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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저항과 체념사이에

지배 관계 vs 친화 관계

사회적 지위, 위계질서 또는 동물들이 먹이를 먹는 순서는 권력과 강압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이런 위계 체계는 근본적으로 타인의 욕구와는 상관없이 희소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얻는 것과 관계가 있다. 반대로 친화적 관계는 사회적 의무, 호혜, 나무 그리고 서로의 욕구를 인정하는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 인간은 두가지 대조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 하나는 힘을 기준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타인의 필요를 인전하고 서로 희소자원을 둘러싼 경쟁을 삼가며, 친구처럼 함께 생활하는 방식이다동물의 세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불평등은 본질적으로 권력관계의 표현이며 구성원들의 서열은 희소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권력에 따라 매겨진다.

 

어떤 종의 구성원에게 최악의 경쟁자는 대체로 같은 종내의 다른 구성원들이다. 다른 종들은 같은 제화를 두고 경쟁하는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같은 종의 구성원들은 대체로 비슷한 욕구가 있으며, 비슷한 것을 원한다. 지금까지 모든 종이 직면해왔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같은 종내에서 희소자원을 둘러싼 경쟁을 조율하는 것이었다. 서열은 희소자원을 분배할 때, 그 결과를 미리 정하기 때문에 먹이나 짝을 둘러싸고 매번 싸우지 않도록 하며, 수많은 갈등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텃세도 마찬가지다. 동물들은 자기영역을 지키기 위해 영역의 경계에서 정기적으로 힘을 과시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긴 하지만, 어쨌든 텃세는 먹이, 잠자리, 짝을 둘러싸고싸워야 하는 상황을 파하게 해준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류에게도 가장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는 바로 같은 인간이다. 타인의 최고의 지지자가 되거나, 무시무시한 경쟁자가 될 가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가장 강한 사람이 가장 좋은 것을 차지한다는 원칙에 따라 필수재를 두고 경쟁할 수도 있고, 반대로 경쟁자가 아니라, 친구가 되어 함께 필수재를 공유하자고 합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마다 다르다. 즉 불평등이 심한사회 일수록 관계의 성격은 권력과 지위에 따라 결정되며, 사회적 상호작용은 점점 더 권력, 지배, 복종의 논리에 잠식된다. 엄청난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동료애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물질적 수준의 차이가 사회적 거리감을 가져오며, 사회적 관계를 어렵게 하는 우월감과 열등감을 생산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같은 계급- 출신이 다르다 해도 학력이나 직업을 통해 획득한 계급이 같은-끼리 결혼하게 된다. 불평등과 우정이 공존하기 어려운 현상은 소득불평등과 사회적관계의 질이 서로 반비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누군가와 친구가 되거나 원수가 되는데는 매우 깊은 심리적 뿌리가 있다. 사회적 의무를 호혜적으로 주고 받는 것은 사회생활의 기저에서 개인간에 사회계약으로 작용한다. 선물을 받는 것은 사회적 관계를 받아 들인다는 의미이지만, 이를 거부하는 행위는 사회적 관계를 거절하는 행위이며 어떤 사회에서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것이다. 제물은 원래 신과 선물을 교환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좋은 사냥감이나 그와 유사한 제물을 바치면서 신에게 그 보답을 구하거나 풍성한 수확에 보답 하고자 신에게 선물을 바쳤다.  비싼 선물이나 풍성한 접대를 받으면, 부채감이 생기는데 선물이나 접대를 받는 사람은 비록 주는 사람의 방식이 부정하더라도 호의를 보이지 않을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와 물질적 관계는 항상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경쟁과 협력은 물질적 관계임과 동시에 사회적 관계이다. 사회적 관계와 물질적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규정한다. 이런 증거들은 왜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회적 지배관계도 심해지며, 불평등이 약화되면 지배관계도 약해지는지를 보여준다.  무리에서 가장 힘이 센 동물이 다른 동물보다 먼저 배를 채우는 것이든, 가난한 사람들이 기아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부자들이 고가의 사치품으로 치장하는 것이든 그 함의는 같다.

