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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해야 건강하다. (리처드 윌킨슨,

건강과 불평등

소득격차를 측정하면 사회구성원들이 극빈층과 부유층으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는지,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이 소득분포 곡선의 중앙에 안정적으로 분포되어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한 사회의 하위 50%는 보통 사회 전체 소득의 20%를 벌어들이는 반면, 상위 50%는 나머지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사회의 상위 20%가 가지고 있는 소득이 하위 20%가 가지고 있는 소득보다 몇배나 큰지 측정해서 소득불평등의 정도를 가늠하기도 한다. 불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가장 흔한 측정법은 '지니계수'일 것이다. 지니계수는 모든 사람의 소득이 똑같고 완벽하게 평등한 상태인 0에서부터 한 사람이 총소득 모두를 차지하는 안벽하게 불평등한 상태 1까지 표현한다. 대부분 사회에서 지니계수는 0.3-0.4 근처에 분포한다.

 

미국의 기대수명은 전세계국가들 가운데 25위 정도이며, 선진국만 비교했을 때 미국의 기대수명이 가장 낮다. 왜 미국의 건강수준이 가장 나쁜지를 말해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바로 미국이 선진국 가운데 가장 불평등이 심하다는 점이다. 영국도 소득겨차가 증가하면서 기대수명이 급격히 추락하였다. 여러사회에서 건강과 소득 불평등의 관계를 살펴볼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부유한 국가 사이의 건강격차는 절대적인 소득수준과는 관련성이 없다는 점이다.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상대적으로 인식한다. 사회계급이나 지위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려면 이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특히 한 사회의 소득불평등은 단지 특정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취약집단의 건강만을 악화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소득불평등은 전체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소득불평등과 건강의 관계에 주목하는 이유다.

 

소득분배와 건강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미국내 지역을 분석하면 가장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연령대에서 불평등과 건강의 관계는 확실해 보이며, 특히 근로가능 연령대에서 이런 관계가 두드러진다. 흥미롭게도 건강불평등이 가장 심한 인구층도 노동이 가능한 청장년층이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미티야 센은 1977년 1인당 GNP가 3000달러 이하인 100개국의 자료를 세계은행을 통해 수집했다. 센은 공산주의 정부가 정권을 잡았던 10개국 가운데 9개국의 기대수명의 개선에서 최상위 25%에 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인당 GNP가 1000달러 미만인 20개 최빈국만을 대상으로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센의 연구에서 공산주의 국가 다음으로 성과가 좋은 집단은 ‘대만, 대한민국, 홍콘, 싱가포르처럼 고도성장을 거듭한 초기 자본국가들’이었다. 흥미롭게도 이후에 발간된 세계은행 보고서는 이들 초기자본주의 국가에서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에 임금격차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센은 소득분배나 빈곤율의 감소가 건강수준을 높이는 효과에 주목했다. 그는 스리랑카가 소득분배 없이 경제성장만으로 현재의 건강수준에 이르려면, 스리랑카의 1인당 GNP가 현재의 20배는 되어야 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1970년대 이후 서유럽에서는 건강수준이 괄목할 만큼 개선된 반면, 같은 시기 동유럽의 거의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수명이 감소했다. 1980년대 후반 이르면, 서유럽국가들의 기대수명은 어떤 동유럽 국가들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무엇이 변했기 때문일까? 동유럽에서 전체 평균수명을 떨어뜨린 요인은 비혼자들이었다.  ‘...공산사회는 부패로 말미암아 사회의 사기는 꺽여버렸다. 인민들의 특징이었던 고귀한 도덕적 가치를 침식시키고 있었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팽배했다...’라고 고르바쵸프는 1987년 연설에서 말했다. 우리는 동유럽이 위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 이유를 공공성과 사회적 자본이 쇠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유럽 가운데 1970년대부터 1980대 기간에 평균 기대수명이 꾸준히 증가했던 나라는 오직 알바니아 뿐이었다. 알바니아는 중국의 모택동주의를 추종했다.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개인별 경제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동유럽 정권들은 대중적인 저항과 파고에 부딪혀 붕괴했고, 고르바초프 개혁도 실패로 돌아갔다. 동유럽국가들은 시장경제체제로의 뼈아픈 전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에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공항은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사망률은 치솟았고, 기대수명은 급격히 떨어졌다. 급격히 심해진 소득불평등은 사회적 붕괴, 폭리의 추구와 실업률의 폭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보여준다.

 

사람들의 신뢰수준만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을 나타내는 다른 지표들도 사회적 관계의 질이 소득불평등과 건강을 잇는 변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사회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대신에 살인율을 사회적 환경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하더라도 결과는 같았다. 읠슨과 댈리는 미국 50개 주에서 '살인율이 높아지면, 다른 원인으로 인한 사망률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는 친화적 관계가 건강을 보호하며 낮은 사회적 지위는 건강에 해롭다는 것,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덜 친화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평등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는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몇 년전 세계적인 의학잡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유명한 논문이 실렸다. 뉴욕 할렘의 사망률이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방글라데시 농촌지역의 사망률보다 높았다. 할렘 주민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계급이 낮다는 사실을 깨닫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통로는 이웃과의 비교가 아니라, 다른 지역과의 비교를 통해서이다. 자신의 계급을 인식하게 되는 사회적 비교는 필연적으로 계급간의 비교일 수밖에없다.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역단위는 빈곤층과 부유층의 사회적 계층화를 반영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커야 한다. 규모가 작고 사회적으로 동질적인 인근지역 안에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으며, 사회계급 사이에 이질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사회적 지위는 그 나라 전체의 틀내에서 결정되며, 국가수준의 소득불평을 보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분열의 정도를 알 수 있다.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끼리,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끼리 모여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관찰하는 지역의 규모가 작아질수록 같은 계급의 사람들만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불평등이 심한 주에서 총소득중 하위 50%가 차지하는 소득이 18% 였고, 캐나다의 가장 평등한 주에서는 24%였다. 어떻게 해서 전체 인구 가운데 하위 50%가 가진 소득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6%정도 적거나 많다는 이유만으로 건강에 이렇게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절대소득의 격차는 건강에 충격을 주기에 너무 적은 격차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전체 인구의 하위 50%가 갖게 되는 상대소득으로 계산해 보면, 그 차이는 엄청나다. 이런 논리는 건강 불평등을 절대소득이나 생활수준이 아니라, 상대소득이나 불평등의 맥락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실제 부자의 건강은 일정수준의 소득변화로 별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반면 빈민들에게는 작은 돈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나는 빈민의 소득을 조금 끌어올리는 소득 재분배만으로 사회의 전반적인 사망률과 건강수준의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심리사회적 요인을 강조하다 보면 '빈곤의 부작용을 빈민의 사회적 관계를 개선하거나, 빈민의 건강한 심리를 회복하는 노력을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인들이 물질적 자원에 대한 직접적인 분배와 재분배를 교묘하게 피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불평등은 빈곤지역의 교육적 물리적 하부구조를 악화시킨다. 때문에 신유물론 진영에서는 불평등이 초래하는 심리적 요인보다 불평등 때문에 생기는 물질적으로 열악한 하부구조가 빈민의 건강상태를 악화시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불평등으로 인해 부촌과 빈촌이 분리되고, 이에 따른 빈곤지역의 열악한 재정구조가 건강을 악화 시킨다는 주장이 별로 설득력이 없을 때가 많다.  빈곤지역의 하부구조가 열악한 것은 틀림없지만, 불평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거주지역의 분리나 재정격차와 같은 물질적 요인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사회적 위계질서와 불평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사회적 계층화가 성장 다음으로, 한 사회의 셩격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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