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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중년을 말하다.(The Survival Papers)

아니마, 아니무스

심리학적으로 '아니마'는 남자의 심혼 안에서 감정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융은 아니마를 생명의 원형이라 묘사했다. 남자가 생명력이 넘친다면 그것은 그의 심혼안에서 아니마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니마와 연결되지 않은 남자는 정서적으로 둔해지고 생기를 잃는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이러한 증상을 우울증이라고 한다. (아니마: 남성속에 있는 무의식적인 여성적인 부분)  남자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인 부분은 쉽게 우울해지고 감상적이 된다. 만약 한 남자가 매우 변덕스럽고 감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는 자신의 아니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아니마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아니마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잘 살펴야 한다. 융은 심리가 발달함에 따라 4단계의 서로 다른  아니마를 거친다고  주장한다.

 

첫번째 아니마 단계는 이브다. 철저하게 어머니상에 묶여 있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머니 상은 변함없이 양분과 안전과 사랑을 제공해 주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런 종류의 아니마를 가진 남자의 곁에는 다정히 돌봐주는 여자가 없으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다. 그리고 쉽게 자신을 돌봐주는 여자의 지배를 받는다.

 두번째 단계의 아니마는 '트로이의 헤레네'라는 역사적 인물로 의인화 된다. 이런 종류의 아니마는 대중이 쉽게 매료당하는 섹시한 여성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러한 아니마의 지배를 받는 남자는 종종 돈 주앙과 같은 난봉꾼이 된다. 그는 반복해서 성적인 모험속으로 뛰어든다. 그리나 어떤 여자를 만나도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매우 변덕스럽다는 것이고 그의 무의식속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누구도 따라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마리아다. 종교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이성들과 순수한 이성을 나눌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과 자신의 아니마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여자와 오래 지속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네번째 단계의 아니마는 소피아 이다. 소피아는 성경에서 지혜로 나타난다. 소피아는 철학적인 주제를 알고 싶어하는 욕구,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욕구로 나타난다. 이런 아니마를 가진 남성은 자연스럽게 열정적이 된다. 왜냐하면 그런 성은 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여성상은 처음에는 그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이러한 여성상은 그가 친척이나 선생님 같은 다른 여자들과 접촉함으로서 점차로 수정된다.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여성적인 측면을 잘 모르는 남자들은 자신의 이러한 측면 다시 말해 아니마를 현실에 있는 다른 여자 속에서 발견하려 한다. 현실에 있는 다른 여자에게서 자신의 아니마를 발견하려는 것은 흔히 사랑에 빠지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 세상은 우리가 보는 그대로 일 것이고, 사람들 또한 우리가 상상하는 그대로 일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배운다. 만약 내가 알던 사람이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우리는 자신의 무의식의 내용을 사람들이 아니라 물건에 투사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페티쉬(fetish)라고 부른다. 만약 누군가가 과거에 신발이나 단추에 매혹된 적이 있다면, 주위 사람들은 분명히 그를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페티쉬에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 어떤 사람이 한 물건에 열광하는 것은 그 물건이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어떤 요소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내면에 있는 남성상(아니무스:animus)은 그녀를 길러준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남자들이 어머니를 닮은 여자가 아니면 어머니와 정반대의 여자와 결혼하는 경향이 있듯이, 여자들도 자기 아버지와 심리적으로 비슷한 남자나 아버지와 심리적으로 반대인 남자와 결혼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 무의식에 대해서 자각이 없는 여자들은 자기 고집이 무척 강하다. 그런 여자들은 아니무스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부류의 여자들은 속담에 나오는 말대로 바지를 입고 자신의 가정을 지배한다. 적어도 그러려고 한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남자를 화나게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잔인하게 남자를 여성화시킨다. 여자들의 아니무스도 4단계를 거쳐 발달한다.

 

첫단계는 꿈이나 환상속에서 남근으로 나타난다. 남성의 신체적인 힘을 형상화한다.  여자에게 남자란 단순히 씨를 뿌리는 종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에게 아이를 낳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두번째 단계는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따라 계획된 행동을 할 수 있다. 이 단계의 아니무스를 가진 여성은 독립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고, 자기 자신의 일을 갖고 싶어한다. 남자의 개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위나 직업 같은 사회적 기준으로 남자를 파악한다. 이런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집 주위에 머물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보호자가 되어 줄 남편이자 아버지 같은 남자를 찾는다. 

다음 단계에서 아니무스는 로고스(logos:이성 혹은 원리)로 나타난다. 꿈속에서 이 단계의 아니무스는 교수나 성직자로 나타난다. 이러한 아니무스를 가진 여성들은 남자의 개성을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남자와 개인적인 차원에서 연인관계를 맺을 수 있다.

네번째 단계 아니무스는 간디나 마틴 루터 킹 처럼 영적인 가르침을 전달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각 발달 단계의 아니무스는 남자들에게 투사 된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자신의 아니무스상에 맞게 살아주기를 바란다. 남자들은 여자의 이러한 기대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관계에 대해서 작업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마음속에 간작한 채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시험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안으로만 삭여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터뜨려 관계를 망쳐서도 안된다. 관계에 대해 작업하면서 우리는 잠시 자신의 경험에서 물러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골칫거리를 만들어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마음 속으로 담아둠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들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마음을 숨김없이 털어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콤플렉스가 자신을 장악하도록 내버려 두는 짓이다. 관계를 잘 유지하는 비결은 자신의 콤플렉스로부터 떨어져 그것을 객관화 하고, 그것에 휘둘러지 않게 맞서는 것이다. 콤플렉스에 영향받는 두 사람이 아무리 토론해 봐야 거기에는 해답이 없다. 그것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뿐만 아니라 상황을 악화 시킬 따름이다.  서로 토론하다 관계만 더 나빠지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가 바라는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미지 대로 그가 행동해 주지 않을 때, 우리는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것은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이 흔히 겪는 일이다. 우리의 감정은 우리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감정과 다르다.  상대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 우리가 나타내는 반응은 다양하다. 경우에 따라서 우리는 맹목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격렬하게 분노하거나, 끝없이 절망하거나, 말을 잃고 침통해진다.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간에 그것은 강렬한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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