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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우리 모두의 이야기(패멀라 D.

황무지: 자원과 지식을 둘러싼 투쟁1

최초의 원시인이 새로운 땅을 찾아서 아프리카 지구대 바깥으로 이주하는 순간부터 최근의 우주 비행까지 인간은 항상 새로운 한계에 도전했다.  인간은 활용 할만한 새로운 자원과 지식을 구하고자 자신의 한계를 밀고 나갔다. 마냥 사냥과 실증주의의 발흥, 절대왕권이 장악한 유럽국가들과 정치철학의 출범으로 혁명으로 이어진다. 소수의 극부자와 다수의극빈자 시대가 온다. 부의 약속에 이끌려 에스파냐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의 식민지인들은 신세계의 광활한 땅이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만든 이유는 모피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검은 담비모피 때문이다. 신세계로부터 금과 은이 흘러들고, 아시아와 교역량이 늘면서 유럽은 번영의 시기를 맞이했다. 더 많은 사람이 후추와 차, 튤립, 그리고 모피에 탐닉했다. 한때 귀족과 최고의 부자만이 소유하던 것이 새로운 부 덕분에 부유한 상인, 중산층도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서유럽과 러시아에서 모피가 귀해졌기에 모피,곧 '부드러운 금'의 사냥은 유럽인들을 시베리아 툰드라지역과 아메리카대륙의 처녀림을 탐사하고, 정복하도록 이끌면서, 세계의 양대 절대강자 미국과 러시아가 형성되는 실마리를 마련한다.

 

러시아인이 1590년대에 시베리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 황야라곤 없었다. 사슴을 키우는 유목민, 이를테면 퉁구스족, 야쿠트족, 추크치족 등의 부족들이 시베리아 침엽수림지대에 살고 있었다. 강과 태평양 해안가를 따라 물고기를 잡는 반유목민들이 거주했다. 빙하시대에 베링해를 건너서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인 사람들의 후손으로서 이들은 엘크, 사슴, 산양, 순록을 사냥하고, 여름에는 시베리아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다. 러시아 무역상들이 시베리아에 들어와서는 사냥한 모피와 유목부족 방목지들을 약탈했다. 러시아인들이 털 있는 동물들만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을 때, 시베리아 부족들은 자신들이 사냥하는 동물에 대해 경외심을 품고 대했다. 중앙정치조직이 없고, 무기라야 화살과 창이 전부인 시베리아 부족들은 총을 가진 러시아 카자흐인과 겨룰 상대가 되지 못했다잠자는 땅 시베리아를 맨 마지막에 점령하면서 러시아는 나라의 규모가 네배나 커졌다. 모피산업은 표트르 대제가 아시아에 발 하나를 올렸을 뿐, 산간벽지였던 러시아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변모시키는데 자금을 댔다. 모피를 서구식 군대의 위용을 위해 무기를 갖추고, 스웨덴과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전쟁을 벌이고 새로운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세웠다.서유럽인들은 시베리아지구 반대편, 북아메리카 숲속에서 모피를 사냥하고 거래했다. 러시아의 모피무역이 최상급 모피에 대한 열망에 따라 형성되었다면, 북아메리카의 모피무역은 모자패션에 기원했다. 18세기 중엽 모피무역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산업이었다. 15세기말부터 영국의 어부들은 부업에서 북서대서양 어장에서 나는 대구를 뉴펀들랜드에서 모피로 교환했다.

 

프랑스인들은 1530년대 처음으로 세인트로렌스강에서 모피교역을 했다. 대서양 연안의 영국 식민지와 달리 지금의 캐나다인 뉴프랑스와 루지애나 지역을 아우르는 광활한 프랑스령은 인구밀도가 낮았다. 프랑스 식민지에 정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냥꾼이거나 선교사였다. 모피거래는 1763년 영국인들이 프랑스에서 캐나다를 빼앗아오고 나서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북아메리카의 탐험과 확장을 부추겼다. 비버털가죽과 들소가죽을 찾아서 서부로 들어닥친 사냥꾼들은 로키산맥을 넘어 미주리강, 엘로스톤강, 플랫강이 흐르는 평원지대와 산길을 개척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메리카 서부에서는 농업과 광산업이 모피무역을 밀어냈다. 

 

1890년 무렵 정착민이 증가하고, 비버와 버팔로 같은 털 달린 동물이 사실상 멸종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서쪽으로 확장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보호구역으로 몰아 넣었다. 러시아인들이 광업과 벌목, 감옥을 시베리아로 들어오면서 유목민들의 땅을 빼앗을 때와 비슷한 과정이 일어났다. 1602년 에스파냐가 처음으로 신세계에 정착한지 100년 지나서 영국인 선장 바솔로뮤 고스널드는 뉴잉글랜드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고스널드는 1606년 버지니아주 제임스 타운에 정착민들을 실어 나르는 배중 하나의 부선장으로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북아메리카에서 보물을 찾고 싶었다. 마침내 그들이 찾은 것은 천연자원으로 터져나갈 듯한 대륙이었다. 거기에는 처녀림과 풍부한 모피 넘치는 사냥감, 풍부한 대구 떼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식물이 있었다. 이후 100년 동안 수천명의 유럽인이 제임스타운 정착민의 뒤를 따랐다. 부를 쫓는 사냥꾼과 종교 망명자,하인, 범죄자들, 그들은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마을을 세우고, 산업을 일구었다. 18세기 중반에는 영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가 번성했다. 인구가 200만명을 헤아릴 정도로 식민지는 대만원이었다. 영국의 학장을 저지하려고 프랑스인들은 국경을 따라 연달아 요새를 세웠고, 유럽인들은 북아메리카에서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프렌치-인디언 전쟁이 1763년에 끝났고, 영국인이 북아메리카에서 지배력을 강화했다.

 

사람들은 언젠가 자기 주변의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과학과 종교, 마법 모두 동일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무엇이 페스트, 홍역, 감기를 일으키는 걸까? 그 대답을 구하고자 인간은 제물일 바치거나 신들에게 아니면 유일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세상의 원리를 규명하려고 설계한 물리실험에서 답을 찾았다. 1570년과 1680년 사이에 어림잡아 11만명이 유럽에서 마녀 등으로 몰려 재판을 받았고, 4만-6만명이 처형 되었다. 그 당시 흉흉한 사건들은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갑자기 아프기도 하고 죽기도 했다. 곡식은 흉작이고 동물은 젖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듯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초자연적인 이유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믿는 것은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