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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중년을 말하다.(The Survival Papers)

중년의 위기와 치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신경증을 병이라 생각한다. 신경증은 실제로 우리에게 심리적 발달을 촉구하는 동력이나 동기로 작용한다. 신경쇠약은 인생의 의미있고 만족스러운 방식을 찾기 위한 전주곡이다. 분열된 인격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인격이 균열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붕괴되는 경험을 거쳐야만한다. 그래야만 인격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구심력과 자기를 유지하려는 건강한 욕망이 나타나 분열에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중년에 아주 빈번하게 일어난다. 현명하고 신비로운 인간의 본성은 우리로 하여금 생의 전반기를 끝내고 후반기를 준비하도록 우리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그것을 믿건 아니건 상관없이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격의 분열을 믿든 안믿든 인격이 분열되는 일은 일어난다.  만약 우리가 인격의 분열을 지금까지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기회로 받아들인다면, 인격의 분열은 그다지 불길한 사건이 아니다. 사실 이 말은 단순히 신경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신경증 환자들에게 이 말은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그 사실은 신경증 환자에게 그의 고통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창조하기 위한 고통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중년의 위기에 빠진 사람들에게 기분이나 행동이 변덕스럽게 변하는 경향이 있다. 이와 비슷한 증상은 삶의 경계선에 있는 사춘기 청소년과 갓 성년이 된 청년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증상은 아주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 중년기에 있는 대다수의 남자와 여자들은 이제까지 자신의 생활을 잘 유지해왔다. 그들은 튼튼한 직업을 가졌으며 충실히 결혼생활을 해왔고 아이들을 잘 길러왔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그들의 인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한다.  그들은 어두운 생각과 의혹과 환상 때문에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다. 그들의 외모 또한 내면을 반영하듯 황폐해진다. 그들은 에너지도 잃고 야심도 잃는다. 그들은 불안해 하며 자신이 타야만 했던 배를 놓쳤다고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불만족스러운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직업상의 문제 때문에, 다른 객관적인 상황에서 비롯된 어려움 때문에,  그들은 우울하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진짜 문제는 바로 변화에 적응할 수 없다는데 있다.

 

그들은 평소에 그랬던 대로 예상치 못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다. 때때로 그들은 자신의 갈등이 무엇인지 제대로 의식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자신의 갈등이 무엇 때문에 발생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그들은 인생의 변화에 적응해 왔지만, 이제 그들은 인생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이 앓고 있는 신경증적 고통은, 건강하고 새로운 인생에 대한 전망으로 변해야 한다. 중년위기에 나타나는 가장 뚜렷하고, 가장 의미있는 증상은 바로 갈등이다. 융은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이 너무 첨예한 갈등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그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내적갈등과 압력이 심해질수록 의식과 무의식의 활발한 소통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내적 갈등과 압력과 투쟁하는 것이 바로 개성화 과정이다. 개성화는 전체성이라는 원형적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항상 우리에게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언제나 우리가 가야할 올바른 길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내적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개성화의 목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사람들은 개성화의 과정, 道를 이루며 사는 것에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고 가치를 두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은 이렇게 말한다. 완벽하게 道를 이루겠다는 목적은 그저 이상일 따름이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道를 이루기 위한 그 자체다. 평생동안 道를 이루기 위해 작업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다.개성화 과정의 목적은 자신의 개인적 심리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말해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심리에 익숙해 지는 것이다.

 

신경증은 병적인 것, 건강하지 않는 것, 비정상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이러한 정의는 신체적 질병이 신체의 병리적인 변형으로부터 발생하며, 이러한 병리적인 변형은 꼭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는 의료모델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신체적인 병인을 찾는 의료모델에서 심리적 증후는 예를들면 두통과 비슷한 증상으로 취급된다. 이러한 의료모델에서 의사는 두통이라는 증상을 낳는 병의 원인을 찾아 그것을 제거해야만 한다. 이러한 의료 모델에 따라 우리는 우울증을 제거하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삼킨다. 그러나 융의 관점은 이러한 의료모델과는 다르다. 신경증을 통해서 과거에 우리가 자신과 반대 된다고 생각했던 인격이 우리안에서 깨어난다. 신경증과 그에 따르는 증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한계와 직면하고, 더불어 우리의 강점과 진정한 본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경증은 우리에게 자기 탐색을 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자명종과 비슷하다.

 

신경증은 진실로 자기를 치유하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심리적 시스템이 균형을 회복하려는 자기조정과정이다.그런 점에서 신경증은 꿈이 가지고 있는 기능과 다르지 않다.

 

 프로이드는 현재 앓고 있는 심리적 고통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았다. 융은 현재의 심리적 고통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어떤 사람이 극심한 갈등을 극복해 낸다면, 그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침착하고 굳건한 심성을 갖게 된다. 반대로 그가 극심한 갈등을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그는 쉽게 낳지 않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역으로 가치있고 지속적인 심성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은 커다란 갈등이나 재난을 겪어 봐야 한다. 

 

어딘가에 골몰해 있거나 병적인 신념을 갖고 있거나, 매우 극단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항상 그곳에 지나치게 많은 리비도가 투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른 곳으로 흘러야 할 리비도가 그속에 집중 되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는 그만큼 리비도가 부족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신경증은 리비도가 지나치게 투입되어 특정한 기능이 극단적으로 활성화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중년의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사실을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중년의 의기는 바로 리비도의 흐름이 막히는 것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중년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리비도가 흐르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에너지가 흐를 대상이나 방향을 정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이성에 따라 에너지가 흐를 대상이나 방향을 선택 할 수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나 이성으로 에너지의 흐름을 조정하려고 하기보다, 그 에너지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 갈 수 있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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