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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우리 모두의 이야기(패멀라 D.

새로운 시대: 근대의 시작1

전염병이 할퀴고 간 유럽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였다. 이탈리아인과 포르푸칼인은 비단과 향신료를 찾아 아프리카의 뿔주변을 거쳐 인도양까지 항해한다. 낙타 대상들은 금과 소금을 교환하려고 사하라사막의 뜨거운 열기와 모래바람을 뚫고 육로로 여행한다. 그런데 그 길을 따라 새로운 생각도 전해진다. 힌두 수학과 그리스이 철학이 무슬림 세계의 도가니를 거쳐 재해석된다. 12세기에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생각들이 받아들여지면서 서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유럽인들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중국 명나라는 새문화를 건설하였다. 명왕조는 최초의 총포로 무장한 지도자가 건립한 나라였다. 은행이 탄생했고, 인쇄술이 발명되었다.

  

1324년 말리제국의 무사는 수도 니아니를 떠나 메카로 순례를 나섰다. 투아그레족의 길 안내를 받아 만사무사의 낙타대상은 사하라를 건너고, 왈라타의 소금 광산도시를 거쳐 북쪽 오아시스로 향해갔다. 여덟달 후에 만사무사는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했다. 순례에서 돌아오자마자 만사무사는 알달루시아의 유명 시인이자 건축가인 아부 이샤크의 설계로 팀북투에 사원을 새로 지었다. 팀북투은 학문의 도시였고 인구 4분의1이 이슬람세계 여러 곳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이었다. 서아프리카의 말리, 가나, 송가이 왕국은 황금위에 세워진 나라였다. 4세기에 걸쳐 대상인들은 금, 노예, 상아를 북아프리카의 말과 의복, 이슬람세계의 서적과 보물, 사하라사막의 소금과 교역하면서 부를 쌓았다. 베네치아는 6세기에 처음 생길 때부터 교역을 위한 도시였다. 도시의 유일한 존재기반은 배의 수준, 선원의 기술, 물건을 생산지에서 시장으로 옮겨주는 상인의 능력이었다. 유럽의 봉건영주들이 전쟁과 토지에서 수입을 얻던 시기에 베네치아의 귀족은 무역왕이었다.

 

우주로부터 수백만톤의 암석이 시속 수만킬로미터로 지구를 내리쳤다. 그 이후 수십억년에 결쳐 화산이 폭발할 때마다 금은 맨틀밖 지구표면으로 나오게 되었다. 금은 대부분 땅속 깊은 광산에서 수천명의 노동자가 허리가 휘는 작업을 해야만 추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아프리카는 노동자 대신 니제르 강이 힘든 일을 한다. 강은 기반암에서 금을 씻어내 사금이 형태로 범람원에 쌓아둔다. 생명은 지구의 원시바다에서 화학변형을 거쳐 탄생했다. 오늘날 나트륨, 칼륨, 염소가 축적된 우리의 혈액은 생명이 처음 나온 바다와 비슷하다. 인간의 햘액은 소금이 농도와 같다. 소금은 물만큼 생명에 필수적이다. 소금이 없다면 우리 몸은 음식을 소화할 수 없고, 신경충격을 전달할 수도 근육을 움직일 수도 심장을 움직일 수도 없다. 수렵채집인이었을 때 필요한 소금을 야생의 사녕감에서 섭취했다. 그러나 인류가 정착해서 식생활이 변하자 다른 것에서 소금을 얻어야 했다. 소금은 지구상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그러나 소금광업과 염류화 과정이 발전하기 전에는 채취하기 어려웠다. 소금에 대한 요구는 문화발전의 추동력이었다.

 

13세기의 베네치아는 유럽과 지중해 동쪽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종의 경첩과 같은 곳이었다. 국제무역으로 쌓은 부 덕분에 도시가 유럽에 돈을 빌려주는 은행가가 되었다. 유럽의 모든 왕이 베네치아의 상인과 은행가들에게 빚을 졌다. 14세기는 베네치아인의 위기였다. 유럽의 다른 도시처럼 전염병으로 황폐해졌다. 유럽의 전반적인 재난은 또다른 방식의 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베네치아와 경쟁하던 제노바가 작아진 시장을 놓고, 쟁탈전을 벌였다. 베네치아가 전쟁에 승리하면서 동서무역의 중심지로서 위상을 회복하였고 15세기까지 베네치아는 유럽의 시장이었다. 1355년 중국의 전염병은 몽골족을 약화시키고, 중국인에게 그들을 몰아낼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중국에 승리를 안겨준 주역은 전염병이 아니었다. 원나라를 몰아내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오래전에 수도승이 발명한 인간이 만든 천둥불이었다. 화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서양이지만 인류의 전쟁에서 처음 사용한 사람은 틀림없이 중국인이었다.

 

농민반란이 끊이지 않고 홍건적과 군벌이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사방에서 들끊었다. 도학자 초옥은 불의 무기를 연구했다. 이때 하늘의 명을 받은 천자가 바로 명의 초대황제인 주원장이었다. 새로운 혁명적인 무기가 오합지졸 도적떼의 손을 들어가면서 전쟁의 형태를 변화시키려 하고 있었다. 중국은 14세기 중엽까지 100년이상 동안 탕구트족과 금족 그리고 몽골족에 이르기까지 정복자 왕조의 시대였다. 쿠빌라이칸이 세운 원왕조는 흑사병으로 인구의 절반이 죽으면서 여기저기에서 균열이 생겼다. 농민은 폭동을 일으켰다. 지방군벌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황제의 권위는 추락했다. 주원장은 농민출신으로 어렸을 때는 구걸하는 거지였다. 굶주림을 면하려고 절에 들어갔다. 주원장이 반란군에 들어갔을 때 나이는 스물네살이었다. 2만-3만 정도의 병사를 지휘하게 된 주원장은 바로 농민출신의 능력있는 병사를 끌어들였다. 1368년 현재의 베이징인 원의 수도를 점령했다. 명나라는 이후 300년간 중국을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