리틀보이가 그것이다. 리틀보이는 자몽 하나 크기만한 우라늄 구체를 탑제하고 있는데, 이는 도시 전체를 사라지게 하기에 충분한 양이다. 폭탄이 투하 되고 43초안에 폭탄안의 고성능 폭약이 우라늄 탄환을 초속 305미터 속도로 폭탄의 반대쪽에 있는 우라늄 과녁안으로 발사할 것이다. 탄환과 과녁이 함께 원자연쇄반응을 촉발한다.

 

2초안에 폭탄은 히로시마 상공 580미터에서 폭발하면서 TNT 1만 6000톤에 맞먹는 폭발을 일으킨다. 폭발 한가운데 온도는 태양표면보다 1만배 뜨겁다. 제곱미터당 약22톤의 기압이 폭발 중심점에서 퍼지면서 20킬로미터 밖의 건물들까지 완전히 파괴한다. 수만명이 한순간에 죽었다. 폭탄 바로 아래있던 모든 것이 폭발과 함께 증기처럼 사라졌고, 그을린 사람의 형체를 겨우 알아볼 정도였고, 돌과 도로도 더는 없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800미터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작은 숯덩어리를 쪼그라들었다. 1600미터 거리에 있던 열명중 아홉명이 죽었다, 폭발 자체가 가져온 파괴는 공포의 시작일 뿐이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사람들을 계속 죽였다. 불덩어리가 내품는 방사능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자들이 예측한 범위를 넘어서 퍼졌고,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오염시켰다.죽음의 재라고 알려진 방사성 낙진은 희생자들에게서 새롭게 혈구를 생성하는 능력을 앗아버렸다. 전후 10년 동안 해마다 수천명이 방사능오염으로 사망했다. 인간을 멸종시키고, 지구를 파괴할 위력을 가진 원자폭탄의 발명은 인류에게 중대한 의미가 있었다. 당연히 강렬한 공포가 찾아왔고 그것의 사용 윤리에 대한 토론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