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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중년을 말하다.(The Survival Papers)

콤플렉스,페르소나

현실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현실 속에 존재하는 중요한 문제들은 오로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른 개인적인 해결책에 의해서만 풀린다. 수많은 사소한 갈등들은 이성에 따라 해결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심각한 갈등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갈등하는 것을 견뎌낼 수 있다면 이러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심혼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갈등이 해결된다고 해도 외부환경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환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진다. 태도의 변화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언제 일어나는지 예측할 수도 없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그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전혀 낯선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면 갈등 상태에 있던 에너지가 풀려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심혼, 온 정신은 Psyche를 번역한 말이다. 심리학에서 프시케는 인간의 의식적인 마음과 무의식적인 마음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초월적인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마치 산꼭대기에 서서 산아래 폭풍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만약 우리가 자신에 대해 객관적일 수 있다면,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은 채 자신이 놓인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초월적인 관점을 갖는다면, 우리는 무슨 일에도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상반되는 두 세력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긴장을 견디기 위해서 인내와 더불어 강한 자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긴장을 피하기 위해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어느 한쪽을 선택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흔히들 콤플렉스라는 말을 사용한다. 콤플렉스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콤플렉스들은 인격을 구성하는 입자이기 때문이다마치 분자나 원자 같이 보이지 않는 입자들이 물질 세계를 구성하듯 말이다때문에 우리는 콤플렉스를 제거할 수 없다우리가 콤플렉스를 대하는 최선의 방법은 콤플렉스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식하고 콤플렉스가 우리의 의식적인 마음에 간섭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우리가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면 할수록 점점 더 콤플렉스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콤플렉스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점점 더 작아질 수는 있다나는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콤플렉스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 멋대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나는 내 자신을 내 마음대로 조정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콤플렉스가 작동하고 있을 때는 나의 의지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만약 우리가 격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그 감정이 사랑이건 증오건 슬픔이건 상관 없이 그것은 우리 안에서 콤플렉스가 작동했다는 뜻이다. 우리가 격렬한 감정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없다. 콤플렉스가 작동할 때 우리는 스스로의 진정한 감정을 모르게 된다. 결국 우리는 콤플렉스가 시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그 결과 나중에 우리는 왜 그때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 놀라는 경우가 생긴다.

 

만악 콤플렉스가 없다면 인생은 매우 지루할 것이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콤플렉스는 우리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든다. 콤플렉스는 우리에게 건전한 판단과 합당한 감정을 느끼게 하기보다, 우리 마음에 커다란 공백을 만든다. 그리고 그 공백을  분노, 짜증, 자기연민, 불안, 공포, 죄의식으로 채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무의식의 내용을 모를 때, 무의식은 이러저러한 콤플렉스를 통해 우리를 압도하고 조정한다. 신화 속의 테세우스처럼 실뭉치를 따라 미로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과연 그가 그런 고된 작업을 하려고 할까? 정말 그 힘든 작업을 마칠 수 있을까?

 

페르소나라는 단어는 원래 연극 할 때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말한다. 페르소나는 배우가 연기하는 역할을 말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 위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막 구실을 한다. 아주 친한 친구들만이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안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내가 그들에게 보여주기로 작정한 측면만 알고 있을 뿐이다. 사실상 외부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없다면, 나는 너무 쉽게 상처를 받게 된다그러나 우리는 가면을

써서는 안될 상황에서는 페르소나를 벗을 줄도 알아야 한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특히 그렇다누구나 자신이 가진 페르소나는 무척이나 독특하고 특별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노력하는 작가, 아버지, 교사, 의사는 한편으로는 사회에서 맡은 단순한 역할에 불과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상화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페르소나는 그것과 관려된 특성이나 행동패튼을 가지고 있다. 또한 페르소나는 집단이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노력하는 작가는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 사람이며, 조만간 사회적으로 인정 받을 만한 인물이다. 교사는 권위적이며 학생들에게 지식을 나누어 주는데 헌신하는 사람이다. 신부는 신과 함께하는 사람이며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다. 어머니는 자기 자식을 사랑하며 그를 위해 자기 인생을 바친다페르소나는 사회가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기대가 깨어졌을 때 충격을 받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교사가 학생을 강간해서 체포되었다든가, 의사가 마약 중독이 되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심각한 충격을 받는다.  환자의 심장을 수술할 때 필요한 의사의 기술은, 토라진 아이를 달래는 데는 아무 필요가 없다교사가 학습과정에 대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더라도 자동차를 사달라고 조르는 그의 십대 아들을 설교하는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바깥 세상은 멋진 페르소나를 가진 사람을 특별히 우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페르소나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돈과 명성과 권력은 단순하게 사회적 역할을 잘 수행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질이 집단 안에서 우리가 맡은 일이나 역할과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럴 경우 페르소나는 우리의 사회활동을 도와주는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발목을 잡는 덫이 된다.

 

사회적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종종 중년의 위기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왜냐하면 사회적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순간 그는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역할을 벗어나야 하는 상황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가면을 쓰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집안에 머물 때 나는 어떤 사람인가사회가 총애하는 가면을 벗어버리는 순간 그만큼의 충격이 뒤따른다사실 페르소나를 벗으면 많은 불이익이 따른다. 그를 보호해 주던 가면이 사라지면,  이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전에는 사회가 그 페르소나에 기대하는 바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면 되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상황에 반응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더군다나 그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은 그가 너무 거리감을 보이고, 오만하게 군다고 불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가 페르소나 없는 인생을 살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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