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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중년을 말하다.(The Survival Papers)

중년의 위기

신경증에 걸린 사람처럼 중년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도 갈등을 겪거나 우울증에 빠지거나 불안에 시달린다. 그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중년의 위기를 병적인 증상으로 여긴다그러나 칼 구스타프 융은 중년의 위기를 일종의 자기치유의 과정으로 보았다. 중년의 위기는 병들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마음이 건강하다는 증거다신경증이 발생하는데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신경증은 심리적인 재조정이 필요할 때 다시말해 새로운 심리적 적응이 요구될 때 발생한다신경증 때문에 그 전의 인격이 무너지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붕괴는 사람에게 새로운 차원의 의식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많은 중년의 사람들이 우울과 불안, 자기연민과 죄책감 같은 중년의 위기에 나타나는 모든 증후를 보이고 있다. 잠을 잘 잘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었다기운도 없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다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아직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느 정도 큰 문제인지 모르고 있다. 그러다 버틸 수 없는 극한상황이 온다.

 

보통 중년은 아내와 공생관계를 맺고 있다. 공생적인 관계는 서로 빗나가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들을 헤어질 수 없게 만든다. 가족은 각각이 중심이었다. 가족이 없다면 그가 존재할 수가 없었다그는 아내가 자신을 거절, 무시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는 그런 아내의 행동에 맞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다. 그는 아내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사실 때문에 비참했지만 그렇다고 아내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었다그는 명료하게 자신의 상황을 파악 할 수 없다그는 아무것도 전처럼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그의 주변 환경은 변했지만 그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 그는 아내와 함께 누렸던 과거의 관계를 잃어버린 낙원처럼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아내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자신의 변화를 추구해야만 했다.

 

무의식은 의식이 억압한 내용을 담고 있는 창고이며 무의식의 내용을 의식화하면 모든 문제나 고통이 사라지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정신분석을 받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환상인지 깨닫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무의식은 의식화 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대한 바다를 헤엄치는 것과 같이 우리는 무의식 바다 위를 헤엄칠 수 있다그러나 무의식이라는 심연에서는 항상 무언가 솟아 오른다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인생에 적응해야 하듯이 끊임없이 변하는 심리적인 환경에도 적응해야 한다어떤 사람의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정신분석학자가 해결책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어떤 태도로 자신의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지 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말할 수는 없다. 말한다고 해도 그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아야 한다꽃이 모판에 심어진 뿌리에서 자라나듯이 그러한 깨달음은 그의 내면에서 자라나야 한다. 그는 고통스럽게 자신안에서 미처 몰랐던 자신의 본성을 깨달아야 하고 새로운 인생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태도를 조정해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오로지 고통스러운 자기 탐색과정에서 나온다. 인생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이 될 때라야 그 해결책이 떠오른다. 그러나 단순히 고통을 당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기꺼이 무언가를 해야한다. 그에게 고통을 달래줄 어떤 말도 해줄 것이 없다. 그렇게 고통 당하는 것이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외부적인 삶이 상대적으로 잘 굴러갈 때,  우리는 구태여 무의식에 대해 파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그러나 만일 외부적인 삶이 장애에 부딪히면 우리는 무의식에 대해 파고 들어야 한다. 그렇게함으로써 외부의 삶에서 장애를 일으키는 우리 내부의 문제와 대면해야만 한다.

 

가장 일반적인 갈등 상황은  한 사람이 자신의 진로를 두고 여러 가지 선택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다이론적으로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다양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상 갈등은 두 갈래 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일어난다. 그 두 가지 길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진다. 아마도 가장 고통스러운 갈등은 안전과 자유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다. 이러한 갈등은 엄청난 내적 긴장을 일으킨다. 만약 우리가 자신이 안전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면, 그 긴장감은 신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만약 우리가 스스로 안전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것을 의식한다면  우리는 신체적으로 고통당하는 대신 도덕적 혹은 윤리적인 압박감에 시달릴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마땅히 자아가 따라야만 하는 사회적 의무와 무의식적인 욕망이 충돌하는 경우를 겪게 된다. 우리는 둘 사이에서 어느 것을 선택 할 것인지 결정해야만한다. 사실 어느정도 갈등을 느끼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아와 무의식의 갈등이 없다면, 삶의 흐름은 중단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아나 무의식중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억누를 때 발생한다. 이런 경우 갈등은 신경증으로 발전한다.