 

즉 이것은 자원을 공유하거나 서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 약자는 음식이 남았을때 겨우 먹을 수 있게 되는 불평등상태를 말한다. 지배-복종체제인 원시사회에서 지배계층은 자신의 물리적 힘과 공격성에 걸맞는 존경, 두려움, 복종심을 하층계급에게 가르쳤다. 피지배 계층은 지배계층을 두려워 해야 했던 것이다. 서열은 배우자와 식량, 잠잘 수 있는 안락한 공간 등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따라서 그 자체가 자원이기도 했다. 게다가 서열이 높다는 것은 신뢰와 존경의 상징일뿐 아니라 건강한 체력, 우얼성, 바람직한 인물상의 상징이기도 했다. 

 

 토머스 홉스는 17세기에 영국내전에대해 쓰면서 필수재를 둘러싼 인간들의 경쟁을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로 보았다.  “ 만약 두 사람이 원하지만 함께 누릴수 없다면, 그들은 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 상대방을 파괴하거나 굴복시키려 할 것이다... 누군가가 나무를 심고, 씨를 뿌리고, 집을 짓고, 편한 의자를 갖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그 사람이 일한 노동의 결실뿐 아니라, 그의 삶이나 자유를 빼앗고, 박탈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약탈자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위협을 받을 것이다. ” 홉스는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주권이 존재할 때만,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 인류는 자신을 공포로부터 지켜중 공권력이 없을 때, 투쟁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투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장이다.’ 주권정부가 확립되기 이전인 자연상태는 만인은 만인의 적이며, 인생은 추잡하고 야비하며, 덧없는 것일 뿐이다. 홉스의 이같은 논리는 살린스의 저서 ‘ 석기시대의 경제학’에도 나온다.  살린스는 수렵채집사회에서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 받고 식량을 공유함으로써, 서로에게 사회적 투자를 했던 진짜 이유는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선물이 친구를 만들고, 친구가 선물을 만든다. 선물은 스스로 만들어낸 사회적 계약과도 같다.

 

사로 협력하며 상호이득을 취하거나 아니면, 서로 갈등하면서 끊임없는 공포에 시달릴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권리는 인간에게 있었다. 따라서 당시 인간들은 타인과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다른 사람과 갈등에 휘말릴 수 있다는 공포를 경찰력을 통해 예방할 수 있게된 이후에야 비로소 인간들은 공포에서 벗어나, 법률이 보장하는 개인의 배타적 권리만큼 사유재산을 축적할수 있게 되었다. 중세유럽에서 봉건귀족들은 대부분 전쟁터에서 군대를 진두지휘할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한 투사였고, 농노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덜 폭압적인 체계가 전세계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그리고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혈액응고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경향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이 지배자와 만났을때 부끄러움, 소심함, 공포를 느끼는 경향은 역사적으로 그 기원이 오래된 셈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권위주의적 계층체계는 전반적으로 완화되고, 쇠퇴했다. 모든 사회영역에서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듯하다. 경제발전으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과 결핍에서 벗어날수록 사회 관계는 분명히 온화해질 것이다. 굶주림도 과거만큼 인간을 위협하지 못하게 되었다. 인간은 타인이 다치는 것을 볼때 자신도 모르게 움찔할 만큼, 다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도덕 세계가 확장 되면서 타인과 동일시하는 이런 능력도 점점 커졌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일반적인 추세와 달리, 인간성이 어느 정도까지 진보할 수 있을지는 사회마다 조금씩 달라 보인다. 인간성의 진보는 경제성장의 수준만이 아니라, 한 사회의 소득불평등과도 연관되어 있다. 불평등이 만들어 낸 사회적 거리감이 다른 사람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심각하게 제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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