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칼왕 주앙2세에게 거절당한 콜럼버스는 에스파냐로 돌아섰다. 그는 1486년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에게 처음으로 탐험계획을 제안했다. 에스파냐는 5년째 그라나다와 치열하게 대치하던 중이라서 탐험대에 내줄 자원이 없었다. 1492년 무어인의 항복을 받아낸 이사벨여왕은 콜럼버스의 탐험을 후원 하기로 했다. 에스파냐에 거주하는 부자들과 제노바 상인들도 돈을 댔다. 1492년 콜럽버스가 세척의 유명한 니냐호와 핀타호, 산타마리아호를 이끌고 항해를 시작했다. 콜럼버스는 나흘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70일이 걸렸다. 콜럼버스는 바하만 제도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도 일본이라고 생각했다. 콜럼버스는 섬의 원주민들에게 평화적인 태도를 보였고, 타이노족도 똑같이 응대했다. 콜럼버스의 목적은 금을 찾는 것이지 정복이 아니었다. 콜럼버스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치명적인 무언가를 남겼음을 미처알지 못했다. 바로 천연두였다.
인간의 역사를 바꾼 가장 중대한 인자 몇몇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미생물이었다. 인플루엔자와 홍역, 황열, 천연두 같은 전염병균은 고대 중앙아시아인이 수천년전에 가축화 한 동물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인은 수세기 동안 동물과 함께하는 사이에 이러한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면역력을 조금씩 키워갔다. 반면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가축이 없었으니 질병에 노출될 일도 없었다. 유럽인들이 데려온 질병들에 원주민 수백만몀이 죽었다. 에르난 코르테스와 선원들이 자신도 모르게 천연두에 걸린 에스파냐 병사의 시체라는 시한폭탄을 남겨 두었다. 천연두는 멕시코 전역으로 확산 되었고 결국 에스파니아인이 잉카제국을 쓰러뜨리는 데 지대하게 공헌했다. 한 세기만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90%가 유럽인과의 1차접촉 때문에 몰살되었다.
바하마제도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원숭이, 앵무새, 칠리고추, 타이노족 10명 금덩어리 몇 개의 기념품을 싣고 에스파냐로 돌아왔다. 콜럼버스는 1439년과 1504년 사이에 아메리카 대륙 탐험을 세차례 더했다. 여전히 콜럼버스는 자기가 찾은 항로가 아시아로 가는 길이 아님을 깨닫지 못했다. 그영예는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차지했다. 아즈텍인은 13세기초에 멕시코 계곡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한 곳에서 10년이나 20년쯤 머물면서 농사를 위해 땅을 개간하고, 사원을 세웠다. 하지만 이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즈텍인은 새로운 도시 ‘바위 위의 선인장’이라는 뜻의 테노치티틀란(오늘날의 멕시코시티)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즈텍인은 틀라코판족, 아콜우아족과 연합해서 삼자동맹을 결성했다. 삼자동맹은 결국 아스테카 왕국이 되었다. 테노치티틀란은 거대한 산악호수 가운데 인공섬과 운하 위에 세운도시였다. 세 개의 거대한 수상 가교가 섬도시를 본토와 연결했다. 1502년 아즈텍의 새로운 군주가 왕좌에 올랐다. 몬테수마2세였다. 아즈텍인은 자신의 신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의지했다. 인간은 자신들이 지닌 가장 귀한 물질, 바로 피로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즈텍인들은 인간의 피를 제때 받지 못한 신들이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할까봐 두려웠다.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가 멕시코 동쪽해안에 상륙했다. 530명 에스파냐병사와 수백멍의 쿠바원주민과 아프리카인, 총 수십정과 대포 스무문, 말 열여섯 마리와 군용으로 훈련된 개 한무리를 끌고 왔다. 코르테스가 내륙으로 진격했고, 틀락스칼라 도시국가 전사 수천명이 호위했다. 틀락스칼라는 삼자동맹의 수중에서 벗어나 있던 지역이었다. 입성한지 일주일만에 아즈텍왕을 생포하고 왕궁에 볼모로 가뒀다. 몬테수마는 순순히 금을 가져다 주었다. 일곱달 동안 코르테스는 인질에게 끊임없이 더 많은 요구를 했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1520년 에스파냐와 틀락스칼라 연합군이 아스테카왕국의 수도를 공격했다. 수많은 사람이 전쟁으로 죽었고, 그보다 많은 사람이 굶주림이나 쳔연두로 죽었다. 1520년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소수의 정복군이 쿠스코에 도착했을 무렵 잉카제국은 성난 천연두 바이러스에 휩쓸려 이미 몰락 직전이었다. 파벌간의 대립과 빈번한 싸움을 틈타 피사로는 고작 병사 180명과 말 62필, 대포 한 대로 잉카제국의 저항을 무력화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의 진정한 정복자는 전염병이었다. 유럽인들이 들어올때 천연두와 홍역, 페스트, 콜레라, 결핵 등과 함께 들어왔고, 유럽인들이 1510년 신대륙으로 데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은 말라리아와 황열을 데려왔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문화가 전염병으로 얼마나 황폐화했는지 알려면 아즈테카 왕국과 잉카제국의 전성기 문화만이 아니라 미시시피 유역의 작은 문화들도 살펴야 한다. 데 소토는 피사로와 함께 페루에 왔고 이곳에서 냉혈한으로 이름을 떨쳤다.데 소토가 왔을 때는 미시시피엔 도시들이 빼곡이 채우고 있었지만 1682년 시외르 드 라살이라는 프랑스 탐험가가 왔을 때는 마을을 하나도 볼 수 없었다. 그 다음 100년동안 아메리카대륙의 자원이 구대륙으로 흘러들었다. 에스파냐로 쏟아져 들어온 금과 은은 유라시아로 되돌아가 인도반도와의 무역이 늘어나던 중국에까지 다다랐다. 아메리카대륙의 값비싼 금속들이 유럽에 도달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식량의 보고가 유럽인의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었다. 옥수수, 고추, 토마토, 강낭콩, 초코렛과 바닐라, 특히 감자는 기적의 작물이라 불릴만하다. 묵힌 땅에도 심을 수 잇고 기존 곡식류보다 면적당 생산량이 훨씬 많았다. 1492년 인간의 역사에서 힘의 축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옮겨가는 중대한 시기였다. 대서양을 건너 콜럼버스의 항해를 시작으로 유럽인은 처음으로 아메리카와 접촉했고, 이후 수세기동안 이 대륙을 유럽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탐험이 지속되었다. 예측이 더 어려운 것은 '인류의 미래가 이러한 발견의 시대에서 비롯한 기발한 발명과 문화교류,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따라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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