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년 쇠퇴일로를 걷던 문명의 중심 로마가 서고트족과 훈족의 공격으로 최후의 일격을 받았다. 반달족이 로마를 침략했다. 우리가 암흑기라고 기억하는 시대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의 문명은 유럽에서는 암흑기로 접어들었지만, 동방에서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신도군을 이끌고 개종과 정복을 결합하여 아라비아사막 너머로 교세를 확산시켰다. 그 비용 대부분은 아라비아 금광에서 충당되었다. 한편 13세기 중세시대가 끝나기전 기사가 주축이 된 서구의 군대는 가슴에 십자가를 새기고, 무슬림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410년 서고트의 왕 알라리크는 주변의 다른 야만부족과 탈출한 노예를 동원하여, 수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로마를 공격했다. 서고트족은 전혀 훈련받지 못한 군대였다. 지저분하고 몸에서는 역한 동물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로마는 점차 몰락했다. 235년부터 284년까지 제위에 올랐던 통치자들은 무능한데다가 북쪽과 서쪽으로부터는 게르만족의 위협을 동쪽으로부터는 페르시아에서 새롭게 일어난 사산제국의 위협까지 직면하게 되었다.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어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삼은 동로마제국은 사산제국의 방어에 집중해야 했다. 서로마제국은 부패하고 무능한 행정관들과 야만족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 되었다. 로마군대는 야만족을 방어해 주었지만 황제에게 위협이 되었다. 군대를 반쯤 길든 짐승처럼 잘 먹여야 했다. 정부가 계속 유지되려면, 제때 급료를 지급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4세기 중반에는 로마군안에 게르만족 장군이 꽤 많았다. 452년 아틸라왕이 훈족을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로 밀고 들어왔다.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다시 쫓겨난 것도 로마군단 때문이 아니라 말라리아와 기근 탓이었다. 3년후 반달족의 약탈로 로마는 완전히 파괴되고 폐허가 되었다. 자유민은 야만족의 포로가 되거나, 대토지 소유자가 몸값을 치르면 농노가 되었다. 황제가 먼저 로마를 버렸다. 그리고 야만족뿐만 아니라 로마시민도 로마를 약탈했다.
금광과 은광의 발견으로 넘쳐나는 부를 어찌할줄 모르던 아라비아인들과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문명을 건설하고, 인류를 미래로 이끌어나갈 과학과 수학을 창조했다. 762년 아바스왕조의 2대 칼리프인 알-만수르는 유프라테스 강둑에 서서 새로운 수도 바그다드 건설을 지켜보았다. 바그다드는 문화적 자석이었다. 전체 문명세계의 과학자와 시인, 학자,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그다드 도서관이었다. 바그다드의 이슬람 학자들은 제국 곳곳에서 문학, 철학, 과학책을 수집했다. 8세기에서 10세기까지 아바스의 학자들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의 고전을 필사하고 번역했을뿐 아니라, 그것을 발전시켜 수학, 지리학, 천문학, 의학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아랍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이슬람종교 의식과 관련되는 천문학, 지리학, 수학이었다. 9세기 무렵 바그다드 학자들은 천문학적 관측기술로 정확하게 지구를 측정할 수 있었다. 무슬림 연금술사는 증류, 결정, 여과를 포함한 근대화학의 기초를 닦았다. 의사들은 시각의 원리를 파헤치고 눈을 해부하고, 신체내 혈액순환을 발견했고, 백내장을 제거하는 외과수술이 이미 괘 발전했다. 약의 효능을 시험하는 시약을 고안했다.
이슬람 황금시대는 새로운 국가와 도시와 학문을 창조했다. 그러나 이슬람 문예부흥의 근간에는 수천만 노예와 하인, 죄수와 피땀 어린 노고가 있었다. 그들은 중동의 아시아에서 금, 은, 구리 납을 캐내는 노역에 지공되었다. 이러한 금속은 외계의 운석이 지구에 떨어지면서 생긴 것이다. 이렇다 할 농업적 산업적 자원이 없었던 7세기 이슬람은 금을 캐고 수출하여 다른 세계와 무역했다. 750년 아부 알-아바스의 군대는 피흘리는 격전을 여러 차례 치른 끝에 우마이야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를 쓰러뜨렸다. 우마이야의 어린왕자 아브드 알-라흐만이 홀로 학살을 면했다. 아브드 왕자는 북아프리카 사막을 거쳐 오늘날 에스파냐로 도망갔다.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슬림 침략자들이 서고트 통치자를 쓰러뜨렸던 40년전에 에스파냐는 이미 이슬람 제국에 복속되었다. 720년 무렵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은 무슬림의 세계였다. 정복자들은 그 지역을 반달족의 땅이라는 뜻의 '알-안달루스'라고 이름짓고, 로마의 옛도시 코르도바를 수도로 정했다. 무슬림은 부족한 사막의 자원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고안한 기술을 반건조 기후의 이베리아반도에 적용했다. 10세기 무렵 아랍의 농업문명은 에스파냐를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비옥한 자역으로 만들었다. 아브드 알-라흐만의 후손들은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켜 바그다드에 버금가는 도시를 만들려고 했다. 도서관과 병원과 연구소를 후원했고, 왕립도서관에는 책 40만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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