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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해야 건강하다. (리처드 윌킨슨,

변화하는 생애

사회는 점차 부유해지는 데도 경제성장이 가져오는 사회적 혜택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걱정, 우울, 자살, 비만을 나타내는 사회지표들은 지난 몇세기 동안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 되었고, 그 결과 인간사회의 물질적 생활수준은 향상 되었다. 하지만 부유한 나라에서는 삶의 질과 물질적 생활수준의 관계는 그렇게 밀접하지 않다.  특히 -건강은 물질적 여건만이 아니라 심리적, 감정적 상황등 인간의 환경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표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음식과 안식처만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의 질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친구가 중요하고, 남들에게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는 것이 중요하며, 이런 경험이 훗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사회적 환경과 건강, 그리고 행복을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보게 되면  이런 주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적인 세계가 사회 구조, 사회적 지위와 계급, 그리고 불평등에 의해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부유한 국가들 가운데 건강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는 평등한 사회인 노르웨이나 스웨덴이다. 불평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건강에만 국한 되지 않고, 사회적 박탈감과 관련된 온갖 문제를 야기한다. 낮은 사회적 지위는 인간과 사회를 손상시키는데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지위 격차가 커질수록, 이에 따른 손상도 심해지는 듯하다. 물질적 환경만이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 물질적 환경이 갖는 사회적 의미,  이를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들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한 사회의 건강 수준을 이야기 할 때 물질적 기준 못지 않게 각 사회의 문화적, 역사적 특성들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미국을 비릇한 선진국조차 가장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부유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5년에서 10년, 혹은 15년이나 짧다. 사람들은 대체로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계급 격차가 이전보다 줄어들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지난 10년동안 건강수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건강 불평등은 부유층과 빈곤층,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그리고 같은 사회, 경제적 계층에서도 서로 다른 인종과 민족집단들이 얼마나다른 수준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상하수도 보급과 19세기 공중 보건운동을 통해 물리적 환경은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이제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인들도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과거에도 변화의 속도는 놀랄만큼 빨랐다. 하지만 그런 발전을 가져온 당시의 경제성장율은 지금 기준으로는 경기침체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세계 최초의 산업혁명 시기에도 연평군 경제성장율이 1%를 넘지 못했다. 오늘날에는 적어도 당시 상장율 세배 정도는 되어야 그럭저럭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의 속도는 과거의 속도와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이제 어린시절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우리의 삶이 끝나기도 전에 현실이 되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속도를 놓치지 않으려면 우리의 사고도 급진적일 필요가 있으며, 또한 더욱 긴 안목을 가지고 사고해야 한다. 현대사회의 생활수준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우리는 온수나 위생적인 하수도시설이 선조에게는 얼마나 대단한 사치 였는지를 잊고 살아간다. 이제 선진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도 세탁기, 청소기, 냉장고, TV, 비디오, 자가용까지 가지고 있다. 현대 사회는 이전세대들이 누리지 못했던 물질적 안락, 사치, 안전을 누리고 있지만 마치 지금 이 상태를 견디기 조차 힘들다는 듯이 스트레스나 생존과 같은 단어들을 자주 내뱉곤 한다.  지난 반세기만 돌이켜 보아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우울증은 일상적인 증상이 되어버렸다. 우울증만 아니라 자살율, 알코올중독, 범죄율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우리 선조들이 기적과 같은 과학기술이 엄청난 안락을 선물할 것이며, 그 결과 후손들 맘껏 누리게 것이라고 기대했을지 모른다. 현대의 첨단기술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고 동시에 고되고 지루한 육체노동에서 현대인들을 해방시켰다.  우리 선조들은 인간의 사회성을 각박하게 만드는 자원의 희소성에서 해방된다면, 부족한 자원 때문에 비열해지거나 서로 증오하는 일 따위는 사라질 것이고, 대신 아낌없는 온정과 자비가 풍요로운 세계를 사는 인간의 특성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사회는 실제로 자랑할만한 사회적 성과를 거의 거두지 못했다. 17세기 저명한 정치 사상가 토마스 홉스도 부족한 자원을 차지하고자 사람들이 경쟁하면서 사회갈등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왜 우리는 육체적으로 안락하고 오락과, 자극, 흥밋거리가 넘쳐나는 데도 이렇게 자주 불행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  한 국가의 사회적 행복지수는 국가가 부유할수록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부유한 나라들을 보면, 경제수준이 높아짐에도 행복지수는 더 증가하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기분 전환을 위해 신용카드 한도를 바닥내며 소비주의의 물결에 휩쓸리곤 한다. 더욱 염려되는 사실은 사회적, 정서적 행복을 가져다주는 대안으로 폭음이나 약물복용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의 나이, 인류의 진화,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게 되면서 우주안에서 인류의 위치도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우리 자신을 알려면,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를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