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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우리 모두의 이야기(패멀라 D.

황무지: 자원과 지식을 둘러싼 투쟁2

천문학자들은 하늘의 행성과 달의 운행을 수학으로 정확하게 계산해냈다. 갈릴레이, 요하네스 케플러, 아이작 뉴턴과 그 밖의 여러 과학자가 수학의 법칙을 운동에 적용하여 새로운 역학이론을 세웠다. 의사들은 인체구조를 탐구했다. 생물학자들은 식물과 동물을 분류하는 새로운 체계를 세웠다. 무엇보다 자연철학자들은 다른 사람들도 반복하고 입증할 수 있는 방식에 따라 실험을 수행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근대과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마법과 종교, 과학이 구분은 절대로 명확하지 않다. 뉴턴도 연금술과 성경을 해석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성경과 고대문헌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직접 관찰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과학적 방법으로 대체되었다. 지구에서 가장 흔한 원소인 규소를 유리로 바꿈으로써 인간은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을 열었다. 실리콘 화합물인 이산화규소를 녹여서 만든 유리는 독특한 물질이다. 흑요석은 화산의 강렬한 열이 지구 깊숙한 곳에 있는 석영을 녹이면서 발생한 천연유리이다. 고대 유리제조공은 탄산나트륨을 첨가해 모래와 산화칼슘(석회석)의 융해온도를 낮추어 유리가 물속에서 녹지 않게 했다.  수세기 동안 장인들은 유리로 사치품들을 만들었다. 10세기의 아랍의 수학자 알하젠은 물과 유리를 통과한 빛이 굴절되면서 어떻게 이미지를 확대 하는지를 연구했다.

 

14세기말에 한 이탈리아인이 이슬람의 광학이론을 유리 제작에 적용해 최초의 안경을 만들었다. 렌즈가 망원경과 현미경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기까지 또 200년이 걸렸다.  1608년 네덜란드 정부는 특허를 등록하여 30년동안 렌즈를 튜브안에 집어넣어 룩 글라스라는 이름을 붙인 발명품에 대한 독점권을 갖게 되었다. 갈릴레이는 자신이 망원경을 하늘로 돌렸다. 50년후에 이탈리아의 외과의사 마르첼로 말피기가 자신의 현미경을 더 작은 것들에 들이댔다. 망원경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사용해 갈릴레이는 무한히 넓은 우주를 올려다 보았다.  말피기는 망원경의 동생인 현미경을 사용하여 무한히 작은 것들을 내려다 보았다. 17세기말 선박유럽을 수출, 수입, 재수출이라는 복잡한 패턴으로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와 이어주는 세계경제의 생명줄이었다. 영국은 그 줄 가운데 있었고,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교역 액수가 8억달러에 이르렀다. 영국상인들은 인도에서 향신료와 차를 가져왔고, 뉴잉글랜드에서 목재와 모피를, 카리브해에서 설탕과 담배를 런던항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옷감과 금속제품을 가져가고, 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을 위해 공산품과 맥주를 보내고, 인도와 중국에 은을 수송했다.

 

한때 부자들만 접할 수 있던 사치품을 이제 새로운 중산층도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선원들과 배들은 바다에서 자주 길을 잃었다. 실수는 돈과 목숨을 요구했다. 존 플램스티드라는 남자가 해결책이 있다고 주장했다. 더 정확한 별자리표가 있으면, 항해사들이 바다에서 배의 경도를 찾을수 있다는 것이다. 플램스티드의 주장을 받아들여 찰스2세가 1675년 그리니치에 왕립천문대를 세우고 플렘스티드를 왕립 천문학자로 지명했고, 항해술에 도움이 되는 기준 지점의 경도를 찾을 수 있게 하고자, 천문도와 항성 위치를 바로잡도록 했다. 1689년 가을 플램스티드는 별의 정확한 지도를 만들게 해줄 기구를 공개했다. 17세기의 허블 우주망원경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을 그는 '벽 아크mural arc'라고 불렀다. 매일 밤 저 멀리 또 있는 별들은 지구가 궤도를 돌면서 뜨고 지는 것처럼 보인다. 수천년동안 인간은 별과 항성을 연구했는데, 하늘에 대한 지식이 우리의 배와 운명이 갈곳을 안내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지날 때 방향을 찾는 데에 별을 사용해 했다. 오늘날 인간은 별이 닿을 수 없을 만큼,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안다. 별은 수소와 헬륨으로 불타오르는 지옥이고 지구보다 수백배나 크다. 우리 은하계의 별만 해도 2000억개가 넘는다. 태양 다음으로 지구에서 가까운 별이 4.2광년, 곧 약 40조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1750년 천둥과 번개 같은 자연현상은 분노한 신이 일으킨다는 생각이 일반화 되어 있었다. 이것이 거슬리던 시민과 학자 벤저민 프랭클린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번개가 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증명하고자 실험계획서를 발간했다. 프랭클린은 당시 7년간 전기실험을 했고, 자연에서 가장 신비롭고 치명적인 위력을 지닌 번개가 구름에서 방전된 전기의 섬광일뿐이라고 확신했다. 건물 꼭대기에 붙인 날카로운 쇠막대기,  피뢰침이 번개를 잡아서 부착된 선을 통해 흐르는 방향을 땅으로 바꾸게 한다.  260년 동안 설계에 큰 변화가 없는 이 발명품은 여전히 전 세계의 건물을 보호하고 있다. 에버니저 머지트는 뉴잉글랜드의 풍부한 목재로 부를 일군 식민지 이주민이었다. 뉴일글랜드 전역에서 나무꾼과 목재상, 선박 제작자들이 초록 황금, 곧 목재를 나무에 굶주린 영국인들에게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영국은 해군의 우위에 이바지한 목재자원을 독점하려고 했다. 17세기말에 왕실의 허가 없이는 지름 60센티미터가 넘는 백송의 벌목이 금지되었다. 머지트 무리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영국 법률을 거부하는 최초의 반란을 일으켰다.

 

보안관 벤저민 화이팅이 제재소 주인들의 저항을 주동한 에버니즈 머지트를 체포하라고 명령을 받으면서 소나무 폭동이 촉발되었다. 소나무 폭동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 대한 대영제국의 지배를 거부한 최초의 반란으로 숲에서 벌어진 보스턴 차사건이리고 할 수 있다. 바로 20개월 후에 보스턴에서 새로운 법률에 저항해 100만달러어치의 영국 차를 버리면서 전 세계의 민주주의 확대에 영향을 끼친 혁명이 한 걸음이 더 가까이 온다. 역사내내 인간은 모피와 소금, 금, 어장, 목초지, 유전을 비롯한 세계의 한정된 천연자원을 소비하고, 장악할 권리를 차지하려고 서로 맹렬히 싸웠다. 오늘날에는 이제 다가올 거대한 갈등이 마실물과 경작할 토지처럼 인간의 생필품을 두고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동안 인류는 야생에서 더는 구할 없는 것들을 합성하는 경쟁을 벌였다. 사냥하고, 낚시하고, 캐내고, 기를 수 없다면 인간은 만들 것이다. 아니면 남은 것을 두고 죽을 때까지 싸우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